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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곧 플라세보다: 열쇠는 마음에 있다

You Are the Placebo: Making Your Mind Matter

한글 제목 (가제): 당신이 곧 플라세보다: 열쇠는 마음에 있다

지은이: 조 디즈펜자

출간일: 2014년 4월29일

출판사: 헤이 하우스 (Hay House)

종이책 분량: 392 페이지


캐나다 이민 14년 차인 나에게 한국은 때때로 몇몇 지인과 친구들의 얼굴로 요약된다. 그 중 한 사람은 직장 선배인 A씨다. 그는 그러나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3년전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전화로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어느 ‘황토 불가마 찜질방’에서 암 자연 치유를 시도하던 중이었다. 불가마에서 나오는 고주파 원적외선이 암 세포를 죽여 치유를 돕는다는 이야기에, 그도 다른 암 환자들과 더불어 그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며 서로를 독려하고 위로하며 암 치유의 희망을 붙잡고 있었다. 나도 그가 치유되기를, 암과의 싸움에서 – 왜 다른 병과 달리 유독 암만은 늘 ‘싸움’이고 ‘전쟁’의 대상으로 여겨질까? – 기적적으로 이기고 정상 생활로 복귀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러나 그 전화 통화는 그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다. 늘 나에게 따뜻한 형 같았던 분. 그가 없는 한국은 내게 조금 더 쓸쓸하고 삭막하다.


조 디스펜자의 ‘You Are the Placebo: Making Your Mind Matter’를 읽으면서, 나는 자주 그 선배를 떠올렸고, 또 지금 암과 투병 중인 친척 한 분을 생각했다. 그 선배가 디스펜자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면 암을 털고 정상으로 복귀해, 지금도 그 선한 미소를 주위 사람들에게 흘릴 수 있었을까? 


디스펜자의 책 제목은 이보다 더 절묘할 수가 없다. 이보다 명료하고 정확하게 – 아니 적확하게 –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가 없다. 당신이 곧 플라세보다: 마음이 만병 통치약이다… ‘환자에게 심리적 효과를 얻도록 하려고 주는 가짜 약 [僞藥]’이라는 뜻의 플라세보(placebo), 그리고 플라세보 효과는 세계 제2차 대전에 종군한 미국 외과 의사 헨리 비처가 야전 병원에서 부상 군인들에게 진통제로 공급하던 모르핀이 떨어지자 염분(saline)을 모르핀이라고 속여 군인들에게 주사했는데, 놀랍게도 실제 모르핀 못지 않은 진통 효과를 발휘했고, 쇼크 부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르핀을 맞았으니 이제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은 부상 군인들의 심리가 우리 몸 속의 모르핀이라 할 수 있는 엔도르핀의 분비를 촉진해, 사실상 모르핀을 주사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낳은 것이다. 이후 플라세보 효과는 수많은 연구 논문을 통해 논증되고 증명되었다. 디스펜자는 이 책에서 플라세보 효과를 극한까지, 아니, 어쩌면 과학과 이성이 허용한 한계를 초과하여 강조하고 주장한다.


디스펜자는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연다. 그는 23세때 철인삼종경기에 출전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단계에서 경기 운영 요원의 실수로 SUV에 치여 척추뼈 여섯 개가 부러지는 치명적 중상을 입는다. 그에 따르면 SUV는 무려 시속 90 km의 속도로 그의 자전거를 들이받았다. 의사들은 금속으로 만든 ‘해링턴 지지대’ (Harrington rod)로 척추를 지탱하는 수술을 권했고, 그러지 않으면 하반신 마비가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의사들의 수술 권고를 거부했다. 대신 집에서, 자신의 온 정신과 주의만으로 몸을 스스로 치유하게 만드는 작업을 택했다. 다시는 걷지 못하거나 불구가 될지 모른다는 부정적 우려와 스트레스를 철저히 배제하는 한편, 자신의 고통과 증상을 치유하는 상상과 정신적 에너지, 비전을 키우고 유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첫 6주 정도는 뜻대로 되지 않고 자꾸 다른 쪽으로 흐르는 마음, 회의감에 지기도 했지만 점점 더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의 평화와 초점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여 마침내 10주 만에 그의 몸은 정상으로 돌아갔고, 불과 12주 만에 다시 옛날처럼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되었다.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크나큰 깨달음, 극적인 삶의 변화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디스펜자에 따르면 ‘양자 물리학의 핵심 원칙들 중 하나’로, 이는 ‘마음과 물질은 별개의 요소들이 아니며, 우리의 의식적, 무의식적 사고와 느낌들이야말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청사진’이다. 어떤 잠재적 미래든 그것을 발양하기 위한 지속성(persistence), 확신 (conviction), 그리고 집중력(focus)은 모두 인간의 마음 속에, 그리고 양자 필드(field)에 자리잡은 무한한 잠재력의 마음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책은 2부로 짜여 있다. 1부 ‘정보’(information)는 플라세보 효과의 배경, 정의, 관련 연구 결과 등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사람들의 태도와 신념, 지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 연구 사례들로 강조한 다음, 이를 ‘양자 물리학’의 이론과 접목하는 파격적 시도를 벌인다. 2부 ‘변환’ (transformation)은 1부에서 쌓아 올린 개념과 주의, 주장을 바탕으로,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 긍정적 사고와 만병 치유의 초월적 – 혹은 ‘양자역학적’ – 태도, 혹은 믿음을 확보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디스펜자가 내세우는 해법은 ‘명상’(meditation)이다. 



1996년 국내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으로 하루야마 시게오의 ‘뇌내혁명’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책의 핵심은 ‘뇌내 모르핀’. 그는 우리의 생각들이 물질화된다고 말하며, 그 물질이 바로 ‘호르몬’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약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뇌내 모르핀’이 분비되어 우리 몸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질병 중 80% 정도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디스펜자의 ‘You Are the Placebo’는 여러 면에서 뇌내혁명과 겹친다. 그리고 가깝게는 찰스 두힉의 ‘습관의 힘’(The Power of Habit), 샘 해리스의 ‘자유 의지’(Free will), 마이클 가차니가의 ‘자유 의지와 두뇌과학’ (Who’s in charge? Free Will and the Science of the Brain) 같은 근간 등과 여러 모로 연결되거나 몇몇 대목에서 겹친다. 


디스펜자의 ‘You Are the Placebo’는 매년 헤아릴 수 없이 쏟아지는 자기 계발서들 중에서도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이다. 자유 의지를 강조하고, 긍정적 신념과 사고의 힘을 웅변하고, 앞에 예로 든 자기 계발서들에도 되풀이되어 인용된 사례들이 흥미롭게 소개되지만, 문제는 그러한 연구 결과와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심지어 뉴에이지와 의사(擬似) 종교의 차원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후성유전학 (epigenetics), 신경 가소성 (neural plasticity), 심리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 더 나아가 양자물리학 (Quantum physics)의 세계까지 언급하고, 인체와 두뇌의 메커니즘을 마치 고교 생물학 교과의 도식처럼 단순화해 설명하면서 우리가 어떤 태도와 신념,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의 거의 모든 질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디스펜자의 주의 주장은, 어느 선까지는 과학적 근거와 객관적 신빙성을 갖지만, 그 이후부터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고치고 개선할 수 있다는 맹목적, 비과학적 주장으로 그릇된 진로를 잡아, 컬트적 도그마의 세계로 빠진다. 그가 사실은 얼마나 과학 이론, 특히 양자 물리학의 이론을 그릇 이해하고 오용하는지는 8장 하나만 꼼꼼히 읽어봐도 잘 드러난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아마존닷컴의 리뷰나, 인터넷의 여러 비디오, 정보 사이트를 꼼꼼히 훑어보기만 해도, 디스펜자와, 그와 비슷한 주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일종의 사교적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왜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올라 있지만 정작 뉴욕타임스는 그의 책에 대해 단 몇 줄의 리뷰조차 싣지 않는지, 다른 매체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책에 눈길을 주지 않는지, 그 이유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