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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내가 사랑하는 길

오늘은 좀 늦게 뛰러 나갔다. 알람은 6시를 갓넘어 울었지만 끄고 더 잤다. 일요일인데 뭐 어떠랴... 여덟 시쯤 나섰다. 평소처럼 물 한 컵 마시고, 작은 물통 두 개에 게토레이 한 병을 나눠 넣고, 피넛 젤 하나를 먹었는데, 정말 환장하게 맛이 없었다. 달리기 중간쯤에 더 먹으려고 여분으로 하나를 주머니에 챙겼다. 보통 초콜렛 바를 두 개쯤 넣어가는데 하필 다 떨어져서, 레이스 때 먹고 남은 젤로 대신한 것이다.


본래는 토요일에 10K짜리 MEC 레이스를 뛰겠다고 금요일을 쉬었는데, 그만 500점짜리 두바이 오픈 테니스 결승을 보느라고 토요일의 레이스를 걸렀다. 레이스 시작은 아홉 시, 테니스 중계는 7시부터... 로저 페더러와 노박 조코비치, 당대의 '테니스 월드 넘버 원/투'가 붙는데 안 볼 도리가 있나... 경기의 수준 자체도 나무랄 데 없이 높았고 가히 초인간적인 명승부였지만, 결과가 내가 응원하는 페더러의 우승으로 끝나 더욱 기뻤다. 레이스를 걸렀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도 훨씬 덜했고...


어쨌든 이틀을 연거푸 쉬었으니 오늘마저 거를 수는 없지. 하긴 뛰지 않는 날도 자전거로 왕복 20여 km를 달려야 하니, 혹여 달리기를 쉬더라도 죄책감은 - 물론 누구도 뭐랄 사람 없고, 자가 발전한 죄책감이지만 - 자전거를 타기 전보다 훨씬 덜한 편이다. 



어디로 뛸까 머릿속에 이 코스 저 코스를 그려보다가, 오늘은 좀 조용히, 명상하듯 뛰어보자는 심산에서, 시모어 보전 구역 (LSCR)을 골랐다. 좀 편하게, 비탈이 거의 없는 쪽을 타보자는 생각에서 머린 드라이브를 따라 노쓰밴 시를 거쳐 라이온스 게이트 다리까지 갔다 와볼까 했으나 오가는 길의 차 소리와 여러 번잡함이 싫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먹었다. 먼저 집 뒤로 난 린 계곡의 계단으로 내려간다.



LSCR로 올라가는 길. 집에서 이 길을 따라 '0 Km'라고 쓰인 LSCR의 초입까지만도 거리가 7 km쯤 된다. 왼쪽은 차도 겸 자전거 도로이고 오른쪽이 인도인 셈인데, 산악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종종 인도를 타기도 한다.



LSCR 초입에서 5 km쯤 올라오면 이런 구불구불 그럴듯한 곡선미의 포장도로가 펼쳐진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롤러 블레이드를 타는 사람, 나처럼 뛰는 사람, 산보객 등만 허용되고 차는 들어오지 못한다. 무엇보다 개를 데리고 올 수 없게 해놓은 규칙이 정말 마음에 든다. 



왜 차가 못 들어오느냐고? '자연 보전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노란 차단 봉들을 박아놓았다. 차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이 사진의 오른쪽 아래턱에 따로 조성되어 있다. 물론 그 차도조차 일반 차량은 출입 금지다. 작업용 차량만 드나드는, 반 포장, 반 비포장인 길이다.




주차장에 도달하기 30분쯤 전 집에 전화를 해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보를 나왔다. 아주 잠깐 호수 부근을 산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익살맞은 표정 짓기를 즐기는 성준이는 이번에도 아빠의 물통을 입에 물고 장난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