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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로커


드디어 나만의 로커가 생겼다. 거의 1년 만이다. 어찌 생각하면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나로서는 뛸듯이 기쁘다. 매일 옷을 갈아입고, 개인 물품을 다 들고 나와, 사무실 문 뒤며 의자 등에 땀 냄새 나는 셔츠와 수건을 거는 일이 불편하기도 불편하거니와, 함께 방을 쓰는 동료에게 미안했었다. 


내 직장이 입주한 싱클레어 센터 지하 2층에는 허름털털한 로커 룸이 있다. 그 중 개인적으로 물품을 보관하고 자물쇠로 잠글 수 있는 로커는 12개밖에 안된다. 일일 이용자용 로커는 달랑 두 개다. 싱클레어 센터가 서로 연결된 6층짜리 헤리티지 건물 네 개로 구성된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싱클레어 센터의 가장 큰 고객사는 여권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연방 정부 부서다). 하지만 그게 어디랴, 바다 건너 웨스트 밴쿠버의 직장 본사는 10층짜리 건물인데 그 흔한 샤워실 하나조차 없다. 그 때문에 거기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점심 때 운동을 마친 뒤 샤워도 못하고 땀냄새 풍기며 일한다던가? 믿거나 말거나...


저 시계탑이 싱클레어 센터의 일부다. 캐나다 깃발 나부끼는 건물. 바다 쪽, 씨버스(Seabus)에서 찍은 사진인데 내 사무실은 저 건물 3층이다. 사진 맨 왼쪽 진갈색 빌딩은 '워터프런트 역사', 맨 오른쪽 길게 올라간 빌딩은 밴쿠버 썬 (Vancouver Sun) 신문사 건물이다. 


어쨌든 로커 규모가 작다 보니, 지난 해 10월 내가 처음 샤워실을 이용하면서 확인했을 때는 빈 로커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변할 기미가 없었다. 3개월마다 로커 이용자들에게 갱신 고지를 한다고 하지만, '계속 쓰겠다'라는 답장 하나 날리면 끝이다. 결국 누군가가 직장을 옮겨 나가지 않는 한 로커가 빌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러다 어제, 정말 오랜만에 회사 샤워실을 다시 찾았다. 지난 두 달 남짓은 출근 전 새벽에 운동을 했기 때문에 옷가지며 수건을 싸들고 출근할 일도, 샤워실을 이용할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일출 시간이 7시 근처로까지 늦어지면서, 새벽 달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다시 점심 시간을 이용해 달릴 수밖에...


옷을 갈아 입는데,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은 로커가 눈에 들어왔다. 오잉~?? 7번 로커다. 문을 열어보니 비었다. 이게 웬 떡이냐! 다시 사무실로 부랴부랴 올라가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다시 로커로 돌아와 일일 이용 로커에 넣었던 옷을 잽싸게 7번 로커로 옮겨놓고 뛰러 나갔다. 


정말 허름털털한 로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낫고, 무엇보다 근무 중에 샤워하고 옷 갈아 입을 수 있다는 게 더없이 고맙다.위 오른쪽 끝이 7번 로커다.아래 오른쪽 끝, 파란 표딱지가 붙은 두 개는 일일 이용 로커로 아무나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둘 다 이용되는 걸 본 적이 없다.


오후 1시쯤인가, 7번 로커의 이용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미 누가 개인 물품을 넣어 놓았더라, 그리고 과거 이용자 기록도 없다, 오후에 다시 확인해서 로커가 비었거든 네 자물쇠를 채우고 우리한테 알려달라는 경비실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냉큼 근처 가게로 가서 다이얼 자물쇠를 8불에 사서 로커를 잠갔다 (자물쇠를 파는 신발 수선 가게의 주인이 공교롭게도 한국분이었다). 그리고 '자물쇠를 채웠다. 혹시 과거 로커 사용자가 연락을 해오거든 내게 알려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경비실에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그러니까 오늘 아침, 경비실에서 확인 메일이 날아왔다. 당신 이름으로 로커를 등록했으니 3개월 뒤에 갱신 고지 메일이 날아가거든 계속 쓸지 여부를 알려달라는 내용. 만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