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러닝|사이클링

새벽 뜀뛰기

이번 주부터 달리기 시간을 바꾸었다. 점심 시간 대신 출근 전 아침 시간으로. 물론 해가 길어져서 가능한 대안이다. 새벽 4시30분쯤 되면 벌써 밖이 훤해지는 요즘이다. 거실을 안방으로 쓰다 보니 지붕 쪽으로 만들어 놓은 유리창(이른바 '스카이라이트')이 바깥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유리창이 천장에 나 있으니 커튼을 칠 수도 없고, 억지로 시커먼 천으로 가리거나 코팅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로 공력을 들일 마음까지는 없다. 그래서 알람을 맞춰 놓은 여섯 시도 되기 훨씬 전에 방안이 훤해 진다. 팔과 손을 적절히 배치하거나, 쿠션 따위를 이용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막아 보지만 이미 잠은 반 넘어 깬 상태다. 그럴 바에는...


7시13분 버스를 타는지라 아침 먹고 준비할 시간 감안하면 늦어도 5시30분 전에는 집을 나가야 한 시간쯤 뛰고 6시30분에 돌아올 수 있다. 대개 5시5분~20분 사이에 나간다. 처음엔 몸이 덜풀려 얼떨떨하지만 1, 2km 지나면 몸도 제대로 깨어나 뛰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달리기 시간대를 바꾸기로 한 데는 밴쿠버 워터프런트의 씨월(Seawall) 트레일이 인파로 붐비는 탓도 있다. 여름철 관광객의 규모가 지난 겨울에 보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고 혼잡하다. 인파 사이를 헤집고 뛰는 게 별로 달갑지 않은 데다 몇몇 구간에서는 헤집을 공간조차 없어 다른 길로 에두르거나 슬슬 걸어서 인파를 빠져나온 다음 다시 뛰어야 한다. 물론 별로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뛰어야 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시모어 보전 구역 (Seymour Conservation Reserve)의 트레일 초입이다. 집에서 나와 2km쯤 가면 나오는 위 간판은 그 날 그날의 산불 위험 수준을 알려준다. 왼쪽은 차도/자전거 도로, 오른쪽은 보행자용 트레일이다. 물론 나 같은 달림이와 말을 탄 사람들도 이 길을 이용한다. 공기는 더없이 신선하고, 길은 한적하다.



집 근처로 지나가는 '마운틴 하이웨이'. 이름이 시사하듯 비탈이 길다. 이 지점에서 아래로 내려갈 것인지, 위로 올라갈 것인지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전혀 다른 유형의 트레일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직 여섯 시도 안된 시각이라 간선 도로인데도 교통량이 거의 없다.



위 마운틴 하이웨이에서 위로 올라가 다른 간선도로인 키스 로드 (Keith Road)나 그와 평행으로 난 지선 도로들을 따라 서쪽으로 4km쯤 달리면 '론스데일' 지역에 다다른다. 바다로 다니는 버스, 씨버스(Seabus)가 여기에서 출발한다. 론스데일은 노쓰밴쿠버 디스트릭트가 아니라 '씨티'다. 면적은 작지만 고층 콘도와 오피스 빌딩이 밀집되어 가장 분주하고 번잡한 지역이다. 저 아래, 바다 건너 맞은 편으로 보이는 풍경은 밴쿠버 워터프런트와 항만 시설이다.



다시 돌아오는 길. 시모어 보전 구역을 막 벗어나 주택가에 이르면 말 목장이 나온다. 승마 교습도 시켜준단다. 말이 제법 많았다. 지나갈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승마 교습을 시켜볼까, 라는 막연한 상상을 잠깐씩 하곤 한다.



매일 다른 코스를 타려고 애쓴다. 새로운 건물, 새로운 트레일,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늘 같은 길을 타고 또 타는 건 별로다. 위 사진은 노쓰밴 지역의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호텔을 지나다 찍은 것이다. 과속 방지턱을 '잠자는 경찰관'이라고 표현했다. 재치있다.


점심 때는 뛰는 대신 걷는다. 주로 그늘을 찾아다니며 걷는다. 땡뼡 아래 벌거벗고 누워 일광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진저리가 쳐진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꼬?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밑에서 씨월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왼쪽은 바다 위에 뜬 선박용 셰브론 주유소. 가운데 멀리 보이는 빌딩숲이 바로 노쓰밴쿠버 시의 '론스데일'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