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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이성

한국 언론의 '프라이버시' 남용, 혹은 오용 유감


그림 출처: http://www.privacycenter.co.kr/info-center

한국 뉴스를 인터넷으로 보면서 혀를 찰 일이 많다. 차마 믿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부패하기 짝이 없는 정치권의, 직무유기를 넘어 사실상의 범죄 행각이라고 부를 만한 악행들을 보면서, 이른바 ‘지도층’에 속한 지식인, 기업인, 정치인들의 부도덕과 몰윤리성을 확인하면서….


그런데 그런 보도를 읽으면서 자주 ‘이건 아닌데, 기자 씩이나 하면서 그 정도 상식도 없나?’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 유독 많다. 내 주전공인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대목에서 특히 더 그렇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전혀 아닌데도 A, B, C 식으로 익명 처리하는 과잉 친절을 베풀거나, 정작 프라이버시 보호가 필요한 경우인데도 실명을 그대로 노출시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경우, 심지어 사람이 아닌, 따라서 프라이버시와는 무관한 기업이나 언론사 이름을 ‘모 기업’ ‘한 언론사’ 식으로 눙치는 경우도 있다. 기업이, 언론사가 사람인가? 


언론사가 기자 교육을 제대로 안 시킨다는 말은, 조금 과장하면 한국의 언론사만큼이나 유구하다.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기자들의 끔찍한 무지도 그런 교육 부재에서 나오는 게 분명하다. 2011년 9월 발효된 ‘개인정보보호법’을 기자들 중 몇 명이나 읽어봤을까? 그 법은 프라이버시와 직결되는 ‘개인정보’를 이렇게 친절하게 풀어놓았다.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를 말한다.


그러면 언론에서 프라이버시를, ‘개인정보’를 어떻게 오해하고, 그래서 남용하거나 오용하고 있는지 보자. 다음은 미디어오늘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2일자 6면 <세월호의 눈물 마르지 않았는데…싸우고, 졸고, 자리 비운 국조 특위>에서 “일부 의원들은 30~40분씩 자리를 비웠다”, “자리에 앉아 조는 의원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여야 의원 간 고성과 막말도 이어졌다”, “일부 피해자 가족이 회의 도중 일어서 항의하자 한 의원은 ‘내가 당신에게 말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출처: 조선일보 기자님, ‘한 의원’이 아니라 이완영입니다)


출처: 미디어오늘의 캡처 이미지.


이런 기사야말로 언론이 제 몫을 해줘야 할 대목이다. ‘싸우고, 졸고, 자리 비운’ 국회의원들이 누구인지 조목조목 그 이름과 소속 정당을 밝혀주는 것, 그래서 유권자들의 기억 속에 새겨넣어 주는 것. 그런데 어정쩡하게 뭉뚱그려 ‘일부 의원들’이란다. ‘자리에 앉아 조는 의원’이 누구인지, “내가 당신에게 말했느냐”고 말한 ‘한 의원’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명백하게 밝혀주는 것이야말로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왜 언론의 사회의 목탁이라고 했느냐고! 저기에서 국회의원들의 실명을 밝히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가 결코 아니다. 그들이 공공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저게 그들의 일이기 때문에, 업무와 직접 연계된 상황에서는 실명을 고스란히 드러내 줘야 마땅하다. 그래도 조선일보가 나아보이는 건 동아일보 같은 신문은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 한 사례는 한겨레의 다음 기사다. 세월호 피해자 유족들에게 개쓰레기 같은 추태를 서슴없이 보여준 조원진의 언행에 대한 트위터 이용자들의 반응을 다룬 대목이다. 


@hal****는 “선거 때 ‘도와줍쇼’ 읍소로 표 구걸하더니, 이제는 ‘유가족이면 가만히 있으라!’며 고성과 막말 삿대질로 유족을 모욕하는 조원진 의원. 박근혜 보호에만 열중하며 국민 뒤통수치는 작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7l***는 “새누리 조원진. 흉칙한 민낯. 새누리 참모습”, @coz****는 “대통령 보호했던 조원진, 유가족에는 막말과 삿대질”이라고 비판했다. (출처: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한달만에 돌변 새누리 ‘조원진’)


이게 뭐냐? 트위터 이용자들의 ID는 왜 ***표시로 익명 처리했을까? 트위터의 트윗은 누구에게나 공개된 것이고, 프라이버시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트위터의 프라이버시 약관에도 나와 있다 (아래 이미지, 붉은 색으로 표시한 대목에 주목할 것). 아이디를 굳이 익명 처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혹시 경찰이나 수사 기관의 부당한 압력이 행사될까봐 그랬을까?


이보다 더한 경우는 뻔히 다 아는 기업 이름, 언론사 이름을 ‘한’, ‘모’ 따위 수식어로 가리는, 실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경우다. 대개 기업 이름을 그렇게 가리는 경우는 그 기업이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을 경우이고, 언론사 이름의 경우는 자기네가 못한 ‘특종’을 다른 경쟁사가 따내서 배가 아픈 경우다. 내가 시사저널에 다닐 때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조선이나 동아, KBS 같은 데서 시사저널의 기사 내용을 소개하면서 꼭 ‘모 시사주간지’라고 불렀다. 



사진에서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회의가 ‘비공개’를 전제로 열린 것이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가령 청문회가 열리는데 그것이 TV로 중계되거나, 중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에게 공개된 것이라면 청문회 당사자들은 물론, 거기에 방청 온 사람들의 면면도 공개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따라서 사진에 잡혔을 때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다. 페이스북에서 따온, 시사인의 위 사진도 마찬가지다. 왜 박지원 박영선 의원을 비롯해 카메라 맨의 얼굴은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국정원 직원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나? 프라이버시 때문에? 아니면 무슨 국가 안보 때문에? 위 사진에도 명백히 나와 있듯 방송 카메라까지 출동한 마당이다. 공개된 자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저 국정원 직원 얼굴만 모자이크로 '대접'해 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 



프라이버시 문제는 물론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다. 흑과 백으로 뚜렷이 가를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프라이버시에 대한 언론의 수준은 개탄스러울 정도로 박약하고 누추하다. 그저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도 알 수 있을 법한 내용을 ‘ㅈ일보’ ‘ㄷ일보’ 식으로 표현한다거나, 모 의원, 모 기업인 따위로 위장한다. 이런 대목을 접하면 뭇 언론이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려 애쓴다는 느낌보다 비겁성과 무지의 인상이 더 표나게 풍긴다. 좀더 당당하고 정직하고 열린 언론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