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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6월11일/수


일요일의 하프 마라톤 이후 내리막길이었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 지난 10여년 간 그런 대로 참을 만하던 병증이 도졌다. 너무 아파서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2004년 와와에서 지내던 어느날도 그렇게 아팠다. 그 때는 더 아팠다. 2주마다 내려가곤 했던 토론토 행도 취소했다. 와와의 의사는 너무 자주 장시간 운전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물론 식습관도 문제였을테고... 그냥 쉬는 수밖에 없다며 약을 처방해 줬다. 그 때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혼자 엎드려 울었다. 아파서 울었고, 아마 서럽기도 했을 게다.


일요일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는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한 탓일 거라고 했다. 달리기만으로도 빠듯한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시간씩 자전거를 타니 몸이 견뎌나겠느냐고 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 때문에 노심초사해 온 터에 남편이랍시고 하나 있는 게 또 속을 썩이니 끌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은 지난 금요일 퇴근길에 이미 한 번 사고를 쳤다. 아니 사고를 당했다. 자전거 도로가 사라지고 차와 인도 사이가 급격히 좁아지는 구간에서 차 한 대가 너무 바투 인도 쪽으로 서는 바람에 - 자전거 운전자들에게 이유없이 악의적인 그런 자들이 꼭 있다 -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 바람에 자전거가 중심을 읽고 거의 360도를 돌며 인도 쪽으로 넘어진 것이다. 왼쪽 손바닥이 약간 심하다 싶게 찰과상을 입었고 몸 여기저기에 작은 생채기가 났다. 그런 생채기는, 사고 당시에는 별 느낌이 없다가 몇 시간 뒤에 본색을 드러낸다. 온 몸이 뻑쩍지근해지는...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지 싶었다.


결국 월요일을 쉬었다. 오전에 약간의 업무를 메일로 처리한 뒤, 아파서 쉰다고 보스에게 알렸다. 물론 보스는 그래라, 빨리 낫길 바란다고 응답...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라는 설명 없이 그저 don't feel good, 혹은 feel sick 정도라고만 하면 된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는 문화. 그리고 서로 믿는 풍토 (꾀병은 아니겠지?)... 그런데 그렇게 쉬겠다는 날, 꼭 더 많은 일감이 생기는, 혹은 생기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뭐냐?


그런 날, 우연히, 하필이면, '오레곤 주에서는 어떻게 죽는가'(How to die in Oregon)라는 다큐멘터리를 아내와 함께 봤다. 무려 20년 전인 1994년에 안락사를 법으로 인정한 오레곤 주에서, 스스로 인간적인 종말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것이 불법인 다른 주 사람들의 사례와 적절히 섞어, 고결하고 평화롭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택할 자유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 깨끗하고 고결한 삶의 마무리 또한 한없이 중요한 인간의 권리라는 메시지를, 다큐멘터리는 잘 짜여진 플롯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었다. 오레곤 주가 그처럼 진보적이고, 심지어 급진적으로까지 여겨지는 결정을 내린 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 문득 캐나다는 어떻지?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한두 달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온갖 고통스러운 치료와 높은 비용, 가족 친지들의 마음 고생을 지불하느니, 아직 내 정신이 말짱할 때, 아직 판단할 능력이 남아 있을 때, 떳떳하고 당당하게, 무엇보다 품위있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겠다는, 그리고 그렇게 작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뭇 감동적이었다. 드라마가 아닌 사실이어서 더 절절했고, 나는? 우리는? 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퍽 인상적인 다큐멘터리였다. 그걸 보면서 우린 또 울었다. 특히 아내는 휴지께나 소비했다. 성준이는 엄마 왜 울어? 하고 자꾸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내의 촌평:


Watched <How to Die in Oregon>. 

우연찮게 보게된 이 영화/다큐멘터리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세 명의 이야기. 

첫째는 주정부가 추가 암치료 비용은 거부하면서 안락사 비용을 제의하는데 반발했던 저소득층 남성. 의료보호체제의 여러가지 불합리성에 대해 곱씹어보게 한 사례였다. 

두번째는 뇌암으로 고통받다 안락사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남편의 유언을 실현하기 위해 워싱턴주에서 안락사 법안 I-1000을 통과시키려 2년 넘게 활동한 한 미망인의 이야기. 

세번째, 그리고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54세)에 말기암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안락사를 선택한 Cody라는 여성의 이야기.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줬고, 가족의 사랑, "Go at peace"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아프다. 아프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내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가, 맞이해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그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당혹스러워 하고, 덜 슬퍼하고, 덜 비참해 할 수 있다면!


문득, 2011년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선배 한 분이 생각난다. 이래저래 심난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