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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별 없는 시대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돌아온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기억은 이미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난 것처럼 아득하고 희미하다.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리며 뜨거운 김을 아지랑이처럼 피워올리던 아스팔트처럼, 내 두뇌의 일부도 예년보다 유난히 더 무더웠다는 8월의 폭염 속에서 기억 장애를 일으켰는지도...


한 달이나 휴가를? 그게 가능하냐? 한 달이나 휴가를 올 수 있다면 네가 그 회사에 필요 없다는 얘기 아니냐? 등등 온갖 덕담이나 악담 속에서, 정말로 한 달을 한국에서 - 그리고 나흘은 일본에서 - 보냈는데, 한없이 길 것만 같았던 시간은 마법사의 손 아래서 퐁~! 하고 연기를 불러일으키며 사라진 비둘기처럼 어느새 훅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포항으로 전주로 서천으로 청주로 서울로, 누가 부르는 것도 아닌데 참 바지런히도 오르내렸다만, 기억은 다시 한 번 자욱한 안갯속처럼 그저 희미하고 불분명할 뿐이다. 떠나올 무렵이 되니 만난 사람들보다 만나지 못한, 만났어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의 얼굴만 아침녘의 물안개처럼 빼곡하게 피어 올랐다.


너희가 일삼아 서울까지 올라오지 않았다면, 정말 억지로 스치듯 단 한 번씩 얼굴만 본 것으로 그칠 뻔했다. 내일 떠나는데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봐야지, 라며 늦저녁 기차를 타고 온 너희가 참 고맙고도 미안했다. 


내 고등학굣적 친구들. 하나는 선생님이고, 다른 하나는 약국을 한다.


온천지가 총천연색의 불빛들로 번쩍이는 사당동의 유흥가 골목에서, 우리는 어렵사리 만났다. 술은 별로 마시지 않았지만 충분히 즐거웠고, 충분히 편안했다. 별것도 아닌 얘기들로 낄낄대면서, 몇년 간의 공백을 담박에 지웠다. 


"역시 고등학굣적 친구들이 최고야," 라고 아내는 말했었다. 우리가 캐나다로 돌아오기 이틀 전에는 아내의 여고시절 친구 몇 명이 서울까지 올라왔었다. 8월 중순 서천으로 귀농한 친구를 보러 갔을 때 만났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이 안찼을 것이다. 아내 친구들은 몇년 전부터, 캐나다로 놀러올 곗돈을 붓고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떠나기 하루 전날 너희가 전화를 했고, 그 때 아내가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뭐 꼭 고등학교만일 필요는 없겠지. 중학교도 있고, 초등학교도 있고... 하지만 아내와 내 경우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가장 애틋하다. 


너희와 술을 마시며 낄낄대다가 어느 순간 그런 바람이 들었다. 아, 이 친구들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보고 싶을 때 아무렇게나 입고, 슬리퍼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며 나와 만날 수 있다면!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꼭 사보리라 결심했던 책이 한 권 있었다. 황동규 시인의 '사는 기쁨'이라는 시집이다. 어차피 짐만 될 것이어서 책 한 권 제대로 못살텐데 왜 가냐는 생각에서 올해는 교보문고에도 한 번 들르지 않았는데, 그래도 용케 틈을 내 강남의 반디앤루니스에서 이 시집을 찾을 수 있었다. 내게 지극한 '읽는 기쁨'을 선사한 이 사는 기쁨은 7순의 노시인이 담담하게 바라보고 명상하고 체감하는 자잘한 '사는 기쁨'들로 가득하다. 내가 캐나다로 들고 온 거의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내 심금을 가장 크게 울렸고, 이 시집을 꼭 사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시는 맨 앞머리에 실린 '이별 없는 시대'다. (아래 이미지는 네이버의 한 블로그에서 옮김.)



캐나다에서 처음 저 시를 접했을 때, 나는 너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디 허름한 술집에서 편안히 만나 사는 이야기를, 아니 무슨 이야기든, 나누고 싶었다. 아주 부족하나마, 떠나기 전날 너희를 만나 그 소원은 푼 셈인데, 앞으로 또 언제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 또 다시 아득하기만 할 뿐이다. 


아직 시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이른 오후부터 병든 닭처럼 꼬박꼬박 졸기 일쑤다. 문제는 그런 와중에도 다시 이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나보다 아내가 몸살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집을 팔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일단 집안 곳곳에 널린 헛짐들 숨기고, 공간 많이 차지한 물건 다른 데로 치워서 '팔릴 만한 모양새'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지. 돈 번다는 핑계로 회사로 도망가버린 남편 대신 집안 정리에 골몰할 아내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울 따름이다. 


이사를 가려 할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짐을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드는가를 새삼 실감한다. 그것도 장만할 때는 다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리했을 텐데... 엊그제 책을 한 백 권쯤 버렸다. 닷컴 붐이 일던 시절에 장만한 디지털 운운하는 책들, 그리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전공서들이었다. 아까웠다. 하지만 들고 가도 죽을 때까지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책까지 챙길 여유는 없을 터였다.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많은 책과 CD와 다른 짐들을 버리거나 중고로 내다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도, 집이 얼마나 빨리 팔리게 될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이미 여름은 다 지나갔고, 어느새 소슬바람 부는 가을이 턱밑까지 와 있는 마당이니... 이곳의 가을은 유난히 짧다. 가을인가, 하면 어느새 눈발 날리는 겨울이 와 있을 것이다. 그 전에는 꼭 팔아야 이사를 갈 수 있을텐데...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밴쿠버 가게 됐다고 하니까 다들 '축하한다'라고 했다. 살기 좋은 데로 가게 됐다고 했다. 에드먼튼보다는 밴쿠버가 훨씬 더 낫지 않겠느냐고... 에드먼튼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슬몃 웃음도 났다. 에드먼튼도 살기 좋아요,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도 가끔 느꼈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이게 현명한 결정일까 불안해 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젠 '못 가겠다'라고 되물릴 명분도 염치도 없다. 가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곳에 가서 승부를 봐야 한다. 


곧 떠난다, 라고 생각하니 주변 풍경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진다. 애틋한 마음도 든다. 아침 저녁으로 이용해 온 새알밭 통근버스, 그 버스 차창으로 펼쳐지는 대개는 황량하고 헐렁한 마을 풍경, 아침이나 점심 때면 뛰거나 걸었던 노쓰 사스카체완 강변, 알버타대 캠퍼스 주변, 그리고 회사 근처의 건물과 서점, 에드먼튼 도서관 등등... 밴쿠버로 가게 되면 이 모든 풍경과 기억들이 새삼 그리움으로 반추되곤 하겠지. 


아무튼 여러모로 싱숭생숭하고 혼돈스럽고 심난하다. 그래도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매 순간을 최대한 즐겨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어제 저녁, 성준이에게 우리 밴쿠버로 이사갈 거라고 했더니 돌연 엉엉 울었다. 세인트 앨버트가 좋다고, 이 집이 너무 좋으니까 팔지 말라고... 그러다 제가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이 여기에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밴쿠버는 큰 도시라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더니, 금새 오케이, 그럼 밴쿠버로 갑시다, 하더라. 하하. 


글이 졸가리없이 길어졌구나. 만나서 반갑고 행복했다는 얘기를 또 하고 싶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멀지 않아 또 볼 수 있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