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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이

오늘 페이스북에 한 지인이 이런 글을 남겼다. 


나: '와, 이승철보다 선배가 한 살이 더 많다고요??? 와...ㅋㅋ'

선배: '이승철 동갑님께서 왜 그러셔...? ㅎㅎ'


이렇게 놀다가, 문득 잊고 지냈던, 한국의 '나이 집착증'에 대한 유감이 되살아났다. 


캐나다에 와서 살면서 '너 몇 살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게 채 다섯 번도 안되는 것 같다. 한국에 안 살면 나이 따질 일이 없다. 나도 30대 중반에 이민을 와서, 캐나다 현지인들보다 열 살쯤 더 많은 나이에 '신입 사원'이 돼야 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늘 자신의 나이를 열 살쯤 줄여 생각했다. 생각하려고 애썼다. 누구도 네가 몇 살이냐 묻지 않고, 나이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나는 그게 정말 좋았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 중요한 것은 본인의 자세에 있는 것'이라는 낯간지러운 말이, 여기서는 제법 통하는 듯했다. 그래서 한국의 옛 동료, 친구, 동기들이 마흔을 넘기고, 혹은 이른 명예퇴직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종종 나이를 안먹고 멈춰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한국의 몇몇 TV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다. 그 중 하나가 '해피투게더'인데, 그 프로그램을 통해 되풀이해서 드러나는 외모 지상주의 (lookism이라고 하던가?)도 못마땅하고 개탄스럽지만, 거기에 나온 늙은(?) 연예인들이 서른이 넘었네, 마흔이 넘었네 하며, 원로인 척하는 걸 보는 것도 편치만은 않다. 특히 아이돌 스타라는 아이들이 나와, 30대나 40대 출연자나 사회자를 보고 세상의 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 물론 농담조의 말과 표정이지만 -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말을 잊게 만든다. 


엄연한 현실은 이제 나이 60도 노인 축에 끼기 어려울 만큼 평균 수명과 기대 수명이 높아져 있는데, 아직 (한국)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40에 불혹, 50에 지천명, 60에 이수...운운하는 조선시대식 고정 관념에 갇혀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세대는 자신들의 취직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이유로, 기업은 비용이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55세나 58세 정년의 연장을 반대한다. 그러한 반대가 중장기적으로는 더욱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혹은 인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연예인의 가슴과 엉덩이와 허벅지에만 눈길을 주는 쓰레기 언론은 경악하고 '헉!'하고 비명 지르기에 바빠, 그런 문제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중3때...와 지금. '나이', '늙음'에 관한 이미지로 무엇을 쓸까 하다가, 이렇게 비교해 보았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같은 말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몇년전 캐나다는 정년을 없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나이 60이 넘고 일흔이 됐는데도 고속도로의 원활한 진행을 막는 똥차처럼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년을 없앴어도 자신의 형편에 따라 조기 퇴직하는 사람도 있고, 더 오래 붙어 있으려고 하지만 능력이 안돼 떨려나는 사람도 많다. 요는 단순한 물리적 나이로 한 사람의 업무 능력을 재단해 버리는 사태는 크게 완화했다는 점이다. 나이 서른이나 마흔에도 괸물처럼 공부하지 않는 잉여인간이 적지 않고, 예순이나 일흔에도 40대나 50대 못지 않은 활력과 지력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젊은 노인' 또한 적지 않다. 숫자, 물리적 나이를 따져 한 사람을 재단해 버리는 부박한 시각과 사회적 편견은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수명 100세 사회가 멀지 않다. 한국이나 캐나다나 평균 수명이 80살을 넘긴 지 오래다. 이는 바꿔 말하면 채 60이 되기 전에 퇴직을 하면 - 혹은 퇴직을 당하면 - 조금 과장해 전체 인생의 절반이 남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사람 하나만의 부담이 아니다. 그의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국가와 사회에도 부담이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노령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TV를 필두로 한 사회의 여론 아닌 여론, 흐름 아닌 흐름은 '늙음'을 비웃고, 무시하고, 방기한다. 오직 탱탱하고 싱싱한, 그러나 그 또한 덧없이 지나갈, 젊음만 과도하게 찬양한다. 


한국말 자체가 나이를 먼저 따지도록 강요하는 문법을 가지고 있지만, 물리적 나이에, 숫자에 갇혀 사람들을 재단하고 오인하는 풍토는 슬프다. 이제 겨우 40대, 50대인 사람들이 한 세상 다 산 것처럼 구는 것도, 그런 처신을 당연시하는 문화도, 참고 보기 어렵다. 


내 취향도 아니고 관심도 없지만 뉴스에 뜨니 안볼 수 없는데, 미국의 연예인/방송인/배우인 Joan Rivers가 올해 80이라고 한다. 아무리 성형 수술로 도배를 했다지만 나이 여든에도 그처럼 의욕적이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걸 보면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성형으로 떡칠한 얼굴은 보기 싫지만, 그 얼굴 뒤에 숨은 젊은 - 혹은 계속 젊고 싶은 - 마음은 보기 좋다. 이승철이, 아니 이승철 씨가 그간 한국 가요계에서 많은 걸 이룬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 겨우 50이다. 이름 옆에 꼭 나이를 붙이는 게 싫다고 한 조용필 오빠, 아니 형이 나는 그래서 더 좋다. 노래만 좋은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좋다. 아니 존경스럽다. 와 환갑도 넘은 나이에 이런 노래를?? 식의 후진 생각밖에 못하는 언론이 웃긴 거지... 


내친 김에 용필이 형의 멋진 노래 바운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노랫말은 'Baby You're My Trampo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