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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아스퍼거 증후군 소재의 청소년 소설 유감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내세운 소설이 적지 않습니다. 개중에는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수작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책들입니다.



저는 위 세 권 중 앞 두 권을 읽었고, 콜린 피셔는 빌려서 보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돌려줬습니다. 제 아이가 오티즘이어서 더욱 오티즘과 관련된 소설들에는 관심이 가는데, 십중팔구 (제 경험만 놓고 보면 십중십, 100%) 실망이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오티즘 스펙트럼 - 오티즘의 증상이 워낙 다채롭고 폭넓기 때문에 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 표현합니다 - 중에서 가장 위에 놓이는, 그래서 가장 정상에 가까운 증상입니다. 숫자에 엄청난 재능을 보인다든가, 음악에서 절대 음감을 나타내지만 다른 사람과의 의사 소통에는 서투른 주인공을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것으로 포장해서 종종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 써먹곤 하는데, 저는 저런 얼개 자체에 지극한 의심을 품는 편입니다 (아인슈타인도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었다, 라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는 솔직히 그 말도 믿지 않습니다). 위 세 소설들은 그 편차는 있을지언정 다 그런 엉성한 '아스퍼거 증후군'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세 권 모두 호평 받은 것 인정합니다. 하지만 오티즘을 가진 자식을 둔 부모의 눈으로 봤을 때 저 책들은 다 위선적으로 비쳤습니다. 위선이 너무하다면 표피적이라고 해두죠.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사건'은 하도 평단에서 자지러지게 칭찬을 해대는 바람에 제가 먼저 하드커버로 읽었던 책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이런 걸까? 그렇다면 도대체 정상과 다를 게 뭐야? ...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럭저럭 재미지게 읽은 편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극찬할 정도는 아니지만 소재의 특이성과 담담한 작가의 접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권했습니다. 몇 페이지 읽다가 던져버리더군요. 심난해서 도저히 못보겠다면서... 


정상인들 (특히 이런 책을 쓴 작가들)이 생각하는 오티즘(이 너무 광범위하다면 좁혀서 아스퍼거 증후군)은 너무나 자주, 막무가내로 로맨틱합니다. 그것이 마치 신의 축복을 받은 엄청난 재능이라도 된다는 듯이 다룹니다. 축복일 수는 없는 일인데 축복인 것처럼, 어떤 기적 같은 계기로 언제라도 완치될 수 있는 임시 질병인 것처럼, 더없이 유쾌하게 다룹니다. 그런 소설을 보는 실제 부모들은, 내 아이가 소설 속 아이의 10분의 1 만큼이라도 정상성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는 한 편, 평생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증후군의 아이들을 너무나 쉽게 본다, 그게 마치 어떤 특별한 계기나 요법을 통해 하루아침에 완치될 수 있는 '질병'으로 잘못 보고 있다는 절망감을 갖는다는 사실을 저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요? 어떨 때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인물을 내세우는 게 무슨 유행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얼마전에도 아마존닷컴을 통해 'Unlocked: A Love Story'라는 제목의 책을 내려받았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인데, 이 소설은 아예 처음에는 정상이었는데 백신 주사를 맞은 다음에 오티즘에 빠지고 말았다고 단정합니다. 오티즘의 늪으로 떨어지기 전에 함께 놀았던 여자아이를 나중에 커서 학교에서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비현실이다 못해 초현실적이어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700명 넘는 리뷰 평균이 별 다섯이었으니 저로서는 혹시? 하고 기대할 만했습니다. 결국 처음 몇 십페이지를 읽다가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종이책이었으면 발기발기 찢어버리거나 집어던지기라도 했겠지만 e북이어서 그냥 지워버리는 수밖에 없었지요. 평이 저렇듯 압도적으로 좋았다는 얘기는, 오티즘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그처럼 얕고 잘못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더욱 심난했습니다. 어쩌면, 책을 도배하다시피 한 '하나님 감사합니다'의 변주들에 독자들이 감동한 것인지도 모르지만요. 이 소설이 더 기막히다고 여겨진 건 나중에 아이가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는 결말인 듯해서였습니다 (안/못읽었으니 확실하진 않습니다). 오티즘이 무슨 단기 기억 상실증쯤 된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짐 캐리의 전 여친 - 참 잘 헤어졌어요 - 제니 매카시는 오티즘을 가지고 돈 장사까지 제대로 하기도 했지요. 자기 아들이 오티즘인데 '완치' 시켰다며 TV에 나오고 책 내고 정말 광녀 짓을 제대로 했을 뿐 아니라, 종합적인 의학 연구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입증된 '백신-오티즘' 관련설을 사방에 퍼뜨려 미국 전역에 백신 주사 거부 운동까지 불러일으킨 주인공 아닌 '장본인'이었습니다. 오티즘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더욱 깊게 했다는 점에서 제니 매카시는 정말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인종지말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티즘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 훨씬 더 많습니다. 거대한 수수께끼입니다. 오티즘을 의학계에서 'Autism Spectrum Disorder Otherwise Not Specified'라고 명명한 것은, 말 그대로 오티즘의 증상이 그처럼 다양하고 폭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학계의 이해 정도가 구체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수준이 아직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티즘은 소통의 단절입니다. 부모가 그 자식에게 끝내 가 닿을 수 없는, 소통의 벽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그나마 그 벽의 일부가 뚫려 있거나, 아마도 틈새가 살짝 벌어진 양상이 아닐까요? 여러 소설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다루는 것이 꼭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티즘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넓혀주는 기여도 할테니까요. 하지만 수많은 오티즘 소설들의 '오티즘 =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그릇된 등식은 - 설령 작가 자신들의 의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 오티즘의 폭넓기 그지 없는 증상들을 제대로 짚지 않는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오티즘 스펙트럼의 저 아래, 단순한 몇 마디 말은 고사하고 눈 맞추기조차 불가능한 중증 오티즘의 심각성을 도외시하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저는 그런 소설들을 늘 반길 수만은 없는 심정입니다. 


후기: 블루고비님의 '재채기 곰' 블로그에서 '아스퍼거 증후군 탐정' 포스팅을 읽고 댓글을 적다가 내용이 길어져 여기에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