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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호사하는 SF 영화 '오블리비언'


지난 토요일 (5월11일),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오블리비언'(Oblivion)을 아내와 함께 보았다. 개봉한 지 이미 3주가 지나 씨네플렉스의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몇십 명이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관객은 아이언맨 3를 보러 갔을테고, 우리도 그걸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아내도 나도, 굳이 이 영화를 더 보고 싶어 했다. 왜? 톰 크루즈 때문에? 아니, 그 영화의 아름다운 '그림'들 때문에. 톰 크루즈가 타는 순찰 비행선, 톰 크루즈를 감시, 보호, 경계하는 드론(Drone), 톰 크루즈와 여자 동료 빅토리아 (안드레아 리즈보로)가 동거하는 하늘집, 폭격으로 움푹 파여 폐허가 된 펜타곤, 형해만 앙상하게 남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외계인이 파괴해 긴 달걀형으로 흩어져 파편들의 모음이 돼 버린 하늘 위 달의 형체... 예고편을 통해 본 그 절묘한 디자인과 풍경들이, 우리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서기 2077년, 그리 멀지 않은 미래. '테크 49번' 잭 하퍼 (톰 크루즈)는 지구에 마지막 남은 소수의 드론 정비원 중 한 사람이다. 60년전, '스케빈저'로 알려진 외계인들이 달을 먼저 파괴해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를 일으키면서 지구를 기습 침공한다. 지구인들은 핵무기를 사용해 외계인을 물리치지만 그 때문에 전장이었던 지구도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변해버린다. 얼마 되지 않는 생존자들은 토성의 행성 중 하나인 타이탄으로 이주하고, 생존에 필요한 물은 지구의 바다를 끌어다 해결하게 된다. 허공에 떠서, 바닷물을 쉼없이 끌어올리는 사면체 구조물이 사뭇 위압적이고 초현실적이다 (아래 장면).



팀원이자 연인 사이이기도 한 잭과 빅토리아는 매일 샐리로부터 작업을 지시받는데, 샐리는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4면체 모양의 거대한 우주 정거장 '텟'(Tet)에 자리잡고 있다. 잭은 매일 지구 주변을 날면서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고장난 드론을 수리한다. 하지만 잭에게는 빅토리아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같은 꿈을 되풀이해 꾼다는 것.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미지의 여인을 만나는 꿈이다. 또 하나는 파괴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된 은신처다. 호수가 있고, 나무가 있고, 허름한 오두막에, 옛날 LP레코드와 플레이어까지 있는, 그야말로 아날로그의 낙원이다. 잭은 가끔 이곳에 들러 교신도 끊은 채 휴식을 취하면서, 언젠가 여기에서 아예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래).


주인공 잭 하퍼가 이따금씩 교신을 끊고 혼자 휴식을 취하곤 하는 그만의 낙원. 폐허가 된 지구에서 드물게 파괴되지 않은 초록의 전원이다. 이 그림의 실제 장소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준 호수'(June Lake)의 '블랙 연못' (Black's Pond)이라고 한다.


어느날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기 전의 모델인 미국 우주선이 지구에 불시착한다. 하퍼가 달려가 이들을 구해보려 하지만 드론이 나타나 동면하는 승무원들을 모두 살상한다. 잭은 그러나 꿈속에서 보곤 했던 문제의 여성 줄리아 (올가 쿠릴렌코)를 구출하는 데는 성공한다. 줄리아는 자신의 우주선 오딧세이가 NASA의 임무를 띠고 있었다면서도 구체적인 임무의 내용은 끝내 함구한다. 잭은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비행 기록을 찾아내지만, 잭과 줄리아는 지구의 지하에 암약하던 지구인들에게 붙잡히는데, 그들의 지도자인 말콤 비치 (모건 프리만)는 외계인의 침공은 거짓말이라면서 (여기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잭에게 나포한 드론을 재프로그램해 텟을 파괴하자고 요청한다. 잭이 이를 거부했음에도 말콤은 그를 풀어주면서, 접근이 금지되어 있는 '방사능 지역'에서 진실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형해에서(위), 잭은 진실의 일단을 발견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줄리아는 전쟁 전에 당신의 아내였다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되풀이되는 꿈들로 남아 있던 잭의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들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잭은 줄리아를 데리고 하늘집으로 돌아오지만 둘의 대화와 키스 장면을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던 빅토리아는 문을 잠근 채, 샐리에게 잭과 자신은 더 이상 '효율적인 팀'이 아니라고 보고한다. 보고와 함께 드론은 둘의 보호자에서 파괴자로 돌변해 빅토리아를 죽이고 잭까지 죽이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줄리아가 잭의 비행선으로 드론을 파괴한다. 



둘은 비행선으로 도망치지만 드론들이 추격한다. 아슬아슬한 공중전 끝에 (여기에서 어쩔 수 없이 '스타워즈'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접근 엄금인 방사능 지역으로 불시착하는데, 여기에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다. 잭과 똑같은 인물 (클론)이 '테크 52호'라는 이름으로 잭과 똑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말콤이 잭에게 찾아보라고 한 '진실'의 내용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가 뜨뜻미지근한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는 정말 좋았다. 스토리도 그 만하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여겨졌고, 연기도 수준급이었고, 무엇보다 영화의 묵시록적 미래를 보여주는 온갖 풍경과 기계 장치들이 완벽하리만치 좋았다. 특히 어둡지 않고 밝아서, 어둠으로 대충 뭉뚱그리지 않고 정밀하게 디자인된 형태로 다 드러내줘서 더욱 좋았다. 정말 '내 스타일'의 영화였다. 조셉 코신스키라는 감독에게 푹 빠졌다. 그의 기계 디자인은 '기술 유토피아'가 한창이던 70년대의 하이테크 디자인을 21세기로 되살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시절에 대한 오마주라고나 할까? 이런 영화를 더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맨 아래에 오블리비언의 트레일러 중 하나를 붙였다. 내 별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