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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서 (The World's Strongest Librarian)


제목: The World's Strongest Librarian: A Memoir of Tourette's, Faith, Strength, and the Power of Family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서: 투렛 증후군, 신앙, 근력운동, 그리고 가족의 위대함에 관한 회고록)

지은이: 조쉬 해나가니 (Josh Hanagarne)

출판사: Gotham (펭귄 계열사)

출간일: 2013년 5월2일

분량: 288 페이지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립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는 조쉬 해나가니의 솔직하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회고록. 몰몬 교도의 아들로 태어나, 투렛 증후군 때문에 학교와 사회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끝내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고 장애에 맞서는 저자의 사연이 퍽 흥미롭다. 비단 자신의 장애와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도서관의 매혹, 감동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 도서관에 만나는 온갖 기기묘묘한 군상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조쉬 해나가니는 도서관 사서에 대한 일반의 통념을 보기 좋게 깨트리는 인물이다. 흔히 사서, 하면 떠올리게 되는 안경이나 학구적 인상, 혹은 고리타분할 것 같은 이미지, 작은 체구, 그리고 대개는 나이 지긋한 여성과 조쉬는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을 수가 없다. 이제 30대 중반인 그는 2미터가 넘는 거한인 데다 케틀벨을 이용한 체력 훈련에 열성을 쏟는 운동광이다 (케틀벨을 그는 ‘손잡이가 달린 대포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서’라는 말은 농담이나 은유가 아니라 사실에 더 가깝다. 


그는 매일, 그가 일하는 솔트레이크 시립 도서관의 지하나 집 지하에 설치된 운동 시설을 열성적으로 이용한다. 집 마당에 놓인 300파운드(136 kg)짜리 (바위에 가까운) 돌을 수시로 들어 이리저리 옮기는 운동도 빠트리지 않는다 (아래 사진). 그가 이처럼 근육 운동에 집착하는 것은 어린시절부터 그를 괴롭혀 온 ‘투렛 증후군’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중 하나다. ‘틱 장애’라고도 하는 투렛 증후군 (Tourette’s Syndrome)은, ‘얼굴 찌푸리기, 왔다 갔다 하기, 빙빙 돌기, 소리 지르기, 킁킁거리기, 기침하기, 중얼거리기, 특정 말(특히 상스런 소리)을 되풀이하기 등의 불수의적 근육 경련 및 음성 경련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인 유전적 장애’이다 (인용: 네이버 지식 사전). 조쉬의 투렛 증후군은 그 중에서도 악성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얼굴을 가격하거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기묘한 소리를 내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그 때문에 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여학생과 교제할 기회도 거의 없었음은 물론이다. 고교 시절 큰 키 덕택에 학교의 농구 대표팀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그의 투렛 증후군에 대한 상대 학교 응원단들의 놀림과 비웃음은 차마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조쉬의 시선은 늘 낙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 독실한 몰몬 교도인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어머니와 결혼하기 위해 개종했지만 종종 ‘사이비’ 취향을 드러내며 독자들을 웃기곤 하는 아버지의 시니컬한 유머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회고록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머니의 모범적 생활 태도는 “좋게 말할 게 없다면 아예 말을 하지 말아라” (If you can’t say anything nice, don’t say anything at all)로 잘 표현되고, 늘 일에 열심인 아버지의 철학은 “일은 남자가 해야 할 일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남자는 정상이 아니야” (Work is what a man does.” He said, “Men who don’t work hard aren’t normal)로 집약된다.


‘내 삶에서 늘 부족한 것은 침묵과 정적이었다. 그것을 만날 수 있는 때는 오직 세 경우 뿐이었다. 잠잘 때, 책 읽을 때, 그리고 신성 모독 발언을 할 때” (Silence and stillness were in short supply in my life. There were only three times when I could count on them: when I slept, when I read, and apparently when I blasphemed). 틱 장애 때문에 늘 부산한 움직임과 기괴한 소리를 내는 그가, 늘 조용해야 하는 도서관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역설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인간 승리이기도 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집안에 있는 내내 책을 읽었고, 밖에 나가 놀라고 하면 책을 들고 나가 강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식이었다. 그에 대한 일종의 선물이 도서관에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E. B. 화이트의 동화 ‘샬럿의 거미줄’에 깊이 감동받아 여자 주인공인 펀(Fern)과 결혼하겠다고 해 부모를 포복절도하게 만든 일은 책과 관련된 여러 일화중 하나이다. 그런 책 사랑과, 투렛 증후군 때문에 여러 대학들을 전전하면서도 쉼 없이 공부하며 지식을 쌓은 점, 그리고 투렛 증후군을 극복하고 말겠다는 의지력이 서로 부합해 그를 도서관 사서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투렛 신드롬과의 투쟁으로만 채워진 것은 결코 아니다. 어린시절 그의 삶을 뒤흔든 여러 책 이야기, 도서관에서 받은 감동,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의 연애담, 몰몬 교도로서 워싱턴 D.C.로 2년간 선교 활동을 떠난 체험담, 결혼, 두 번에 걸친 아내의 유산과 그 때문에 아이를 갖지 못해 겪어야 했던 괴로움, 결국 아이를 입양하려고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필요한 코스를 다 거쳤으나 막판에 실격해 그조차 이루지 못한 좌절감, 그러나 전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아이를 갖게 된 충격과 긴장, 환희, 그리고 케틀벨을 이용한 근육 운동에 푹 빠져 아이언맨 캠프에 간 이야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 맥스도 투렛 증후군을 앓게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의 마음 등이, 도서관의 듀이 십진법을 본뜬 장(章)들로 나뉘어 다채롭고도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대부분의 장들은 현재 시점에서, 지은이가 일하는 도서관을 찾아오는 온갖 기기묘묘한 군상들의 웃지 못할 사연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뒤이어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 모든 것이 모바일화, 네트워크화,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도서관은 아직도 유효한가에 대한 그의 고민들은, 이 회고록의 독자층을 한층 더 넓게 확대해주는 수단이자, 더없이 흥미롭게 읽히는 대목이다. 


전체적으로 평이하면서도 단정한 문장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적절히 배치해 쉽고 빠르게 읽힌다. 지은이는 숨김없이 진솔하고 직설적으로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래서 독자들은 지은이의 이야기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시각적이고 생생한 표현과 비유, 그리고 사물이나 사건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관조하는 듯한 어투가 독자들로 하여금 슬몃 웃음짓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이다. ‘아침 일곱 시에도 사람들이 (카지노에서) 돈을 잃는 소리의 불협화음은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Even at seven in the morning the cacophony of people losing money served as background music). ‘엄마가 슬롯머신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엄마가 선정적인 폴 댄싱을 하는 장면처럼 더없이 낯설었다’ (The thought of my mom playing the slot machines was as alien as the thought of her pole dancing). ‘그가 차 유리창을 노려볼 때면, 그 눈초리 때문에 유리창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았다. 나는 도로 곳곳의 구멍들이 그의 눈초리 때문에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When he stares through a windshield, you think it’s going to shatter. I held him responsible for every pothole on the road). 


그의 도서관 예찬론, 왜 도서관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디지털 시대일수록 더 필요한가에 대한 논점, 도서관 사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종교 관련 서적은 픽션으로 분류돼야 하는가, 아니면 논픽션 코너에 놓아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들도 흥미로운 읽을 거리다. 


어느 독자라도 쉽사리 흥미를 느낄 법한 일상의 내용들을 유쾌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문체로 평이하게 풀어낸 것이 장점이다. 지은이의 상황이 미국, 그 중에서도 몰몬 교도들로 유명한 유타 주만의 특이 사항이어서 일반 사람들이 낯설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기우로 만들면서, 지은이는 자신의 회고록을 도리어 어려움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건전한 젊은이의 성장 소설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은 나오기 전부터 작지 않은 화제를 뿌렸다. 오프라 윈프리의 잡지 ‘O’는 2013년에 기대할 만한 10권의 신간 중 하나로 이 책을 꼽았고, 조만간 그의 책이 ‘오프라의 선택’에 꼽힐 것이라는 풍문도 떠돈다. 여러 도서관 사서들 사이에서 ‘추천작’으로 일찌감치 떠올랐고, 아마존닷컴의 자서전, 회고록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별점은 ★★★★☆


아래 유튜브 비디오는 조쉬 해나가니의 사연을 요약한 것. 여간 흥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