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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대슈너의 'The Maze Runner'...일본의 '간츠' 연상

청소년을 겨냥한 묵시록적 SF 'The Maze Runner'('미로의 달림이'쯤 되겠다)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전자책으로 빌려 포틀랜드에 가 있는 동안 읽었는데 잽싸게 끝내지 못하고 질질 끌면서, 때로는 이야기의 흐름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한 채 겨우 끝냈다. 3부작이지만 2, 3부까지 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에서 'The Maze Runner'는 이 3부작의 선택 받은 자, 특별한 인물,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인물, 주인공인 토마스다. 토마스는 자기 이름을 제외하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 나중에 밝혀지지만 기억을 인위적으로 삭제당한 채 - '글레이드'(Glade)라는 이름의 수수께끼 공간으로 옮겨진다 (글레이드는 숲속의 빈터라는 뜻). 


세상 밖으로 나갈 출구를 찾을 길 없는 글레이드에는 토마스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들 수십 명이 각자 정해진 일을 수행하며 자기들만의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 또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왜,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오게 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글레이드를 둘러싼 거대한 미로(maze)를 뛰어다니며 출구를 찾아 왔다. 소설 제목인 '메이즈 러너'는 글레이드를 막아놓은 거대한 담장(옆 책 표지 그림)이 열리는 아침부터, 그 담장이 다시 닫히는 저녁까지 출구를 찾기 위해 미로 곳곳을 뛰어다니며 그 길을 기억한 뒤 그 결과물을 꾸준히 축적하는 역할을 맡은 이들을 가리킨다. 


글레이드를 둘러친 높다란 담장은 글레이드 거주자들을 가두는 감옥이지만 밤에는 'Griever'라는 끔찍한 괴물의 공격을 막아주는 보호막이기도 하다. 글레이드의 소년들은 언제 탈출하게 될지, 아니 과연 탈출할 날이 있기나 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자기들끼리 위계 조직과 규칙을 세우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은 채 계속 미로의 비밀을 찾아내려 분투한다. 토마스는 그 와중에 나타난 '신참'인 셈인데, 어쩐 일인지 과거에 이곳에 와본 듯한 기시감을 문득문득 느끼는 한편, 글레이드 공동체에서의 자기 일은 농사 짓기나 요리, 잡무가 아닌 '미로 달림이'(메이즈 러너)일 거라는 확실한 예감을 갖는다. 


그가 수수께끼의 신세계를 이해하려 좌충우돌하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또다른 인물이 글레이드로 이송된다. 매달 한 명 꼴이던 전례를 깨는 이변이었다. 이변은 그뿐이 아니었다. 신입자가 남자가 아닌 여자였던 것. 게다가 '앞으로 더 이상의 신규 멤버는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까지 발표된다. 대체 이 여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글레이드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킬까? 토마스는 갑자기 나타난 여자를 보면서도 어디선가 만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대체 글레이드 공동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15세 안팎의 청소년들은 어떤 연유로 이 갇힌 공간으로 이송되었을까? 글레이드를 둘러싼 거대한 미로는 무엇일까? 미로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밤마다 출현해 글레이드를 공포에 몰아넣는 그리버들의 정체는 또 무엇일까?


<The Maze Runner>의 최대 강점은 수수께끼이다. 궁금증이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그래서 그 비밀이 궁금해 '그래서? 그래서?' 하고 독자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하는 설정이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은 필요 없고 계속 읽어가면 돼요~ ^^). 어딘가 알 수 없는 세상으로 이송되고, 그 새로운 비밀의 세상에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설정은, 만화로, 그리고 영화로 큰 인기를 모은 일본의 SF (뒤로 가면서 SF보다 '엽기 호러물'의 성격을 더 짙게 띠지만) '간츠'(Gantz)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소설에 엽기성이나 역겨움은 별로 없다. 또 이야기의 복잡성도 한참 더 낮다. 토마스라는 주인공에 집중된 이야기 구조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선택 받은 '1인 영웅'의 신화에 종종 기대는 미국의 서사 구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2부, 3부로 가면서 왜 글레이드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왜 일부 청소년들이 선별되어 모종의 실험 대상으로 작동했는지 더 상세하게 설명될 것이다. 하지만 1부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태양의 혹점 폭발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지구 전체를 불태워 사실상 멸망 상태로 몰아넣는 바람에 그에 대한 대책으로 유망한 젊은이들을 선발해 글레이드 실험을 벌였다는 설정은, 나로서는 '엥?'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아마 그 사이에 무엇인가 피치 못할 사연이 있으리라 예상되지만 2부, 3부까지 따라가고 싶어질 정도로 흥미롭지는 않았다. 등장 인물들의 개연성과 깊이, 호감도도 내게는 별로 크지 않았다. '특출한 재미까지는 주지 못하는 범작 청소년용 SF'라는 게 내 감상이다. 별 점은 다섯 개중 세 개. 아래 유튜브 비디오는 이 책의 비디오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