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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과연 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라는 책으로 공전의 인기를 끌었고, 유독 한국에서 더욱 큰 인기를 모으는 마이클 J.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새 저서 <What money can't buy - the moral limits of markets>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시장의 윤리적 한계)를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소설이 아닌 논픽션은 웬만해서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 내 영어 청취력이 좋았다는 뜻이 아니라, 책의 내용이 그만큼 쉽고 시사적이고 흥미로웠다는 뜻이다. 특히 숱한 관련 사례를 들어 요즘 세상이 얼마나 심각하고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되어가는지, 샌델 교수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 사회가 '시장 경제' (market economy)라는 한 체제를 넘어 아예 사회 자체, 사회의 구석구석이 '시장 사회'(market society)로, 돈의 사회로 변질되고 있는지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샌델 교수가 이 책에서 예시하는 시장 사회화의 수준은 실로 충격적이다. 턱없이 진부하게 들릴 것을 무릅쓰고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다.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한 순번표가 진료비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가 하면, 병원은 값비싼 연회비를 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아무 때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간의 장기가 버젓이 거래되는가 하면, 자기 몸을 광고판처럼 내놓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돈 받고 피를 파는 매혈은 어엿한 생계 수단이다. 심지어 '탄소 배출권'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들끼리, 혹은 나라끼리 이를 거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돈만 내면 대기 오염도 정당화 된다는 그릇된 인식까지 낳을 지경이 됐다. 


그와 더불어 뚜렷하게 감지되는 또 다른 변화는 거의 모든 것의 금전화다. 이전까지는 금전적 가치를 매기지 않았던, 정서적 가치나 윤리적 가치, 무형의 사회적 가치로만 여겨졌던 것들이 하나둘 돈으로 환산되고, 따라서 그 대상에 대한 행위와 관계 또한 자본주의적 논리 속에 편입되게 되었다.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시장 사회'의  도도한 물결인 셈이다. 그 중 한 사례를 든다면, 운동 선수나 유명 연예인들이 해주는 사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나 연예인의 사인을 받을 때, 나중에 이걸 비싸게 팔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냥 기념으로, 내 삶의 한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기 위한 징표였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그게 다 돈이다. 그것도 큰 돈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프로스포츠가 유독 발달한 미국의 경우 유명 운동 선수들은 처음부터 사인비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의 사인이 새겨진 공이나 카드가 비싼 값에 거래되고, 아예 그런 거래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까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어떤 학교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돈을 준다. 성적이 올라가도 돈을 주고, 자원봉사 활동을 잘해도 돈을 준다 (그러면 이게 '자원' 봉사일 수 있는 건가?). 여러 대학이나 자치구들은 건물이나 시설물에 이름을 붙여주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다.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들은 일정 금액 이상을 내는 사람들에게 영주권을 준다. 말하자면 시민권을 돈 받고 파는 셈이다.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세상임을 보여주는 증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샌델의 책은 그 기막힌 사례들을 적절히 짚으면서, 그게 과연 윤리적으로 온당한 일인가 묻는다. 돈으로 된다고 해서, 돈으로 사거나 파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다 용인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샌델은 윤리의 시각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강조한다. 왜 안되는가? 본래의 목적과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왜 안되는가? 해당 시스템을 부패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돈의 논리로 밀어부칠 때, 윤리적 가치와 사회 공동체의 가치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샌델은 지적한다. 돈을 일종의 자극제나 동기 부여제로 활용하려는 사회 각 부문의 여러 시도도 그런 우려스러운 흐름의 한 축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맹신하는 극자본주의적 발상은 사회의 윤리적 가치에 큰 위험을 몰고 올 수 있다. 삶의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으로 사려 해서는 안되는 것'을 구별하고 구분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일종의 예화집 같다. 도대체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무엇일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금전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의 삽화집 같다. 그래서 깜짝깜짝 놀란다. 이 정도까지? 하지만 약간의 충격 효과 외에, 그 이상의 함의나 통찰을 얻기는 힘들다. 샌델 교수의 윤리적 고언과 제안은 이론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실행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개탄할 대목은 부지기수지만, 그 대목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은 턱없이 부족하고 약하다. 그래서 '듣는' 동안은 참 재미있었지만, 그로부터 무엇인가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통찰을 얻었다는 느낌은 적었다. 별점은 다섯 개중 세 개 반.


사족. 그렇게 맞추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이 책을 듣던 중에 한국 영화 '돈의 맛'을 보았다. 그 영화가 보여주는 돈의 맛, 돈의 힘, 돈의 권력, 돈의 위력을 보면서, 문득 샌델 교수의 외침이 광야의 무력하고 속절없는 바람소리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