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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童心)의 아름다움, 동심의 마법 - 케이트 디카밀로

우연히 케이트 디카밀로 (Kate DiCamillo)의 청소년 소설 두 편을 읽었다. <내 친구 윈-딕시>(Because of Winn-Dixie, 2000년 출간)와 <마법사의 코끼리> (Magician's Elephant, 2009년). 둘 다 아마존 킨들용 전자책이었다. 후자는 다나카 요코의 환상적인 그림까지 곁들여 읽는 즐거움뿐 아니라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먼저 <내 친구 윈-딕시>. 이 글을 쓰려고 이리저리 뒤적여 보니, 2005년에 이를 바탕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트레일러는 이 글 말미에 달아놓았다). 


윈-딕시는 대형 식료품점 체인의 이름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 급으로, 영어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크고 작은 일들의 단초가 되는 특별한 개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름 이상하기로는 윈-딕시에 못지 않은 열살바기 여자아이 '인디아 오팔'은 식료품점 윈-딕시에 갔다가 그곳에 우연히 들어온 연고 없는 개가 그곳 점원들에 의해 유기견 처리소로 보내질 위기에 처한 걸 보고 자기 개라며 구조 작전에 나선다. 개 이름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얼떨결에 지은 이름이 '윈-딕시.' 점원들이 뜨악스런 표정에도 오팔은 꿋꿋이 "정말 이름이 윈-딕시예요. 정말이라니까요?" 더 걸작은 그 개도 오팔과 죽이 맞아 윈-딕시! 하고 부르는 데 제꺽 반응할 뿐 아니라, 온 이빨을 다 내보이며 씨익 웃어 보였다는 점. 


이후 오팔의 삶은 윈-딕시 때문에/덕택에 한껏 흥미로워진다. 어릴 때 집을 나가버려 기억조차 못하지만 늘 그리운 엄마, 자상하고 너그럽지만 늘 바빠 딸에게 시간을 잘 내주지 못하는 전도사 아빠, 게다가 플로리다 주의 작은 마을 나오미(Naomi)로 갓 이사와 그 외로움이 더욱 컸던 오팔은 눈치도 빠르고 씨익 멋지게 웃는 윈-딕시 덕택에 미처 상상조차 못했던 다양한 인물을 친구로 사귀게 된다. 


도서관의 사서 할머니 프래니, 눈이 잘 안보이는 또 다른 할머니 글로리아, 그리고 윈-딕시의 목에 두르는 가죽끈의 비용을 청소 아르바이트로 갚기로 하고 매일 찾아가는 애완동물용품 가게의 내성적인 기타리스트 오티스 등 오팔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삶은 더없이 흥미롭다. 오팔이 그들과 나누는 사연, 윈-딕시와 나누는 기쁨이나 슬픔, 아빠와 나누는 대화 등은 초등학생 수준에 맞게 단순하고 직설적이지만, 하나같이 따뜻하다. 진정성이 묻어난다. 그래서 교훈의 의도가 감지돼도 별로 거북스럽지 않다. 명작 아동도서들에 주는 뉴베리 상 후보에 올랐다. 별 다섯에 넷. 다섯 다 못준 이유는 그래도 너무 아동물스러워서...



<마법사의 코끼리>.표지부터 참 마법스럽다. 공중에 둥둥 뜬 코끼리는 평화롭게 눈을 감고 있고, 그 아래 마법사가 서 있다 (옆 표지에는 마법사가 없다. 하드커버용 표지에는 마법사가 나와 있다). 무슨 내용일까 퍽이나 궁금하다. 


무대는 상상의 나라 발티즈. 시대도 꽤 오래전이다. 고아인 피터는 전사한 아빠의 전우이자 전쟁의 망상에 사로잡힌 상이 군인 빌나 루츠와 거의 기아 선상의 삶을 살고 있다. 이 날도 저녁끼니용 빵과 '가능한 한 가장 작은' 생선을 사러 나온 길이다. 하지만 '어떤 어려운 질문에도 답을 해준다'라는 점쟁이의 글귀에, 저녁 끼니용 돈을 털어서라도 그간 품어 온 궁금증을 풀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제 여동생..." "네 여동생은 살아 있지" 점쟁이의 망설임 없는 대답. '살아 있다! 정말 살아 있구나!...' "아니, 제 질문은 여동생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느냐는 거예요. 제발 알려주세요."


"코끼리. 코끼리를 좇아가거라. 여동생을 찾을 수 있을거야." 점쟁이의 수수께끼 같은 대답. 하지만 발티즈에 대체 코끼리가 어디 있단 말야? 


하지만 이 소설의 부제가 뭔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라.' 


발티즈의 다른 편, 오페라 극장에서, 마법사가 관객 중 한 사람인 귀부인을 불러내어 그녀에게 백합꽃 한 다발을 만들어 선사하는 시범을 보이려다 순간 욕심이 동해 더욱 강력한 마법의 주문을 왼다. 돌연 극장 천장을 뚫고 코끼리가 나타나, 그 귀부인의 무릎 위로 떨어진다. 귀부인의 다리가 성할 리 없다. 귀부인은 불구가 되고, 마법사는 감옥에 갇힌다. 애먼 코끼리도 감옥에 갇힌다. 발티즈의 주민들은 이제 온통 신비한 코끼리, 코끼리 얘기뿐이다. 


한편 피터가 사는 곳으로부터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고아원에는 피터의 여동생 아델이 살고 있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아델은 계속 코끼리를 만나는 꿈을 꾼다. 코끼리가 고아원 문을 두드리고, 나이 든 고아원 원장에게 아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꿈. 이해할 수 없지만 아델은 그 코끼리의 언어를 이해하고, 잠에서 깨어서도 코끼리를 잊을 수가 없다. 이 코끼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마법사의 코끼리>는 동화 자체가 마법처럼 읽히는, 참 따뜻하면서도 애잔하고,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하고, 유치한 듯하면서도 심오한 가작이다. 다나카 요코의 그림 풍도 그런 마법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피터와 빌나 루츠, 피터를 안쓰럽게 여기는 경찰, 아델과 고아원장, 고아원 밖에서 기식하는 거지 토마스와 그의 눈 먼 개, 마법사와 그의 마법으로 피해를 본 코끼리와 귀부인, 허영으로 가득찬 백작부인 등 다종다양한 인물이 출연해 연출하는 복잡다단한 관계의 끈 또한 마법처럼 변모하고 발전하고 화해한다. 


성인용 소설에 늘 있게 마련인 악당은, 특히 용서받지 못할 악당은, 이 마법의 동화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동화의 한계로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 디카밀로는 그런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독자의 마음 속을 훈훈한 마법으로 가득 채운다. 이[齒] 하나 없는 순박한 양치기 여자와 결혼해, 맑은 어느날 밤 언덕에 함께 누워 무수히 빛나는 별을 보고 있을, 코끼리 사건 이후에는 두 번 다시 마법을 쓰지 않게 된 마법사의 소박한 마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별 다섯에 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