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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비늘

성 패트릭 데이의 눈(雪)

이 때는 '토론토의 시베리아'로 흔히 불리는 스카보로(Scarborough) 지역에 살던 시절이다. 토론토 다운타운에서는 차로 1시간쯤 걸린다. 안막히면 3, 40분에도 오지만, 막히면 2, 3시간도 보통이다. 하지만 동네 자체는 참 예쁘고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내가 살던 지역은 루지 힐 (Rouge Hill)이라고 불렀다. 위 사진은 집 앞마당 풍경이다.

토요일 (3월17일) 아침 게으르게 일어나 보니 밖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대충  가늠하기로 5~10cm 수준. 제법 많은 눈이다. 하지만 바람이 잠잠했던지 그 눈들은 얌전하게 내려앉아 실로 '소복하다'라는 표현에 맞게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연출했다. 

문득 오늘이 '성 패트릭 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성 패트릭 데이에 대한 농담들을 주고받은 기억도 났다. 짐짓 아이리쉬 풍의 음식이 있는지 웨이터에게 물었고, 맥주도 기니스(Guinness)로 마셨다. 내일 (그러니까 오늘)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벌어질 성 패트릭 데이 퍼레이드에 갈까 말까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때 아닌 -토론토 사정으로 본다면 꼭 '때 아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 눈이 내렸으니... 혹시 퍼레이드에 다소 차질이 있지 않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리 큰 눈도 아니고... 

낮으로 가면서 해가 반짝 했고, 고속도로의 눈은 감쪽같이 다 녹았다. 겨울이 고집스레 기승을 부리는 듯해도, 봄기운이 이미 사방에 완연함을, 그 고속도로를 오가며 뚜렷하게 확인했다. (2007/03/18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