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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잊고 싶은 기억: 토론토에서 기차로 출퇴근하기

토론토에는 그 인근 지역과 연결된 통근 전용 열차가 있다. 'GO'라는 이름이 붙은 기차 서비스다. 관할 기구는 토론토 시가 아니라 온타리오 주정부다. 이름은 번듯한 'GO'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너무 많다. 걸핏하면 늦고, 중간에 이유없이 - 물론 뭔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이유없이'와 다를 바가 없다 - 선 채 가지 않거나, 한두 편 취소하기를 밥 먹듯 한다. 아래 글들은 1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토론토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스카보로 지역에 살면서 기차로 출퇴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 다시 열 받는다. (2012년 2월18일)


정차역을 지나쳤습니다...!  

"다음역은 루지힐입니다." 

길드우드 역에서 한 5분쯤 달리면 내가 내릴 곳이다. 토론토의 끝자락에 있는 역이라 내리는 사람이 유독 많다. 그 다음 역인 피커링은 토론토가 아닌 다른 도시다. 

어어... 기차가 멈춰설 때만 기다리며 딴생각에 빠져 있는데 웅성거림이 들렸다. 창밖을 보니 낯선 풍경이다. 내리려고 미리 서 있던 이들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기차가 정착역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승차권을 '취소'한다고? 

출퇴근 때 타는 '고 기차' (GO Transit, 고기 차? 고기차?)용 승차권에는 세 종류가 있다. 월정액 승차권, 2회용/10회용 승차권, 그리고 일일권. 2회용은 왕복권, 그리고 10회용은 닷새 동안 통근할 수 있는 분량이다. 

흥미로운 것은 월정액을 제외한 나머지 승차권의 경우 매번 타기 전에 팝(POP, '지불 증명'이라는 뜻의 Proof Of Payment의 약자)이라는 기계에 승차권을 집어넣어 탄 날짜와 시간이 찍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찌지직~' 하는 옛날 도트(dot) 프린터 특유의 소리와 함께 숫자가 찍히면 기차 탈 준비가 끝난다. 

머피의 법칙

'나쁘게 갈 가능성이 있는 일은 꼭 그렇게 나쁘게 된다(Whatever can go wrong, will go wrong).' 머피의 법칙이다. 

4월의 첫 월요일, 그 법칙이 고스란히 내게 적용되었다. 아침 출근길. 내가 탄 기차가 막 역을 떠날 즈음, 문득 4월치 기차표를 사지 않은 게 떠올랐다. 아뿔싸! 지난 금요일이 3월30일이었고, 주말을 거치면서 4월이 시작되는 사이, 나는 그 달 바뀜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겨우 한 번인가 두 번 검표원이 기차를 돌았던 게 떠올랐다. '설마... 괜찮겠지. 유니언 역에 도착하자마자 표부터 사야겠다...' 

고? 노 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 트랜짓 (GO Transit). 그 문제 많다는 GO 열차의 문제의 중심에, 제대로 걸렸다. 사고 얘기를 듣기만 했지 내가 그 안에 엮인 적은 없었다. 

어제 아침, 체감온도가 30도 밑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 친 그 날 아침, 아니나다를까, GO 열차는 예정 시각보다 15분쯤 늦게 도착했다. 날씨가 평소보다 춥거나, 눈이나 비가 많이 내리면 거의 어김없이 '신호(기) 문제'를 들먹이며 단골 지각하는 그 행태가 또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 수밖에... 날씨는 춥고, 마음은 바쁘고... 

겨우 탄 기차, 이번에는 아예 서버린다. 세 번째 정거장이었다. 엔진 고장이란다. 오! 아! 무기력한 우리 승객들은 그저 한탄이나 할 수밖에... 

사악함   

아침 기차를 타려고 역에 나갔더니 플랫폼의 셸터 (shelter, 대합실?)에 '또' 흠집이 났다. 어떤 작자가 유리창을 깬 것이다. 유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마치 범죄 현장의 표식처럼 노란 테이프가 가위표로 붙어 있다 (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