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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음반사에 딸린 ‘버금상표들’ ... 독특한 색깔로 승부

주요 음반사들, ‘서브레이블' 붐...깊고 독특한 음색들 | NEWS+ 1997년 8월14일치

레이블을 알면 명반이 보인다.

명반까지는 아니더라도 음반의 성격이 보인다. 바로크 음악을 통해 현실 도피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하르모니아문디 프랑스」(HMF)나 「도이치하르모니아문디」(DHM) 딱지를 눈여겨보는게 좋다.

「아르히브」「기멜」「르와조리르」「오비디스」등도 빠뜨려서는 안된다. 한편 실험적인 현대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논서치」나 「포인트뮤직」, 「카탈리스트」 등의 레이블에 주목할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클래식 음반 시장의 주류(主流)는 5개 거대 음반사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

도이체그라모폰(DG) 필립스 데카를 한데 아우른 폴리그램 EMI 소니 워너뮤직 BMG 등이 그들이다. 흔히 「메이저 레이블」 (Major Lable)로 통칭되는 공룡 기업들이다.

수백개에 이르는 나머지 음반사들은 그 상대 개념으로서 「마이너 레이블」(Minor Lable)이라는 말로 수렴된다.

그러한 이분법은, 그러나 음악의 한 진수(眞髓)를 가리는 문제점을 피하지 못한다. 「마이너 레이블」이라는 말로 미처 드러낼 수 없는 절경이 그 수백개의 크고 작은 레이블들에 숨어 있는 것이다.

깜짝 놀랄 만한 풍경은 메이저레이블 속에도 숨어 있다. 이들에 딸린, 이른바 「서브 레이블」(Sub Lable)이다.

마이너레이블이 독립적인 기업으로서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전략을 갖는 데 견주어, 서브레이블은 대개 메이저레이블의 부족한 면을 보태고 기워주는 구실을 한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메이저레이블에 종속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음악적 성격은 오히려 마이너레이블에 더 가깝다.

● 도이체그라모폰의 서브레이블

△아르히브(Archiv)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고음악 전문 레이블이다.

존 엘리어트 가디너, 라인하르트 괴벨, 트레버 피노크, 폴 매크리시 등 아르히브에 전속된 명연주자들의 이름에서 그 깊이와 너비가 가늠되거니와, 바로크시대 전후의 음악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는 타의 추종이 불허할 정도이다.

아르히브는 46년, 당시 하노버 교회음악학교 교수였던 프레드 하멜 박사의 음악학 연구시설에 그 모태를 대고 있다. 최초의 녹음은 1947 년 8월과 9월 사이에 뤼베크에서 진행된 헬무트 발햐의 오르간 연주였다.

아르히브의 행보는 바흐 사망 200주년이던 1950년부터 본격화했다. 바흐 음악의 대가 카를 리히터가 아르히브를 통해 명반을 남겼으 며, 아우구스트 벤징거, 랠프 커크패트릭 등 당대의 고음악연주자들이 아르히브의 음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가디너가 아르히브의 명성을 90년대로 이어나갔다. 94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녹음으로 「그라모폰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받은 것.

괴벨의 「무지카 안티콰 쾰른」, 매크리시의 「가브리엘리 콘소트 앤드 플레이어즈」, 마르크 민코프스키의 「루브르의 음악가들」 등 내로라하는 정격연주가와 연주단체가 속속 아르히브에 가세했다.

『역사적인 연주관습과 오리지널 악기에 의한 고대음악을 완성해야 한다』던 하멜 박사의 꿈이 40년후 현재에 이르러 「정격음악」으로 활 짝 꽃핀 셈이다.

● 필립스의 서브레이블

△기멜(Gimell)

1981년 프로듀서인 스티브 스미스와 음악학자이자 합창 지휘자인 피터 필립스가 설립한 종교음악 전문 레이블. 티없이 맑고 정제된 소리 로 적잖은 음악팬을 확보하고 있는 아카펠라합창단 「탈리스 스콜라스」의 노래를 전문으로 녹음하고 있다.

현재까지 30여종을 발매했으며, 최근 요하네스 오케겜의 탄생 5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들을 녹음했다.

기멜은 라틴어로 「쌍둥이」라는 뜻.

한 성부를 둘로 나눈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용어이기도 하다.

△머큐리(Mercury)

1956~64년 「리빙 프레즌스」(Living Presence) 시리즈로 음질의 새 장을 열었던 미국의 레이블.

실제 연주회장에서 듣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뿐 아니라 안탈 도라티, 라파엘 쿠벨릭, 헨릭 셰링, 야노스 슈타커 등 연주자들의 「품질」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61년 필립스에 편입된 이후에는 복각 레이블로 물러 앉았지만, 그 음질의 수준은 여전히 최상급이다.

△포인트뮤직(Point Music)

개빈 브라이어스, 필립 글래스 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의 현대음악을 주로 녹음하는 레이블이다.

다음과 같은 필립 글래스의 말은 포인트뮤직 레이블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여러 해에 걸친 연주여행을 통해 재즈나 팝, 댄스 음악뿐 아니라 「모든 유형의」 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포인트뮤직은 그 들을 향한 것이며, 광범위한 음악 형태를 실험하고 만드는 음악가들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레이블이다』

△이매지너리 로드(Imaginery Road)

올해 태어난 서브레이블. 「또다른 모차르트」(A Different Mozart)가 첫 작품이다. 뉴에이지음악이나 크로스오버 음악을 주로 녹음할 계획.

● 데카의 서브레이블
△르와조리르(L'oiseau-Lyre)

새로운 역사적 미학적 표준에 따라 고음악을 그 시대 악기로 연주, 녹음하는 레이블(르와조리르는 금계(金鷄)라는 뜻.

1950년 설립된 르와조리르는 프랑스 파리의 악보 출판사로 시작했다. 53년부터 데카의 도움을 받아 실내악과 고음악을 녹음했으며, 70년대 「플로릴레기움」(Florilegium) 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중세 르네상스로부터 낭만파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단아하고 고전적인 풍미가 남다르다.

「정격음악계의 카라얀」으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를 비롯해 필립 피켓, 크리스토프 루세 등이 르와조리르를 대표 하는 명연주자들이다.

△아르고(Argo)

영화 「피아노」의 음악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마이클 나이먼이 아르고 소속이다. 마이클 도허티, 존 할리, 마이클 토크 등 현대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도 아르고에 적을 두고 있다.

1952년에 영국에서 창립된 아르고 레이블은 친숙하면서도 낯선, 오래됐으면서도 새로운, 보수적이면서도 진보적인, 공유될 수 없 을 듯한 이질적 요소들을 절묘하게 배합한 연주를 들려준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인의 심장을 흐르는 노래」가 나왔다.

● EMI의 서브레이블

△버진 클래식스(Virgin Classics)

1988년 탄생한 버진 클래식스는 EMI의 서브레이블이라기보다 그와 동등한 협력 관계에 놓여 있는 독립 레이블에 더 가깝다. 채 10년도 안 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휴, 미하일 플레트네프, 스티븐 이설리스, 도무스 피아노4중주단,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등 쟁쟁한 연주자 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메이저레이블을 위협할 만한 대형 음반사로 급성장했다.

특히 리용오페라의 예술감독인 켄트 나가노는 프로코피에프의 「세개의 오렌지의 사랑」으로 그라모폰상을 수상, 버진 레이블의 이름값을 높였다. 현 재 250여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 BMG의 서브레이블
△도이치하르모니아문디(DHM)

루돌프 루비에 의해 1958년 설립된 DHM은 「라 프티 방드」「콜레기움 아우레움」 같은 정격연주 단체, 쿠이켄 형제,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르네 야콥스 같은 명연주자들로 인해 급속히 바로크시대 음악의 보고(寶庫)로 자리잡았다.

정확한 고증과 작품해석으로 높은 권위와 예술성을 쌓아 왔으나 재정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아 EMI(86년)를 거쳐 BMG의 그늘로 들어왔다. 토 마스 헹겔브로크가 이끄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 안드레아스 슈타이어, 크리스트포 프리가디언 등 빛나는 샛별도 많은 레이블 이다.

△카탈리스트(Catalyst)

존 코릴리아노, 필립 글래스 등 혁신적인 현대작곡가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동시대 음악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93년 설립됐다. 「촉매」라 는 뜻에 걸맞게 현대음악의 폭과 깊이를 늘리는 데 촉매제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멜로디야(Melodiya)

옛 소련의 영광스런 음악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레이블(1964년 창립). 그러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BMG에 편입됐다.

므라빈스키 로스트로포비치 길렐스 콘드라신 스베틀라노프 등 거칠고 거대한 스케일의 러시아 음악혼을 체현한 명연주자들이 멜로디야 레 이블에 집결해 있다. 연주수준과 음질 모두 나무랄데 없다.

● 워너뮤직의 서브레이블
△핀란디아(Finlandia)

북구음악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레이블. 1897년 헬싱키 필하모닉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파체르가 세운 악보사 「파체르 뮤직」에서 출발했다.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79년. 94년 워너뮤직의 서브레이블이 된 이후 급속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핀란드라디오심포니)가 이 곳의 대표주자. 시벨리우스 전집으로 비평가들의 격찬을 이끌어냈다.

△논서치(Nonesuch)

크로노스 현악4중주단을 중심으로 현대음악의 저변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는 워너뮤직의 실험적 레이블이다(1964년 설립).

작곡가 헨릭 구레츠키의 작품 「슬픔의 노래」는 논서치를 세계적 레이블로 발돋움하게 만든 베스트셀러.

● 소니의 서브레이블
△비바르테(Vivarte)

현존 최고의 바로크첼로 연주자인 안너 빌스마와 그가 이끄는 실내악단 「아르키부델리」를 대표주자로 거느리고 있다. 바로크시대를 전후한 음악들을 녹음하고 있으나 다른 서브레이블에 견주어 다소 소극적인 편이다.

70년 창립된 원전악기 전문 레이블 「세온」(Seon)도 소니의 서브레이블로 들어왔는데, 프란스 브뤼헨, 구스 타프 레온하르트 등의 걸작녹음이 포함되어 있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