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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시아 후쿠다의 '크로싱'...자폭적 글쓰기, 절망적 글읽기

책 제목: Crossing
지은이: Andrew Xia Fukuda 
출판사: AmazonEncore (아마존앙코르)
출간일: 2010년 4월27일
형식: 페이퍼백
분량: 217쪽


위 사진은 어젯밤 읽은 소설 'Crossing'의 앞머리에 있는 내용이다. 'Xing'을 '슁'(한글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다면 '싱')이라고 읽으며, 그 뜻은 '별'이라는 것. 중국의 흔한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어권에서는 교차로라는 뜻이며, 읽기도 '크로싱'으로 읽는다는 설명이다. 나도 처음 이민 와서 오른쪽 사진과 같은 표지를 보고 '엑스-잉? 저게 뭐여?'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X-mas로 쓰기도 한다는 점을 떠올렸다면 금방 교차로인 줄 알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러지를 못했다.


줄거리: 업스테이트 뉴욕의 한 고등학교 신입생인 슁슈 (Xing Xu)는 외톨이이고 외계인이다 (ET라는 뜻이 아니다). 600명 가까운 그 학교 학생들 가운데 황인종은 그와 나오미 리 (Naomi Lee) 둘 뿐이다. 그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라기보다는 누구도 그를 친구나 급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워낙 말수도 없고, 나오미처럼 공부로 튀는 것도 아닌 슁은 그저 속으로 속으로만 침잠하면서, 절망감과 소외감, 저 깊은 곳에 들끓는 분노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의 한 학생이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학교의 운동선수로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학생이었다. 그리곤 며칠 뒤, 다른 학생이 실종된다. 슁을 못살게 굴었던('불리'(bully)를 했던) 불량 학생이었다. 학교는 서서히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고, 크지 않은 마을도 뜻박의 범죄로 술렁인다. 범인이 누구냐, 외부의 사이코 연쇄 살인범이냐, 아니면 혹시 학교 학생이나 교사는 아니냐며 다들 불안에 떤다. 

슁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한때 줄리어드 음대에서 성악을 가르쳤던 음악선생의 눈/귀에 띄어, 학교의 크리스마스 뮤지컬의 대역으로 성악 연습을 시작한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밀항선 안, 깜깜한 창고 안에서, 슁은 그 부모를 위해 자주 노래를 불렀고, 그 때마다 아버지는 그의 목소리를 칭찬하곤 했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으로 건너온 다음에는 더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슁의 아버지는 거리에서 행인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로 가족을 부양했지만 어느날 비극적인 뺑소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어머니는 '투잡'을 뛰면서 자신과 슁을 먹여살리지만 가족은 이미 풍비박산 난 상태다. 어머니가 일 때문에 워낙 늦게 들어오기도 하지만, 서로 식탁에 마주앉은 경우에도 할 말이 없다. 집안은 묘지 같다. 

다시 어느날, 학교 뮤지컬이나 콘서트에서 붙박이로 주인공 노릇을 했던 학생이 실종된다. 이제 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범죄 현장처럼 변해 버렸다. 학생이나 교사나, 부모나, 주민이나, 다들 두려움에 떤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살해하고 납치한 것일까? 실종된 학생들이 실종되기 직전에 한 '빨간 잠바'는 도대체 누구일까? 한편 슁은 뮤지컬의 주인공이 실종되는 바람에 졸지에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더욱 연습에 몰두한다. 

독후감
: 소설은 슁의 시선과 독백으로 전개된다. 온통 백인들뿐인 세상에, 자신의 바람이나 뜻과는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 외톨이이자 소외되고 떠밀린 자의 그 황량하고 절망적인 시선이, 생각이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절박하게, 때로는 체념한 듯 전개된다. 버지니아 공대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조승희 사건이 여러 번 언급되면서, '인종의 도가니 미국'의 허상을 발가벗겨 보여준다. 고등학교 첫날, 한 교사가 슁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 헤맨다. 

"엑스-잉, 엑스-유? 네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지?"
"그냥 크리스(Kris)라고 불러주세요."
"아니 어떻게 발음하느냐니까?"
"제발 그냥 크리스라고 불러주세요."
곳곳에서 동급생들의 비웃음이 들린다. 학교 첫날, 슁의 지위는 이미 결정됐다. 루저. 칭크. 로너 (Loner).

나는 이 소설을 집어들자마자 곧바로 빨려들었다. 흡인력이 굉장했다. 내가 슁과 비슷한 처지라는 현실 인식 자체가, 아마도 그 흡인력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거기에 수수께끼의 살인 사건과 실종 사건이 추가되고, 슁과 나오미의 우정, 혹은 사랑이 묘사되며, 점점 더 나오미에게 집착하는 슁의 의식 세계가 그려지는가 하면, 잇단 사건과 더불어 우왕좌왕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학교와 커뮤니티의 대응 방식이나 풍경이 마치 TV 뉴스를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되고, 도대체 누가 범인일까? 하는 호기심이 증폭되면서, 소설은 말 그대로 '한 번 잡으면 내려놓지 못하는' 페이지터너 (Page-turner)가 됐다. 와, 이  소설 굉장하다. 독자를 완전히 사로잡는구나!

그러나, 마지막 20여 페이지 때문에 망했다. 완전히 망했다. 아니 도대체 이런 결말이 어떻게 가능한 거야? 책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소설가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대체 이게 뭐냐고오~!? 작가의 결말은 화룡점정이 아니라 '사족'의 전형이었다. 뱀 그림 잘 그려 놓은 뒤, 쓸데없이 다리를 더해 모든 것을 망쳐버린... 영어로 치면 'overkill', 그것도 범죄에 가까운 지나침이었다. 아니, 그 정도로도 내가 느낀 충격적 실망감은 제대로 형언하기 어려웠다. 

결말을 포함한 소설의 내용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는 당연히 소설가의 몫이다. 소설가의 마음이다. 요즘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독자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지만, 그 경우에도 최종적인 선택은 여전히 소설가에게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떤 전개와 결말에는 독자가 납득할 만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 공범이 없는데, 당신은 교실에 앉아 있으면서, 바로 그 순간에 실종된 학생의 납치범일 수 있는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들으면서, 그 순간에 학교 밖 숲속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가? 소설의 대부분에서 주인공과 가장 공감하고, 주인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의 재능을 인정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을, 겨우 서너 줄로,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신시켜도 되는가? 그렇게 오랫동안 축적해 개발한 캐릭터를, 단지 몇 줄로 바꿔버릴 수 있는가? 

'부정' - 이 소설의 마지막 20페이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자기 부정, 자기 파멸. 마치 치타처럼 날렵하고, 유령처럼 감쪽같이 사라지며, 슁을 마치 봉제인형 다루듯 괴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던 범인이, 불과 몇 페이지 뒤에 가서 아주 작은 어린애 체구에, 허약한 악력을 가졌으며, 마침내 먼치킨(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난쟁이족)의 시체로 바뀌어 묘사되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당신이 범인이라면, 그 애비는 죽이고, 그 딸은 살려달라고 몇km 떨어진 병원까지 들쳐업고 경찰서로 가겠는가? 

정말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아, 어떻게 독자를 이렇게 절망적으로 실망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소설의 95~99% 동안 긴장과 스릴의 도가니에 빠져 마지막 감동을 기대해는데 "뻥이야~!!" 하는 소리를 듣는 듯한 그 허탈함, 그 실망감, 그 배.신.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너무 실망해서, 너무 짜증나서... (사실은 그 소설에 대한 꿈까지 꿨다). 

앤드루 시아 후쿠다. 작가의 이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어머니는 중국인, 아버지는 일본인, 그러나 국적은 미국인. 뉴욕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고, 지금은 다시 미국 롱아일랜드에 산다. 이런 소설을 쓸 만한 자격으로 이 사람보다 더 적격인 사람도 없을 듯하다. 실제로 이 소설 속의 슁은 소수인종으로,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소속되거나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절절하게 잘 대변하고 있다.

결말의 황당무계함...을 넘어 범죄적으로 잘못된 대목만 뺀다면 정말 좋은 책이다. 하지만 마지막 20여 페이지가 책 전체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아내에게 한 내 말의 변화가,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잘 정리한다. 처음 절반 이상까지는 "이 책 꼭 읽어봐야 돼. 정말 굉장해!"... 그러나 끝내고 나서는 "이 책 절대 읽지 마. 정말 말도 안되는 결말로 책을 완전히 말아먹었어. 자살이고 자폭이야. 정말 대실망..." 


이 책의 제목 '크로싱'은 실로 다양한 뜻을 품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저 중의적인 정도가 아니라 다의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인공 슁의 이름을 가리키고, 슁의 부모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바다를 '건넌'(크로싱)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작가가 소설의 진정한 완성을 위해서는 건너지 말았어야 할, 자폭과 자멸의 루비콘 강을 '건너' 버린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읽고 난 기분이 이보다 더 착잡하고 심난한 적도 없었을 듯... 

별? 20쪽 전까지는 다섯 개. 다 읽고 난 다음에는 그 다섯 개를 다 회수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래 유튜브 비디오는 후쿠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