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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샌포드의 'Shock Wave' - 그러나 '충격파'는 없었다

제목: Shock Wave (충격파)
지은이: John Sandford (존 샌포드)
형식: 전자책 ePub (새알밭 도서관에서 빌려 봄)
파일 크기: 493 KB
종이책 분량: 388 페이지
출판사: 퍼트냄 (Putnam)
출간일: 2011년 10월4일
언어: 영어

'먹이' 또는 '희생자'라는 뜻의 'prey'라는 단어를 꼭 제목에 넣는 '프레이 시리즈'로 더 유명한 범죄소설 작가 존 샌포드의 다른 시리즈, 그것도 최신간을 난생 처음 읽었다. 순전히, 토론토스타에서 우연히 본 리뷰 때문이었다. 토론토에 살 때는 참 즐겨 읽었고 좋아했던, 친자유당 색깔이 좀 지나쳐서 가끔 거슬리긴 했지만 자유분방하고 비판적인 시각이 마음에 들었던, 판매 부수로는 캐나다 최대인 신문이었다. 이 지면에 격주로 나오는 코너가 범죄 소설을 소개하는 'Whodunit'이었는데, 필자인 잭 배튼 (Jack Batten) 자신이 소설가이기도 해서 리뷰가 더 재미있었지만 토론토를 떠난 이후로는 제대로 챙겨 읽지 못했다. 그저 가끔 생각나면 뒤져보는 정도... 그러다 걸려든 게 이 소설에 대한 리뷰였다.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 아니 비난하다니 너무 경솔하고 섣부르다, 라는 지적을 받을 것을 무릅쓰고 내지른다면, 나는 책 제목 갖고 장난치는 부류, 처음부터 그저 두세 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십 권 시리즈로 나갈 것이라는 예고를 하는 듯한 제목을 다는 부류를 끔찍히도 싫어한다. 예를 들면

제목마다 'death'를 갖다 붙여 울궈먹고 팔아먹어 억만장자가 된 J.D. 뢉, 아니 노라 로버츠,
= 알파벳 갖고 장난치는
수 그래프턴 (이 분의 책은 상대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제목 때문에 상업주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싸구려 티를 내비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뼈다귀 (bone) 가지고 어떤 곰국 전문가보다도 더 징하게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
캐시 라이크스 (Kathy Reichs, 이 아줌마의 최근작 제목은 아예 대놓고, '뼈다귀는 영원하다'(Bones are forever)다. 푸하하하!),
그리고 글 재주는 있으나 못 뜨는 작가를 찾아서 글 쓰게 하고 자기 이름값 (브랜드) 더해 두부 찍듯 책 찍어 돈을 버는 제임스 패터슨 같은 이들이다 (이 자에 대해서는, 혹시 시간이 나신다면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제임스 패터슨 주식회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정말 매혹적일 정도로 초현실적이다).

이런 책들을 보면, 그 내용에 들어가기도 전에 밥맛부터 떨어지고, 작가의 진정성 같은 것은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 책 팔아 돈이나 벌겠다는 심산만 느껴진다. 제목부터 붙여놓고 거기에 레고 블럭 맞추듯 줄거리 짜맞추고, 적당한 로맨스와 그 끝이 훤히 보이는 액션과 추리를 적당히 버무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수많은 독자들이 일구월심, 이름만 보고 책을 사대니, 이들은 웬만한 중소기업 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린다. 

존 샌포드는 알고 보니 존 로스웰 캠프 (John Roswell Camp)의 필명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 출신이니 대단한 취재력과 필력을 가진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다 '프레이'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전업작가로 돌아섰다. 지금까지 제목에 'prey'를 단 책이 스물 두권이나 나왔다. 그 단어를 넣어 제목 달기도 꽤나 힘들었을 듯하고, 약간 삐딱하게 보면 참 많은 독자들, 범죄소설 팬들이 이 작가의 '프레이'가 되어 지갑을 열었을 법하다. 그러더니 프레이로도 약간 미흡하다 느꼈는지 여기에서 가지를 쳐, '꽃'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본 '충격파' (Shock Wave)는 이 시리즈의 최신간이자 다섯 번째이다. '꽃'이라 한 것은 이 시리즈의 주인공 이름 때문이다 - 버질 플라워즈 (Virgil Flowers). 프레이 시리즈의 주인공 루카스 데이븐포트가 플라워즈의 상사다. 

서설이 길었다. 이젠 소설로 돌아가자. 제목 '충격파'는 폭발의 충격파를 가리키는 한편, 재벌 식료품 체인인 '파이마트'(PyeMart)가 미네소타의 작은 마을에 들어선다는 발표에 대해 현지 주민, 상인들이 받는 충격을 뜻하기도 한다. 첫 번째 폭탄은 파이마트 본사의 맨 꼭대기층에서 터진다. 회장을 노린 것이었지만 애먼 여비서만 목숨을 잃는다. 두 번째 폭탄은 현지의 상가 건축 현장에서 터진다. 범인은 누구일까? 파이마트가 들어설 경우 피해를 입게 될 상인들 중 한 명일까, 아니면 상가 건축에 따른 수원지 오염을 우려한 현지 친환경단체의 소행일까?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수사를 펼치는 플라워즈. 수사가 진척됨에 따라 - 오, 놀라워라! - 플라워즈 자신까지 테러의 표적이 되는데...

버질 플라워즈. 수사관이라는 직업과는 한참 동떨어진 이름이다. 시인이나 문학평론가에게 더 걸맞을 듯한 이름이다. 그러한 코믹함이랄까 아이러니가, 플라워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혹은 기조 같다. 소설 '충격파'는 제목과 달리, 내게 별다른 충격도, 서스펜스나 스릴도 주지 못했다. 도리어 범죄 소설의 형식을 빌린 가벼운 코미디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플라워즈의 언행에서 긴장이나 고민의 구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설렁설렁, 여유만만,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듯한 분위기다. 허허실실한 수사법은 고행석 만화의 주인공 구영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름에 걸맞게 큰 키와 잘 생긴 외모 때문에 가는 곳마다 벌(여자)을 끌어모은다는 점은 내게 도리어 더 밉상으로 비쳤다 (질투?).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연전에 작고한 범죄 소설가 로버트 B. 파커를 떠올렸다. 아니, 그의 제시 스톤 (Jesse Stone) 시리즈를 떠올렸다. 분위기와 스타일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비유한다면 직업적인 농부가 아니라 취미 삼아 농장을 구입해 일은 인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전원의 한가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백만장자쯤 되고, 스타일은 설렁설렁, 적당한 긴장과 플롯, 독자의 궁금증을 촉발하는 재료, 감칠맛 나는 로맨스 등은 다 들어 있으나 깊이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삶의 처절함까지는 아니어도 거칠고 황막한 현실의 감은 전혀 없는 일종의 '마카로니 스릴러'쯤? 그래도 내게는 플라워즈보다 제시 스톤이 훨씬 더 실제 살과 뼈를 가진 인간처럼 여겨졌다 (톰 셀렉이 제작, 주연한 제시 스톤 시리즈의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플라워즈는 생화가 아닌 조화, 혹은 가벼운 만화 시리즈의 주인공처럼 여겨졌다. 

나중에 또 어떤 계기가 와서 이 작가의 소설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독후감을 토대로 전망한다면 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런 식의 '레디메이드' 작품을 열 편 보느니, 마이클 코널리나 헤닝 만켈의 작품 하나를 다시 꼼꼼히 읽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 내 별점은 다섯 개중 두 개(도 좀 아까운듯...).

존 샌포드씨, 아니, 존 캠프씨, 이런 책 써서 앞으로도 돈 많이많이 버세요. 
제 취향은 아니시네요. 그 좋은 글 재주가 너무 아깝습니다. 그 재주의 절반만한 깊이라도 갖도록 신경을 쓰셨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