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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언박싱(Unboxing) - 미국서 산 핀란드제 러닝화, 멀고 먼 길을 돌아...

핀란드의 신발 브랜드 '카후'(Karhu, 핀란드 말로 '곰'이라는 뜻)와 거기에서 만드는 '풀크럼'(Fulcrum)이라는 러닝화를 알게 됐다. 호기심 약간, 호감 약간, 싼맛의 매력 약간 등등의 결과, 미국의 아웃도어 온라인 판매점인 시에라 트레이딩 포스트(Sierra Trading Post)에 한 켤레를 주문했다. 이미 6개월~1년쯤 지난 모델이다. 그래도 겉모양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겠지. ... 그리고 주문한 지 나흘여 만에 상품을 받았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소포 포장 풀기 중계 (Unboxing). 나도 한번...


그런데 이 신발을 받는 과정에서 가외로 흥미로웠던 것은, 그것이 우리 집까지 오는 여정이었다. 시에라 트레이딩 포스트의 본사인 와이오밍 주 샤이엔(Cheyenne)에서 비행기로 훌쩍 날리면 그만일 듯싶었지만 그러면 파는 쪽에 남는 게 없을테니 다른 값싼 방법을 썼을 터이다. 이를테면 대형 집배소로 옮겨서, 같은 목적지로 가는 트레일러 트럭 (혹은 기차)으로 운송하는 방법. 그를 감안하더라도, 이 신발 한 켤레의 여정은 실로 내 상상을 한참 초월했다. 아래는 그 여정이다. 웬만한 단체 관광 코스보다 더 복잡하다.

트래킹 중계. 맨 끝 배달 완료 부분은 뺐다.


트래킹 시스템에 나온 경로는 샤이엔 (와이오밍) --> 커머스 씨티 (콜로라도) --> 루이빌 (켄터키) --> 미네아폴리스 (미네소타) --> 수 폴스 (사우스 다코타) --> 캘거리 (캐나다 앨버타) --> 에드먼튼이다. 새알밭 우리집은 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미 구절양장 뺨치는 경로다. 구글로 찍어본 총 이동거리는 3,600마일, 5,760km였다. 내가 이 신발을 신고서는 아무리 뛰어도 도달할 수 없을 거리가 아닌가. 왜냐고? 그 거리의 10분의 1도 되기 전에 신발이 헤질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400~500km 뛰면 신발을 갈아야 한다고들 한다). 이 거리를 목표로 잡고 꾸준히 뛴다고 가정해도, 하루 5km씩, 1년 365일을 부지런히 뛰었을 경우 3년 정도가 걸린다.

이 길고 복잡한 여정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여기에서 글로벌화의 오류를 읽어야 할까, 아니면 가장 효과적인 배송 시스템의 한 증거를 찾아야 할까?

A가 와이오밍 주의 샤이엔, B가 커머스 씨티, C가 루이빌, D가 미네아폴리스, E가 수 폴스, F와 G가 각각 캘거리와 에드먼튼이다.


(업데이트) 기대 만빵. 오늘 신고 뛰어봤다. 탱크 같다. 아래 쿠션도 별로 없고, 발 앞꿈치 쪽이 제대로 굽혀지는 느낌이 안들 정도로 딱딱하다. 6km쯤 지나자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쿠션이 약한 건가? 아니면 신발 자체가 너무 딱딱한가? 내 발이 길이 들어야 하나? 조금 더 뛰니 또 괜찮은 듯도... 지금은 회사로 가져가 점심시간의 걷기용으로 쓰는 리복의 리얼플렉스 정도로 쿠션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닌데, 쿠션 자체가 무척 뻑뻑하다. 며칠 더 뛰어보면 확실히 느낌이 오겠지. 아직까지는 처음에 멋모르고 산 사코니(Saucony)의 그리드-익스커전(Grid-Excursion)이 가장 무난하다. 쿠션도 괜찮고, 가볍고, 발에서도 별 부작용이 안느껴지고... 그래서 신발은 값도 아니고 브랜드도 아니고, 그저 자기한테 편한 게 최고라고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