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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쇼스타코비치 5번 - 유타카 사도와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유타카 사도, 아니 사도 유타카. 1961년생. 번스타인과 오자와 세이지에게서 배웠다.


어젯밤, 편집을 마치고 아카이브로 막 올라온
 유타카 사도와 베를린 필하모닉(BPO)의 연주를 봤습니다. 도루 다케미츠 것은 주말 중에 보기로 하고, 쇼스타코비치 5번부터 들었습니다. 베를린필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히 5번의 경우 엄청난 스태미너와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베를린필에 딱일 것 같기는 했는데, 막상 음반으로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제 연주에서 다시 한 번 '역시 베를린필!'이라고 감탄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를린필에 대해 현 상임지휘자인 사이먼 래틀 경은 '야수'라고 표현했습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5번을 보면서, 저는 베를린필이 정말 야수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의 현은 모든 줄을 곧 끊어버릴 것처럼 강렬하게 왕복하고, 목관은 섬세하고 민활하게, 새털처럼 가볍게 질주했으며, 금관은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리면서도 완벽한 타이밍과 박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유카타 사도의 지휘는 퍽 친절했습니다. 중요한 타이밍에서 정확한 비팅으로 연주의 일체감을 높였습니다. 어느새 얼굴에는 땀이 맺히고, 헤성헤성한 머리카락은 가랑비 맞은 것처럼 젖어들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밝음과 어두움, 비장함과 결연함, 슬픔과 기쁨 사이를, 마치 얼굴로 음악을 연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변화무쌍하게 오갔습니다.
 

베를린 필의 천하무적 금관악기군.


1937년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 달리 어디였겠습니까? - 을 이끌고 5번을 초연했을 때, 3악장에 가서 수많은 관객이 울었다고 합니다.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현의 비명이, 클라이맥스에서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긴장감으로 팽창하고, 더 이상 바닥이 없을 듯한 나락의 절망감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당시 스탈린 치하에서 고통 받던 사람들의 슬프고 괴로운 심사를, 그 바이올린들이 마치 날카로운 갈퀴처럼 긁어대고 후벼팠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그 절망이, 임종하는 사람의 마지막 한숨처럼 잦아듭니다. 
 

4악장 휘날레. 현들이 가장 바쁘다.


그리고 4번의 폭발적인 질주가 시작됩니다. 100미터를 전력으로 내달리듯 팀파니가 달려가고,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마치 특급 태풍이 바다를 일깨워 산 같은 해일을 불러일으키듯 밀어부치며 폭발합니다. 지휘자에 따라 처음 1분여를 느린 템포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가속을 하는 경우도 있고 - 마리스 얀손스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그런 스타일 - 약간 느린듯한 템포를 끝까지 유지하되 무게감을 극대화해 진행하는 경우도 있으며 - 하이팅크가 대표적 - 처음부터, 경찰한테 걸리면 벌점 정도가 아니라 면허 취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초과속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번스타인이 이 경우의 대표죠. 유카타 사도는 번스타인 과인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한 번 갈 데까지 가보자, 얼마나 빠르게, 그러면서도 무시무시하게 달려갈 수 있나, 해보자! 뭐 그런 심삽니다. 광란의 질주입니다 (아니나다를까, 바이오를 읽어보니 번스타인 밑에서 지휘를 배운 적이 있네요 하하). 

오래 전에, 쇼스타코비치의 5번을 비교해서 짤막한 글을 썼습니다

4악장이 마침내 결말로 치닫습니다. 템포는 느려지고, 현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강박적으로 같은 톤을 계속해서 켜대면서 배음을 만드는 가운데, 금관이 포효하고 심벌이 깨집니다. 저 결말이 과연 승리의 폭죽인지, 아니면 일각의 주장대로 정의에 대한 악의 승리를 알리는 비극의 단말마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희망찬 결말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모든 미련과 시도와 기대를 다 놓아버린 것처럼, 비극적으로 들린다는 점입니다.
 

부서지는 팀파니. 4악장 휘날레에서 죽어라 때린다.


굉장한 연주...(베를린 필의 연주에 대해 대단하다, 잘한다, 라는 말이 때로는 모욕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마이클 조던보고 농구 잘한다고 하는 꼴?).
 

사도 유타카의 '혼을 담은 지휘'


어, 그런데 지휘자가 울고 있습니다. 4악장이 마무리 될 무렵부터 우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울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향해, 도대체 어떻게 당신들에게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정말 고맙다, 라고 제스처를 보내고, 관객에게 인사합니다.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저 울음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심취한 결과일까? 아니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품었던 '베를린 필 지휘'의 꿈을 이룬 데 대한 감격? 아니면 3악장과 4악장의 그 극적인 멜로디와 이미지로부터, 역사상 최악의 대재난을 맞았던 일본 국민을 떠올렸기 때문은 아닐까? ...

그 진짜 속사정이야 어쨌든, 유카타 사도의 울음이 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름다웠습니다. 관객들도 저와 같은 생각인 듯했습니다. 아 정말 좋은 연주...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어볼 생각입니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