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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결혼 17년차


몇몇 지인들께 보낼 카드에 끼워넣으려고 얼마전 찍은 가족 사진을 요렇게 모아봤다. 


어제, 12월14일이 아내와 나의 결혼 기념일이었다. 1997년에 결혼을 했으니 올해로 17년차. 


캐나다의 대형 서점 체인이자 선물 가게인 인디고(Indigo)로, 고마운 몇몇 분들께 크리스마스 카드라도 사서 부쳐야 하지 않겠느냐며 운전해가는 중에 이런 대화를 나눴다.


"오늘이 결혼 기념일이네?"

"그러네?"

"가만 있자, 16년 째인가?"

"아니지, 동준이가 열여섯 살인데 17년 째지." 

"와 17년!"

"..."

"참 오래 잘 참아줬네.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당신은 17년째,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라며 속으로 괴로워 하고 있겠지만..." 

(웃음)

"Mom! Dad! What are you talking about?"

"Songjoon, today is your mom and dad's wedding anniversary. Seventeen years ago, mom and dad married. Do you understand?"

"Yeah..." (에게...겨우 그런 얘기였어? 하는 투.)

"Do you have any idea what kind of present you are going to give mom and dad?"

"I don't know." (관심 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하며 이런 말을... ㅠㅠ.)

"역시 딸내미가 있었어야 하는데, 딸이 있었으면 일부러라도 호들갑을 떨면서, "Oh my god, awesome! Congratulations mom and dad!" 지금 내가 돈이 없어서 아무 선물도 못 사드리지만 축하드려요!!! 뭐 그랬을텐데, 사내애만 두다 보니 저러는 거잖아. I don't know... 하 참!"


인디고에서 성준이한테 줄 크리스마스용 책을 사고 지인들께 보낼 카드를 사면서도, 정작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념할 만한 물건은 사지 않았다. 아내는 메이브 빈쉬(Maeve Binchy)의 책을 하나 샀고, 나는 앨리스 먼로의 자선(自選) 단편 모음집 'Carried Away'를 샀을 뿐이다. 이것도 자축의 의미라고 볼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졸지에 결혼기념일용 케이크 구실까지 하게 된 호박파이. 호박, 하면 어린 시절 마을회관에서 아침마다 틀어대던 노래가 떠오른다. '사랑이 별 거더냐 좋아하면 사랑이지 이래저래 정이 들면 호박꽃도 꽃이란다'... 어느날 이 노래를 흥얼댔는데 아내가 파~ 웃었다. 자기를 호박꽃이라 불렀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마도. 하지만 나는 정말로 호박꽃이 장미꽃보다 더 예쁘다는 생각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집 지붕 위로 덩굴을 만들며 올라가던 호박꽃을 보면서 하곤 했었다.  


저녁에는 전에 사둔 호박파이를 꺼내 간식 겸 기념일 케이크로 나눠 먹었다. 심심하게... 


그리고 아내에게 심상하게 한 마디 했다.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이 빚은 아마 평생 가도 갚지 못하겠지." 진심이다. 



성준이가 어제 그린 그림. 아마 아빠가 '미스터 클러크'일텐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의 오른쪽 위에 태양처럼 빛나는 '미시즈 클러크'이다. 저게 엄마다. 성준이가 보기에도 엄마가 하늘이고,"아빠는 '하니, 칙 밀스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네"라고 보고하는 정도다. 미스터 클러크의 표정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