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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캅 2014, 월터 미티, 아서 크리스마스, 카고


로보캅 2014

블루레이 DVD. 영화 자체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조엘 키너만 (Joel Kinnaman)이라는 배우에 대한 호감과 궁금증 때문에 선택한 영화.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 폴 버호벤의 원조 로보캅에 대해 별로 특별한 감상이 없는 나로서는 신작도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액션 SF려니 짐작했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기조가 예상보다 어두웠다. 특히 '노박 엘리먼트'라는 제목의 TV 시사 비평 프로그램을 통해, 새뮤얼 L 잭슨이 그려보이는 현실 왜곡과 맹목적 선전 선동은, 언뜻 과장된 현실의 희화화라고 여겨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이고 몰윤리적인 자본주의와 극우 보수 프로파갠더에 찌들 대로 찌든 현 미국 사회의 실상을 놀랍도록 명확하게 드러내 준다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카메오든 단역이든, 착한 역이든 악한 역이든, 가발을 쓰든 벗든, 잭슨의 연기력과 카리스마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컬트 팬이 유독 많고, 그의 영화들만을 가지고 페스티벌을 열기도 한다는 게 별로 놀랍지 않았다). 


조엘 키너만은 TV 시리즈 '더 킬링' (블로그 포스팅은 여기)에서 처음 보고 그 인상적인 연기력에 반했다. 호리호리하고 길쭉한 외모가 액션 영화에 맞을까 의심스러웠는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아마 로봇 장비를 걸쳐야 하는 상황이어서 도리어 그의 마른 몸매가 더 잘 맞았을 수도 있겠다 (파퓰러 사이언스에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이런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영화의 성격상 중뿔나게 연기력을 발휘할 만한 배역이 아니어서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못봤다는 아쉬움은 남았다. 도리어 로보캅을 만든 의사 역으로 나온 게리 올드만의 인간적인 듯하면서도 약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미묘하게 양면적인 성격을 표현한 연기가 돋보였다. 마이클 키튼과 더불어, 왕년의 명배우들이 품위 있게 늙어가는 모습을 영화로 확인하는 재미도 남달랐다. (새뮤얼 잭슨은 제외. 이 분은 나이가 들수록 도리어 더 에너지에 넘치는 것 같다. 아니 넘치는 끼를 주체를 못하시는 것 같다. 나이를 거꾸로 잡수시나? 어쨌든 화이팅!) ★★★☆ (다섯 개 만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블루레이 DVD. '월터 미티의 비밀 인생'으로 직역될 수 있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를 이렇게 멋지게 번역했다. '시크릿 라이프 오브 월터 미티'쯤으로 번역해 놓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이런 제목을 보고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로보캅 2014와 더불어 도서관에서 빌렸다.


영화는 그냥 메뉴만 봐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고, 영화 첫 장면 10초 정도만 봐도 나중에 어떤 결말이 날지 훤히 보인다. 하지만 벤 스틸러의 연기가 좋고, 무엇보다 영화 안에 펼쳐지는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히말라야 산맥 등의 풍경은 장면 하나하나가 작품이었다. 초현실적이라 할 만큼 지극한 아름다움. 벤 스틸러가 영화를 감독하고 주연을 맡으면서,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배경이 되는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을 전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지금은 폐간되고 만, 명작 사진의 전설 '라이프'(LIFE) 잡지에 대한 오마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잠깐 카메오처럼 나오는 숀 펜은 그 짧은 스크린 타임으로도 깊고 중후한 인상을 남겼다. 역시 좋은 배우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배우는 아니지만 대가라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



아서 크리스마스 (Arthur Christmas)

넷플릭스를 뒤지다 우연히 찾아낸 크리스마스용 애니메이션. 월리스와 그로밋으로 유명한 '아드만 스튜디오' 이름을 보고 계절과 상관없이,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보기로 했다. 그리고 썩 마음에 들었다. 7월의 크리스마스면 어떻고 8월의 크리스마스면 또 어떠랴. 


이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감탄한 대목은 단 하루밖에 안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떻게 산타 클로스가 전세계 수억 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다 배달할 수 있는가 - 여기에서 해마다 급증하는 인구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 라는 질문에 대한, 영화 원작자들이 상상해낸 '솔루션'이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스타트렉의 엔터프라이즈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최첨단 썰매...를 닮은 우주선에 수억 개의 선물과 그를 절륜한 기술과 속도와 효율성으로 특공 작전처럼 배달하는 엘프들을 싣고 지구를 누비는 장면... 그러나 그런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고도의 특공 작전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한 소녀가 선물을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특공 작전을 지휘하는 산타 클로스의 첫째 아들 스티브는 그까짓 하나쯤이야, 하며 그냥 넘어가려 하지만, 둘째 아들인 아서는 단 한 명도 빠뜨려서는 안된다며 순록들이 끄는 옛 기술의 눈썰매를 타고 선물 배달에 나선다. 영화는 그 배달을 둘러싼 온갖 간난신고에 대한 이야기. ★★★★★



카고 (Cargo)

넷플릭스에서 찾아놓고 본다 본다 하다가 혼자 헤드폰 끼고 겨우 본 SF 영화. 믿거나 말거나,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SF 영화란다 (솔직히 난 못 믿겠다 그럴 수가 있나?). 2009년작. 생태계의 재난적 파괴로 인류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된 지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인류는 지구 밖에 거대한 우주 정거장을 건설해 그곳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전염병 등으로 우주 정거장은 거대한 슬럼으로 변해간다. 부자들은 새롭게 찾아낸 낙원 행성 레아(Rhea)로 이주하지만, 광속으로도 5년이 걸리는 레아로 갈 형편이 못되는 대부분의 가난한 인류는 비참한 삶을 이어갈 뿐이다. 


의사인 주인공 로라 포트만은 돈을 모아 Rhea로 가서, 먼저 이주한 여동생과 그 가족을 만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왕복 8년이 걸리는 화물 운송선에 상주 의사로 취직한다. 화물선 선원은 선장과 1등 항해사를 비롯해 다섯 명이 전부다. 여기에 반기술주의자들의 최근 테러 사건 때문에 화물선의 안전을 위해 가세한 사복 경관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의 자동 비행 동안 인공 동면을 취하고 교대로 깨어나 8개월 남짓 화물선을 책임진다. 로라는 그러나 화물선에 승무원들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고, 무엇인가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혹은 벌어졌음)을 감지한다. 


영화는 과거의 여러 걸작, 혹은 문제작들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나 장면을 많이 담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스타트렉, 은하철도 999, 일리시엄, 제5 원소, 매트릭스, 이벤트 호라이즌, 에일리언, 토탈 리콜 등등... 영화 감독들 (Ivan Engler, Ralph Etter)이 엄청난 SF 팬임을 알 수 있는 장면이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난다. 영화 첫 머리에 등장하는, 초거대 우주 정거장의 모습이나, 실상은 끔찍할 정도로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답답한 우주 여행의 일상을 묘사한 대목 등은 퍽이나 현실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연구 많이 했겠다 싶은 대목이 참 많았다. 영화의 줄거리나 배우들의 연기에 다소 아쉬움은 남지만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표현된 묵시록적 미래의 몇몇 묘사들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줄 법한 독립 영화다. BBC의 이반 엥글러 인터뷰 내용도 퍽 흥미로웠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