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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Big Sur D-day: 빅서 마라톤

마라톤을 마친 직후 가족과 함께. 아직 메달도 걸기 전이다. 골인 지점에서 듣는 '동준 아빠아~!'라는 아내의 외침은 세상에서 가장 반갑고 힘이 되는 응원가이다. 


마라톤


마라톤 엑스포에서 받아온 버스표에 4시15분~30분 사이에 인근 호텔로 나와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해서 의아해 했다. 아무리 마라톤 출발 시간이 다소 이른 아침 6시45분이지만 두 시간씩이나 미리 나갈 필요가 있을까, 마라톤 출발지가 멀지 않은데?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을 깨워 승용차로 가고 싶지 않았고 (승용차 접근은 불허한다는 말도 나와 있었다), 버스로 편하게 태워준다는데 좀 일찍 나가면 어떠랴 싶었다. 


이런, 그게 아니었다. 버스가 마라톤 출발지까지 가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시사이드/몬터레이의 위치를 착각한 탓이었다. 내가 묵는 곳은 출발지(빅서)가 아니라 도착지 (카멜) 근처였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출발지 근처에 묵고 있다고 착각했고, 마라톤 출발지도 엑스포가 열린 몬터레이 컨퍼런스 센터 근처일 거라고 그릇 짐작했다. 


버스가 출발한 지 채 10분도 안됐는데 갑자기 '카멜' 도로 표지판이 나오고, '26마일'이라는 임시 표지판이 나왔다. 어, 이게 어찌된 일이지? 그리곤 버스가 진행함에 따라 24마일, 22마일, 20마일 등으로 거리 표시가 줄어들었다. 그제서야, 아, 내가 착각했구나 깨달았다. 버스는 꼬불꼬불 왕복 2차선 고속도로를 따라, 출발지인 빅서 스테이션으로 내려갔다. 밖은 아직 깜깜했고, 버스 좌석을 가득 채운 마라톤 주자들은 혹은 흥분에 들떠 수다를 떨거나 차창이나 좌석 머리받이에 기대고 졸았다. 


마라톤 출발 지점인 '빅서 스테이션'. 캘리포니아 주립공원의 방문자 센터가 있는 곳이다. 마라톤 주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공터가 꽤 넓었다. 이 사진은 마라톤 다음날, 아내에게 마라톤 코스를 보여준다고 다시 찾아와 찍은 것이다. 


5시30분쯤 버스에서 내렸다. 쌀쌀했다. 긴팔 옷을 입은 사람들, 비닐로 외투를 만들어 걸친 사람들도 덜덜 떠는데, 아무런 방한복도 걸치지 않고 달리가 복장만 갖추고 온 나야 오죽했겠나... 하지만 따끈한 차, 커피, 물 등을 번갈아 따라서 혹은 마시고, 혹은 양손으로 컵을 꼭 쥐고 있으니 한층 견딜 만했다. 주최측에서 나눠주는 바나나와 베이글 조각 두 개로 아침을 해결했다. 


실제로 마라톤을 뛰는 동안은 거의 온전히 혼자만의 활동이다. 함께 뛰는 주자들이 때로는 힘이 되고, 때로는 짜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 주는 달리기다. 너무 빠른 페이스로 나가는 건 아닌지, 너무 느린 건 아닌지, 신체 부위 어딘가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는 않는지, 언덕에서는 얼마나 속도를 늦추거나 높여야 하는지, 내리막길에서는 또 어떻게 속도 조절을 해야 하는지 등등 혼자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게 놀라울 정도로 많다. 


마라톤을 뛰기 전의 여러 풍경들,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주최측의 수다, 마라톤을 뛰는 동안 길가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응원 구호들, 마라톤을 마친 뒤의 또 다른 풍경들... 마라톤 자체 외에, 왜 마라톤을 뛰고 싶어지는지를 알려주는 또 다른 요소들이다. 


빅서 마라톤 코스 곳곳에 흥미 만점의 응원팀이나 응원자들이 있었다. 이 분도 그 중 하나. 그랜드 피아노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뛰기 바빠 그냥 지나쳐서, 무슨 음악이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퍼왔다. 사진 왼쪽으로 빅서 마라톤의 대표 지점인 '빅스비 다리'가 보인다. 수직으로 가장 높은 다리라던가? 2마일 가까이 올라가는 마의 언덕을 넘고 나면 내리막길이 나오고, 이 다리가 나타난다. 


빅서에서 좋은 기록을 기대했다. 중뿔나게 열심히 훈련을 한 것도 아니면서 또 꿈만 컸을까? 3시간30분, 아니면 더 나아가 보스톤 마라톤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는 3시간25분 미만까지 기대했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3시간38분... 그래도 그 무지막지하게 많은 언덕들을 넘고 넘어 그렇게라도 들어왔다는 게 스스로 대견했다. 


정말로 언덕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특히 10마일 지점부터 '허리케인 포인트'까지 2마일 정도 오직 올라가기만 하는 긴 언덕은 정말 난관이었다. 새로 이사 온 노쓰밴쿠버의 집 근처에 언덕이 많아 훈련이 제법 됐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달려보니 턱도 없었다. 그 언덕을 잠시도 걷거나 쉬지 않고 뛰어 올라갈 수 있었다는 데서 약간의 위안을 찾은 정도... 하지만 문제는 그 뒤로도 작은 언덕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는 점이고, 내 체력이 더 이상 감당할 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마지막 25마일 지점에서 만난 언덕은 정말 절망 그 자체였다. OMG!



이번에도 '벽'에 부딪혔다. 20마일(약 32km) 지점이었다. 이후 3-4마일을 걷다 뛰다, 아니 뛰는 시늉만 하며 버텼다. 마지막 1마일 정도는 젖먹던 힘으로 뛰면서 마칠 수 있었고... 이번에도 오버페이스였나? 스스로는 충분히 절제하면서 뛴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무리였나? 어떤 훈련을 해야 이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다음 마라톤은 10월12일에 열리는 빅토리아 마라톤이다. 빅서 마라톤 포토 갤러리.


골인 지점. 아내가 나를 용케 잡아냈다. 


성준이와 기념 사진. 


빅서 마라톤 완주 메달. 뭔가 투박한 듯하면서도 퍽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래는 내 GPS 시계로 찍은 마라톤 코스와 마일 단위 페이스. 늘 그랬듯이 20마일 지점까지는 괜찮았다. 정말 스태미너가 문제다. 


마라톤 뒤풀이 - 몬터레이 피셔맨스 워프 (몬터레이 선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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