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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밴쿠버 첫 경주, 첫 산보

밴쿠버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달리기 경주에 참가했다. 마라톤은 아니고 15 km짜리다. 협동조합 (코업) 형태로 운영되는 캐나다의 아웃도어용품 업체 '마운틴 이큅먼트 코업' (MEC)의 '달리기 경주 시리즈' 중 하나로 5 km, 10 km, 15 km 세 종목 중 하나를 고르게 돼 있다. 참가비도 15달러로 저렴해서 부담도 적었다. 번호표와 기록을 재는 센서를 나눠주고, 간단한 다과와 음료수를 제공한다. 종목별로 1위와 2위에게만 기념 메달을 준다. 그러니 그냥 재미로,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마침 아내가 오래전 시사저널에 MEC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어서 여기에 연결해 두었다.)


경주는 이사 와서 혼자 두어 번쯤 달려본 코스였다. 시모어 산 (Mt. Seymour)의 아랫자락 - 그래서 'Lower' Seymour 다 - 의 포장 트레일을 7.5 km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경로다. 편하게 뛰자고 마음 먹었지만 막상 뛰어보면 뜻하지 않은 (?) 경쟁심이 발동하는 게 경주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계획했던 속도보다 빠르게 달렸고, 실은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했다. 초반에 너무 빨리 나가지만 않으면, 그래서 페이스만 잘 잡으면 다 괜찮다. 이번 경주에서 내가 유지한 평균 페이스는 마일당 7분10초 정도였다. 스스로 흡족한 페이스였다.


달리기 다음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서 근처 '라이스 호수'(Rice Lake)까지 산보를 했다. 아내도, 아이들도 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호수뿐 아니라 시모어 산자락을 밟는 게 처음이었다. 나야 일삼아 뛰러 나왔으니 이곳저곳 제법 익숙한 편이었지만 아내는 이사 온 지 한 달이 넘도록 근처 트레일도 나와보지 못했었다. 내가 그랬듯이, 아내도 주변의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했고, 신선한 공기가 좋다며 잠시 행복해 했다. 동준이는 계속 'Get in the car soon'을 연발했지만 - 실제는 '게린더 카수운~!'으로 들려서 보통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다 - 그래도 잘 따라왔고, 성준이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까불었다. 



경주는 시모어 보전 지역 (Seymour Conservation Area) 내, 라이스 호수 정보 센터 (Rice Lake Information Centre) 근처에서 출발한다. 경기 시작한 지 1시간42분48초가 지났다는 표지가 보인다. 나는 1시간5분 만에 들어왔다.



아내는 나를 여기에 내려주면서 기념사진 한 장 찍어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동준이와 성준이는 아직 꿈나라에 있을 것이었다. 15K는 8시45분에, 10K는 9시에, 5K는 9시15분에 출발했다.



경기 뒤에, 아이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손에 든 커피는 아내더러 마시라고 퍼온 케냐 산인데, 약간 시큼한 맛이 특징이었다. 아내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다 마셨다. 



초입에서 500 m쯤 걸어올라가면 라이스 호수가 나온다. 그 전에는 요런 표지도 있다. 곰 조심. 아내 얼굴에 피로감이 역력하다. 한 달 넘게 이삿짐 풀고 정리하는 작업이 아직 진행중이다. 게다가 일주일 예정이었으나 갖은 사정으로 2주 이상 끌어온 부엌 개선 작업도 스트레스를 더한 요인이다.



라이스 호수 곁에 이런 정자가 있는데 나뭇잎들로 도배하듯 한 지붕이 가관이다. 다른 쪽 지붕은 말끔했다.



비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온갖 식물이 다 잘 자란다. 이런 주황색 버섯들도 많았다.



라이스 호수. 호수 크기는 작지만 퍽이나 평화로워 보인다. 낚시가 허용되기 때문에 낚시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몇 마리까지 잡을 수 있다는 제한 규정이 있다.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다 이렇게 크다. 성준이와 비교하면 더욱 커보인다. 시다 (삼나무), 헴락 (북미산 솔송나무), 소나무 등이 특히 크게 자란다.



밤새 비가 내려 빗속을 뛰어야 할 모양이라고 걱정했는데 아침이 되면서 다행히 그쳤다. 그러더니 점심 무렵이 가까워 오면서 해까지 잠시 고개를 내밀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