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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에이크리지

지난 수요일, 직장 동료인 에버렛의 집에 놀러갔다. 에버렛은 2008년 말 지금 일자리에 지원했을 때 나를 인터뷰한 두 사람 중 하나다. 2년 남짓 내 상사였고, 조직 개편으로 동료가 됐다. 직급 상으로는 여전히 나보다 위지만 보고하는 관계가 더 이상 아니라는 뜻이다. 어쨌든 4년 넘게 일하는 동안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 온 사수/상사/동료다. 


그의 집은 이곳에서 흔히 '에이크리지'(Acreage)라고 부르는 너른 땅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름 그대로 집 터가 1에이커가 넘는다는 뜻이다. 그의 동네는 '셔우드 파크'라는 곳으로 에드먼튼 동쪽에 있는 인구 7만 정도의 소도시다. 내가 사는 새알밭과는 반대편에 있는 셈이다 (아래 지도 참조). 알버타 주에는 그처럼 1에이커 이상의 너른 땅을 차지한 집들이 꽤 많다. 셔우드파크와 새알밭, 데븐, 스프루스 그로브 같은 소도시의 교외에 주로 많이 분포해 있다. 


나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에이크리지 주택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도시 밖에 있어서 도시 가스와 상수도가 닿지 않기 때문에 가스와 물을 따로 조달해야 하고 - 물은 대개 우물을 파서 해결한다 - 여름의 잔디깎기, 겨울의 눈 치우기도 트랙터형 론모워나 제설 장비를 이용해야 한다. 집 안팎의 온갖 잡다한 관리, 수리 등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그러니 나처럼 남의 손을 빌려 온갖 잡다한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보기에는 좋지만 실제로 그런 집에서 살 능력은 못된다고 보면 맞겠다. 


에드먼튼을 중심으로 인구 1만~7만 정도의 소도시들이 발달해 있다. 왼쪽 위가 새알밭, 에드먼튼 서쪽이 스프루스 그로브, 7시 방향이 데븐, 오른쪽이 셔우드 파크다.


뒷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핫도그와 햄버거를 만들어 먹었다. 에버렛의 부인 헤더는 셔우드 파크의 학교위원회에서 일한다. 서글서글한 인상답게 마음씨도 좋았다.


헤더가 성준이를 생각해 장난감 박스를 내왔다. 트랙터, 트럭, 스포츠카 등 온갖 자동차들이 박스 안에 들어 있었다. 요즘엔 다소 시들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장난감들 앞에서 잠시 신나 했다.


성준이가 좋아한 이 집의 개 '할리'. 아홉 살 고령견이다. 공 물어오기 놀이를 좋아했는데, 류머티스에 관절염을 앓고 있어서 오가는 속도는 퍽이나 더뎠다. 이런 나이의 개들이 그렇듯이, 할리는 퍽이나 온순했다. 


모닥불 앞에 앉은 동준이. 온타리오 주에 살 때는 캠핑 깨나 다녔고, 동준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런 모닥불이었다. 참 오랜만에 모닥불을 본다. 동준이는 오랫동안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오늘의 저녁 메뉴. 핫도그와 햄버거, 에버렛이 미리 구워놓은 소고기, 각자 모닥불에 구운 소세지, 헤더가 만든 샐러드와 주스, 햄버거와 핫도그용 소스, 아내가 사온 케이크 등이 놓여 있다. 핫도그나 햄버거를 안먹는 동준이는 오는 차 안에서 이미 치킨을 먹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케이크였다. 사진에는 없지만 맥주도 마셨다. BC에서 나오는 코커니 (Kokanee)와 멕시코산 코로나였다.


에버렛이 성준이에게 잔디깎는 트랙터를 보여주고 있다. 성준이는 관심은 보이면서도 막상 타보라고 하면 겁을 먹고 안타겠다고 했다. 에버렛이 몰고 다니는 모습을 구경만 했다. 


시동을 꺼서 트랙터가 조용해진 다음에야 자리에 올라 폼을 잡았다. 


에버렛이 기르는 산딸기 밭에서 산딸기를 따 먹었다. 성준이가 가장 열심히 땄다. 


그새 친해진 성준이와 할리가 멀리까지 산보를 나갔다. 할리는 입에 공을 물고 다시 던져달라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다. 저 위 사진에 나온 트랙터를 몰고 열심히 돌아도 잔디를 다 깎는 데는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뒤 배경으로 선 불그스레한 나무들은 산벚나무의 일종인 'Choke Cherry'로 이웃집과의 경계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