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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LA,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시월드...

Visiting LA: 316/ 토요일 – 3마일 Easy Run (마라톤 대회 전의 마지막 숨 고르기)

여행와 있는 동안 호텔 근처의 보도 위로 뛰었다. 위 사진은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주변의 도로와 야자수. 아침 6시쯤 찍은 사진이라 사방이 아직 어둑신하다.


토요일. LA, 아니, 애너하임에 온 지 닷새 만에야 가까스로 일정을 정리해 볼 짬을 낸다. 노는 것도 일이다. 아니, 노는 게 일상의 업무보다 더 바쁘고 고단하다. 아침에 나가 하루종일 유원지를 돌고 저녁 늦게 숙소로 돌아오면 온몸이 녹초가 됐다. 사진 올리고 씻고 자기 바빴다. 마라톤 뛸 힘이나 있을까 싶을 만큼 하루하루가 곤고했다. 다음에 마라톤과 연계해 여행을 갈 때는 일정의 막판이 아니라 맨 앞에 마라톤을 놓아, 남은 며칠을 마음 편히 놀고 쉬는 쪽으로 계획을 짜야겠다고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 계기도 됐다.

 

312/ 화요일 에드먼튼을 떠나 LA

타르가 흘러나오는 호수. 먼 옛날 매머스가 아마 이런 식으로 빠져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지 않았을까? LA카운티 박물관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 구경하기도, 산보하기도 좋았다. 


이웃 선배의 도움으로 공항에 닿았다. LA행 직항 노선의 출발 시간은 1045. 넉넉하게, 라는 표현조차 다소 어색하게 여겨질 만큼 일찍, 630분에 공항에 도착했다. 여러모로 여유가 있어서 좋았지만 앉아서 기다리는 게 고작인 만큼, 하는 일이 별로 없어도 심신이 지쳤다. 게다가 출발 시간이 30분쯤 늦어졌다.


비행기 안에서, 성준이는 몇 번이나 “Are we landing?”이라고 물었다. 제 딴에는 도착할 때가 지났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피곤하기도 했을테고….


LA의 손윗처남 댁을 방문해 오랜만의 회포를 풀고, 함께 저녁을 먹고, (특히 에드먼튼 촌구석 주민의 눈으로는)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코리아 타운도 보고, 말 그대로 시골 쥐의 서울 구경 같았다. 기온은 25도를 넘어 초여름 날씨를 느끼게 했고, 살살 불어주는 바람은 더없이 부드럽고 살가웠다. 영하 10도의 기온대에서 , 봄이 오려나보다라고 반가워했던 처지에서는 실로 별천지였다. 동토의 왕국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로 잠시 피신한 듯한 느낌이었다.


예약해둔, 디즈니랜드 근처의 호텔 ‘Quality Inn & Suites at the Park’에 닿으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새벽 530분에 깨어 공항을 거쳐, 산지 시간대보다 한 시간 더 이른 태평양 시간대로 날아와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15시간을 꼬박 흘려보낸 것. 심신이 녹초 같았다.

 

313/ 수요일 디즈니랜드

디즈니랜드에 들어온 사람이면 반드시 거쳐야 할, 아니 찍어야 할 기념 사진. 디즈니랜드,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성을 배경으로. 


소방 호스로 물을 마시는, 아니 마시려 시도하는 격이랄까? 디즈니랜드를 찾은 첫 소감은 그랬다. 너무 컸고, 너무 많았고, 너무 붐볐다. 어디부터 어떻게 보고 즐겨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디즈니랜드는 광활했고, 주제관도 너무 많았다. 게다가 평일인데도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찾는 곳마다 줄을 서야 했다.


대개는 10~3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됐지만, 인기 주제관인 ‘Cars’ 코너는 무려 90분을 기다려야 했다. 바람도 잘 불지 않는 땡볕 날씨에, 햇볕을 피할 만한 그늘도 별로 없어서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길고 지루하고 괴롭게 느껴졌다. 처음 디즈니랜드에 입장하자마자 그곳부터 찾았더라면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도 될 뻔했지만 그걸 누가 알았나…. ‘디즈니랜드 100배 즐기기류의 가이드북이 나온 이유를, 막상 디즈니랜드에서 헤매본 다음에야 절실히 체감했다.


디즈니-픽사의 인기 애니메이션 'Cars'의 주인공 '라이트닝 매퀸'. 얘를 보고 아이들이 환장을 했다. 매퀸과 고물 견인트럭 '토우 메이터'가 교대로 모델 노릇을 하며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하긴, 설령 그런 책을 읽고 왔더라도 우리 가족의 구성상 디즈니랜드를 제대로 즐기기란 불가능했을 터였다. 동준인 뭐든 , ’, 혹은 얼 단’(all done)이었다. 특히 롤러코스터 비슷한 탈것이나, 그런 코스 중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는 질겁을 하며 소리를 질러서, 우리가 애를 잡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성준인 또 성준이대로, 약간만 무섭거나 덜컹거려도 타지 않겠다고 버텼다. 고공 슬라이드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나마 레일 위로 달리는, 직접 운전하는 듯한 분위기의 자동차 타기와, ‘Cars’의 고속 경주 코스에는 반색을 표시해서 다행이었다. 앞으로 두 번 더 찾아올 수 있으니, 그런 코스만 몇 개 다시 타볼 생각이다.

 

314/ 목요일 유니버설 스튜디오

트랜스포머즈 3D 액션을 보고/경험하고 나와서 찍은 사진. 포즈는 그럴듯하나 막상 3D 액션을 체험할 때는 무섭다고 울상이 됐었다. 별로 무서운 구석 없는 애니메이션으로만 익숙하고, 막상 실사 영화는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지.


디즈니랜드가 소방 호스로 물을 마시는, 아니 일방적으로 물벼락을 맞는 분위기였다면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화장실 밖에 설치된 식수대의 물을 적당히 조절해 마시는 기분이었다. 규모와 인파가 다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어제 디즈니랜드의 ‘Cars’ 테마 파크에서 고생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성준이가 그간 노래를 불러온 트랜스포머즈’ 3D 테마관에 먼저 달려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사람이 아직 많지 않았고 곧바로 탈 수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생각나지 않지만 거의 20년 전에 와서 본 백투더퓨처3D 쇼를 트랜스포머즈로 대체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전체적인 기조와 분위기는 비슷했다. 물론 속도감과 3차원 이미지의 생생함, 내레이션 등은 백투더퓨처보다 나아 보였다.


디즈니랜드에서는 라이트닝 매퀸과 토우 메이터가 인기 모델이었다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위)가 대표 모델들이었다. 성준인 지금도 범블비 장난감 사내라며 노래를 부른다. 정작 그 엄마와 아빠는 "이 땡볕에 저렇게 탈 쓰고 저 짓 하려면 얼마나 덥고 힘이 들까?"라고 엉뚱한 걱정을 더 하는 쪽이었다.


20년 전에 본 쥬라기 공원은 여전히 성업중이었는데, 동준이와 성준이 모두 를 연발해서 포기했다. 영화 미라를 본뜬 놀이공원도 그냥 통과. 심슨스는 아이들이 잘 모르는 캐릭터여서 다시 통과. 자잘한 장식과 과거 할리우드 황금 시대를 테마로 한 거리를 돌아보고, 클래식 자동차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워터월드의 액션 쇼. 남북극의 얼음이 녹아 물바다 (워터월드)가 된 묵시록적 미래의 지구에서 펼쳐지는 선악의 대결. 볼거리로는 이만한 게 없었다. 아내도 무척 즐거워했다.


디즈니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의 바가지 상혼도 만만치 않았다. 피자 한 조각 (한 판이 아니라)5달러가 넘었고, 물 한 통에 4달러였다. 아무리 유원지라지만 이건 좀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보고 나온 워터월드액션 쇼. 20년 전에도 가장 인기 있는 코너였는데 지금도 인기는 여전한 듯했다. 케빈 코스트너의 영화 워터월드는 실패작으로 기억되지만 그 영화를 바탕으로 꾸민 액션 쇼는 새 생명을 얻고 여전히 장수하고 있었다. 아내도 퍽 즐거워했다.

 

315/ 금요일 샌 디에이고 시월드

'스카이 타워'라는, 빙빙 돌아가며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오는 고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다본 시월드의 전경...은 아니고 일부 풍경. 퍽 다채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오늘은 한 시간 반쯤 운전해 샌 디에이고까지 내려갔다. LA 인근의 교통 상황은 러시아워가 따로 없는 듯했다. 어디나 차, , 차의 물결이었다. 8차선, 10차선으로 벌판처럼 너른 도로가 양방향으로 놓여 있었지만 그 너른 벌판을 차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동준, 성준은 안팎에서 신나게들 놀았다. 물론 동준인 주로 먹을 걸 사내라는 쪽이었고 성준인 이것저것 놀이기구를 타보자는 쪽이었지만... 사진 속의 거북은 진짜가 아니다.


시월드에서 거북이를 보고, 상어를 구경하고, 북극곰을 만나고, 바다표범의 울음소리를 듣고, 돌고래와 인간의 환상적인 합작 를 감상했다. 계단식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돌고래는 그 싱싱하고 미끈하고 탄력 있는 몸뚱이를 뽐내며 물밖으로 박차올랐다. 그렇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늘로 솟구치는 돌고래의 폭발적 에너지가, 넘치는 생명력이, 문득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감동적이라고 느꼈다.


아마도 시월드의 간판 프로그램일 '돌고래 쇼'의 휘날레. 돌고래들을 어떻게 저렇게 훈련시킬 수 있었을까 감탄하게 만드는 절륜한 장면이 무척이나 많았다. 실수는 주로 사람들 쪽에서 나왔지만 그게 흠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관객들도 한 선수가 돌고래 서핑에 두 번이나 실패했지만 관대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월드든 유니버설 스튜디오든, 그들이 펼쳐놓은 오락과 유흥의 메뉴나 방식은 디즈니랜드의 아류나 변형처럼 여겨졌다. 아니, 모든 엔터테인먼트의 디즈니화라고 해야 할까? 아이와 어른을 태운 롤러코스터 차량의 모양이 엘모나 벅스라이프의 캐릭터 대신 호머 심슨이나 바트 심슨, 혹은 물고기나 가오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휘어감듯 이리저리 방향을 틀거나, 위로위로 천천히 올라갔다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속도감의 스릴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새롭다거나 신선하다는 느낌, 그곳만의 특징과 개성을 보여주는 메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세상이 이른바 글로벌화하면서 각 지역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레스토랑이나 상점, 호텔이 글로벌 프랜차이즈들로 대체된 것처럼, 엔터테인먼트의 양식과 소비 방식 또한 한결같이 디즈니화한 것 같았다.

 

316/ 토요일 마라톤 엑스포, LA 다운타운 산보

LA 마라톤 엑스포에서 마라톤 코스의 특징을 소개한 그림을 배경으로. 성준이가 내 번호표를 들고 있다.


LA 컨벤션 센터에 들러 마라톤 번호표와 티셔츠, 그리고 변변찮은 참가 기념품 몇 개를 받았다. 내 번호는 B 3761. 맨 앞의 B는 내가 속한 그룹을 가리키는 듯했다. A그룹은 마라톤 완주 기록이 3시간 이하인 사람들로 구성되고,  B그룹은 4시간 이하다. 24천 명이나 되는 대군 올해는 매진이란다 이 참가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라도 그룹을 나눠놓지 않으면 느리게 가는 사람들에 막혀 제 기록을 못낼 위험성이 다분할 터였다.


888번지 오피스 빌딩 앞에서. 우리는 이 빌딩에 중국계 기업들이 특히 많이 입주해 있지 않겠느냐는 억측을 해보았다. 재미삼아 글자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만들었다.


컨벤션 센터에서 북쪽으로 6, 7블록을 걸어 센트럴 라이브러리까지 갔다 왔다. 특별히 볼 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운타운 오피스빌딩가에 온 이상 주변 경치나 구경하자는 심산이었다. NBA 농구팀 LA레이커스와 NHL 하키팀 LA 킹스가 경기를 벌이는 스테이플스 센터와 그 주변의 그럴싸한 레스토랑, 카페 거리를 구경했고, 대한항공 입주가 예정된 지역의 대대적인 공사 현장도 지나쳤다. 한국 기업이 참 잘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일 마라톤 대회에 대한 부담도 부담이고, 지난 화요일 도착하자마자 연일 강행군을 벌인 탓에 피곤해진 심신을 좀 풀어보자는 의도에서, 오늘은 쉬고자 했다. LA뿐 아니라 우리 숙소 근처인 가든 그로브에도 즐비한 한국인 상점들에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 (‘에드먼튼 지역에도 좀 있었으면…’), ‘미호라는 한인 식당에서 청국장과 들깨수제비, 돼지불고기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음식으로 저녁 끼니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