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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ft

좋은 소설, 내 마음에 꼭 드는 소설을 만나면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점점 더뎌진다는 점이다. 그 소설 속의 세상, 그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 깊이 공감되고 정이 들어서, 얼마 안있으면 헤어져야 한다는 예감 때문에, 그 이별을 자꾸만 늦추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 친한 벗을 떠나보내는 듯한 아쉬움과 허전함을 안겨준 소설로 언뜻 떠오르는 최근의 사례는 'Art of Fielding' (독후감은 여기, 국내에 '수비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됨), 'Where things come back' (독후감은 여기) 같은 책들이다. 


리즈 무어 (아래 사진)의 흥미로운 소설 Heft를 받치는 두 기둥, 아니 두 인물은 아서 옵(Arthur Opp)과 킬 켈러 (Kel Keller)이다. 두 사람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줄거리: 전직 대학 교수인 아서 옵은 지난 십년간 집밖에 나온 적이 없다. 집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격절된 삶을 산다. 식료품을 비롯한 모든 생필품은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사망했고, 아버지와도 어린 시절에 연락이 끊어졌다.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고, 친구도 없다. 유일한 친구도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인생에 단 한 번 사랑을 했지만, 그 여자와도 잠깐의 만남 뒤에 띄엄띄엄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는 펜팔처럼 데면데면해졌다. 그저 속으로만 그 여자를 그리워할 뿐이다. 


아서가 그처럼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킨 이유 중 하나는 초비만 때문이다. 키가 190cm를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250kg이란 몸무게는 분명 비정상 중에서도 비정상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부끄러움, 어린시절 겪은 애정 결핍,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내성적이고 민감한 자의식이 아서를 자꾸만 고립무원 상태로 내몬 것이다. 그의 그런 세심하고 섬약한 자의식,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커다란 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그의 사무치는 고독감과 서글픔은 수많은 '&'로 연결되는 그의 독백으로 잘 표현된다. 


그런 그의 삶 속으로 욜란다라는 열아홉 살의 스페인계 미혼모가 들어온다. 십년 넘게 청소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집, 특히 신체적 조건 때문에 올라가 본 적조차 없는 2층을 청소하겠다는 생각으로 청소 서비스를 불렀는데 욜란다가 온 것. 조금씩, 천천히, 아서와 욜란다의 어색하고 서투른 우정이 싹트는 계기이다.


아서가 돌연 집안을 청소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옛 연인 샬린 터너(Charlene Turner)가, 사실은 장성한 아들이 있다, 당신은 똑똑하고 좋은 교사니까 내 아들이 칼리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라는 편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 아들 - 킬 켈러 -의 나이를 따져보니 아서가 샬린과 사귀던 시절이다. 그러니까 나와 사귀면서 양다리를 걸쳤던 거구나, 하는 깨달음에 괘씸한 생각도 들고 미운 감정도 솟았지만 역시 심약하고 동정심 많은 성격의 아서는 그런 화를 낼 생각도 못하고 좋다고 허락한다.


이제 킬 켈러의 시각에서 다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엄마의 극성 맞은 노력 덕택에, 저소득층이 사는 용커스 (Yonkers) 지역에 살면서도 부자 동네의 우수 고교인 펠스 랜딩(Pells Landing)에 다니는 킬은 탁월한 운동 실력으로 학교 내에서 '짱'으로 통한다. 특히 야구 솜씨는 더욱 발군이어서 메이저리그 팀인 뉴욕 메츠의 스카우트가 그를 보자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킬의 속마음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결코 밝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알코올 중독에 실직 상태로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어머니가 문제이고,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부유한 동급생들의 호화로운 생활로부터 느끼는 열등감과 박탈감이 또 문제이다. 


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잃지 않고, 희망과 꿈을 키우는 젊은이이다. 자기가 네 살때 아리조나 주로 떠나버린 아버지 - 이름이 자기와 같은 '킬 켈러'다 -를 궁금해 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어머니가 미안해 그의 행방을 찾아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자살을 기도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며칠 뒤 사망한다. 그 뒤 킬의 삶은 엉망이 된다. 옛 중학 시절 친구의 파티에 갔다가 사고를 치는가 하면, 학교에서 하급생을 때리는 바람에 경찰에 체포되기도 한다. 전기세를 못내 전기가 끊어져버린 집에서, 킬은 어머니의 유서를 읽는다.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끝내 열어보지 않은 유서였다. 그 속에서, 킬은 자신의 출생에 관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큰 혼란에 빠진다. 


독후감: 소설의 정조는 애잔함, 쓸쓸함, 외로움, 격절감 같은 것들이다. 제목 Heft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감내하는 쓸쓸함과 외로움의 무게, 사랑없는 삶이 안겨주는 고독감의 무게를 가리킨다. 아서의 독백에서, 킬의 독백에서, 독자들은 그런 정서를 읽고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이 매혹적인 이유는 그런 소외와 고독, 애정 결핍의 정조 속에서 희망이 읽히고, 따뜻한 마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정서가 읽힌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는 가운데 마음 한구석이 짠하게 아프면서도, 웬지 이들에게 행복이 찾아올 것 같은, 아니 행복을 발견할 것 같은 희망을 느끼고, 그런 느낌이 독자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소설이 매혹적인 또 다른 이유는 소설이 마치 할리우드의 패키지 상품처럼, 잘 짜여졌지만 인위적 냄새가 풍기는, 그런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아서와 킬은 끝내 만나지 않는다. 아서가 초대한 저녁 식사에 킬이 그의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 말미의 인터뷰에서 "아서와 킬이 행복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라고 말했듯이, 이들의 행복찾기는, 더디고 곡절많은 길이 될 지언정 결국 그렇게 가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안겨준다.


이 소설에 대한 내 별점은 ★★★★★. 한국에 소개되어서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가작이다. 아래 비디오는 소설 Heft의 북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