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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인터넷의 숨은 권력 'W3C'를 아시나요

WWW의 창시자로 통하는 팀 버너스-리. 얼마전 작위를 받아 지금은 '경'이다.

웹의 기술적 표준설정등 막강 파워...
일부선 '폐쇄성-권력남용' 비판도 | NEWS+ 1999년 1월21일치

폴 트레비치크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글자꼴(폰트)을 디자인하는 비트스트림사의 기술팀장이다. 그가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의 '폰트 그룹' 회의를 위해 고향인 새너제이를 찾았다.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어머니가 묻는다. "얘야, 새너제이에는 무슨 일로 왔니?"

"글쎄요…" 폴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한다. "앞으로 10년 뒤에, 정보가 어떻게 인쇄되고 전달되도록 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에요." 어머니는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저 가벼운 농담 정도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IBM-MS등 275개 기관 회원으로 가입
 
그러나 폴의 말은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그가 속한 폰트 그룹은, 흔히 'W3C'로 약칭되는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의 수많은 '미래 지향형' 그룹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웹의 선출되지 않은 정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발간하는 격월간 잡지 '테크놀로지 리뷰' 11, 12월호는 W3C를 이렇게 표현했다. 흔히 '권력 분산형 네트워크' 혹은 '독점적 지배자가 없는 가상의 공간' 등으로 불려온 인터넷의 통념에 비춰본다면, W3C는 매우 예외적인 집단인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W3C가 인터넷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주로 기술적인 분야에 치우쳐 일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뿐 W3C는 초기 인터넷 개발에 필요한 기금을 제공했던 미 정부보다도, 고속전용망과 디지털 인프라를 제공하는 거대 전화회사들보다도 더 중요한 기능―'21세기 웹의 얼개를 짜는 일'에 관여한다.

W3C는 1월9일 현재 275개 회원 기관들로 구성돼 있다. IBM 마이크로소프트 넷스케이프 소니 등 내로라하는 일반 기업을 비롯해 비영리기관, 산업기관, 정부기구 등이 W3C의 회원사 목록을 구성한다(국내에서는 대우전자가 회원사다). 이처럼 수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W3C에 가입한 이유는 간단하다. W3C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분야의 기술 표준에 자사의 논리와 이익을 조금이라도 반영시키기 위해서다. 일단 W3C가 정한 기술 규격은 거의 예외없이 '표준'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기술결정 과정에 입김을 넣는 일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보의 내용에 등급을 매겨 미성년자들을 음란물로부터 보호하려는 PIC 프로젝트나, 온라인에서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P3P 등이 큰 관심을 끄는 것은, 사안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추진 주체인 W3C의 권위도 상당부분 작용했으리라는 분석이다(부속기사 참조).

그러나 W3C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막강한 권위의 대부분이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라는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물론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의 권위는 '도덕적'인 것에 더 가깝다.

그는 1989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연구원으로 있을 때 월드와이드웹(WWW·W3)을 발명했다. 그가 고안한 웹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든 컴퓨터의 모든 문서를 '연결'함으로써 자유로이 공유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거대한 연구소인 CERN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풍부한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발명이었다.

'정보 공유'에 대한 버너스-리의 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웹의 기능과 장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싶었다. 1994년 그의 주도로 창립한 W3C는 그러한 바람을 현실로 만들 자율적 민간기구였다.

W3C의 첫 본거지는 그가 일하던 CERN.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CERN은 그의 발명품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웹은 시간낭비를 부추기고, 연구집중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버너스-리는 일자리를 잃었다. W3C도 정처를 잃고 말았다. W3C의 현 의장인 장-프랑수아 아브라마틱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촌평한다. "CERN은 노벨상 수상자의 산실입니다. 컴퓨터 과학분야에는 노벨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거죠."

CERN을 나온 버너스-리는 MIT의 컴퓨터과학연구소(LCS)와 컴퓨터 신기술의 산실인 제록스 팔로 앨토 연구센터(흔히 'PARC'로 약칭)를 전전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다 '정보의 시장' 논리를 강조하는 마이클 더투조스 LCS 소장과 의기투합, 결국 MIT에 정착했다. 그러나 다양한 산학협동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MIT조차도 W3C가 관여하는 인터넷 관련 프로젝트를 포괄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프랑스 국립 컴퓨터 과학 및 제어연구소(INRIA), 일본 게이오대, 미 고등방위연구프로젝트기구(DARPA), 유럽위원회(EC) 등을 공동 주관사로 끌어들인 이유다.

W3C는 그 다국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폐쇄성'과 '권력남용'의 혐의를 받고 있다. W3C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미국의 대형 통신회사인 MCI는 W3C의 운영방식에 불만을 품고 탈퇴했다. 그러나 대세는 'W3C의 운영 방식을 좀더 민주적으로 개선하고, 회원가입 및 탈퇴의 문호를 더 넓히자'는 현실론이다.

버너스-리의 말. "아무리 웹이 변화하더라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도록 한다는 W3C의 이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김상현 기자>

■ W3C가 추진하는 주요 프로젝트들

1) 이용자 환경 영역
어떻게 하면 웹 이용자들이 좀더 편리하고 손쉽게 웹으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얻고, 또 웹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 작업의 리더인 빈센트 퀸트는 "사용법은 가장 단순하게, 기능은 가장 뛰어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한다. 웹의 기반이 되는 HTML의 문법을 개선하는 일, 그래픽과 글꼴(폰트)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일, 정보제공자가 좀더 간편하게 정보를 표현할 수 있는 문서 포맷을 정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2) 기술과 사회 영역
기술, 특히 인터넷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인터넷의 가상공간이나 가상 공동체뿐 아니라 현실 사회에도 다양한 법적-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다. W3C는 이러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찾는다. 전자상거래에 따른 보안성 문제, 개인정보 유출의 범위와 수준을 정하는 문제, 음란물이나 불온정보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문제 등이 이 영역에서 다루는 주제의 일부다. 정보의 등급을 매겨 기술적으로 걸러주는 일은 'PICS' 프로젝트로, 전자상거래나 정보유통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막는 일은 'P3P'로, 보안성 문제는 '전자서명' 작업으로 나타났다. PICS와 P3P는 기업과 각국 정부들간에 이견이 많아 손쉬운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3) 아키텍처 영역
인터넷의 특정 주소를 호출하는 표준규약인 HTTP와 차세대 규약인 HTTP-NG, 새로운 웹 저작언어인 XML, TV와 웹의 융합에 따른 여러 기술적 문제 등이 이 분야에 포함된다. 
 
4) 웹 접근성 제고 작업(WAI)
W3C의 공익성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작업 중의 하나다. 시각이나 청각장애를 지닌 사람들도 정상인들처럼 자유롭게 웹의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각 정보 제공업체들에 다양한 기술적 지원을 권고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이미지와 그래프, 차트, 오디오, 비디오 등 다양한 형식에 대한 각종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