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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미래 사회? SF작가에게 물어봐”

과학자보다 한발 앞선 통찰력…인터넷-스타워즈 계획 등 현실화 | NEWS+ 1999년 1월7일치
1995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실제로 있었던 얘기 한토막. 막 사업을 시작한 한 벤처기업가가 직원들에게 '스노 크래시'(Snow Crash)라는 제목의 과학소설(SF) 한권을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이게 우리 사업 계획서요."
 
온라인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블랙 선 인터랙티브'는 3차원 그래픽 환경으로 만든 인터넷의 가상 술집에 실제로 '스노 크래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SF작가 닐 스티븐슨의 1992년작인 '스노 크래시'는 소설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강력한 환각제의 이름. 마피아가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것을 통제하는 미래의 가상현실 세계와, 이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을 세기말적인 분위기로 속도감 있게 그린 '사이버펑크' 소설이다.
 

국내에서 SF는 종종 '공상과학소설'로 번역돼 왔다. 그러나 그간의 관성에 따라 '공상'에만 주목했다가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놓칠지도 모른다. '공상'쪽에 방점이 찍힌 '소프트' SF와, '과학'쪽에 무게가 실린 '하드' SF를 어정쩡하게 뭉뚱그린 '공상과학'이라는 단어에서 '과학' 부문을 올곧게 복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코닥, 노키아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SF가 그리는 미래사회에 주목해 왔다. 이들은 유명 SF작가들을 상담역으로 채용해 경쟁 기업들보다 한발 앞선 전략의 재료를 찾는 데 활용한다.

SF 작가의 '혜안'은 최근에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미래의 프로그래밍 언어로 꼽히는 '자바'의 존재를 예측한 것.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개발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는 자체 작동 코드를 내장해 어떤 운영체계에서든 별도의 재생프로그램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자기 완결형' 소프트웨어다. 멜리사 스코트는 그녀의 소설 '나이트 스카이 마인'(Night Sky Mine)에서 인공지능으로 진화해 가는 자바형의 소형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묘사했다.

그러나 SF작가의 남다른 통찰력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여러 기업과 기관이 이들의 '혜안'에 기대 왔다. 소설 '우주전쟁'으로 유명한 H G 웰스는 20세기초의 두 미국 대통령―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기도 했다.

냉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도 SF작가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폴 앤더슨, 그레그 베어, 로버트 하인라인 등 유명 SF작가들은 레이건 행정부의 국가우주정책평의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스타워즈 계획'으로 불리는 전략방위계획(SDI)의 얼개를 짰다. 이들은 냉전 승리의 열쇠를 '우주'에서 찾았고, "적재적소에 적절한 연구결과를 적용한다면 러시아의 재정을 파탄낼 수 있을 것"이라며 막대한 투자를 건의했다. 그리고,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제안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했고, 소련은 붕괴했다.

'컴퓨터 인간'이 가상현실로 정보 전달? 
SF가 그린 미래의 기자상 | NEWS+ 1999년 9월2일치

요즘 기자들의 취재 도구는 노트북 컴퓨터(신문·잡지 기자)와 비디오 카메라(방송기자)이다. 그렇다면 2년 혹은 3년 뒤는 어떨까.
 
몇몇 과학소설(SF)들에 기대어 전망한다면 미래의 기자상은 ‘100%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인간인 기자와 그의 취재도구였던 기계들이 결합되거나, 더 나아가 아예 융합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가령 브루스 스털링의 ‘스키스매트릭스’(Schismatrix·1985)에서는 기자가 그의 몸에 결합된 전자 기술을 통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정보를 구한다.

영국의 TV 드라마 ‘미래로의 20분’(20 Minutes into the Future·1985)에서 방송앵커인 에디슨 카터의 몸은 네트워크 본부의 컨트롤러와 연결되어 자유자재로 정보와 데이터를 찾을 수 있다. 컨트롤러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들을 뒤져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그와 연관된 데이터를 가려낸다. 그러나 사실은 컨트롤러가 감시 시스템을 이용해 카터 자신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카터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자 네트워크 시스템은 그로 하여금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방벽에 부딪혀 죽게 만든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는 인기 앵커였던 카터를 계속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과학자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의 모습을 되살리고,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계속 높은 시청률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