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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리눅스, MS왕국 무너뜨릴 신무기?

20대 프로그래머 무료공개한 새 운영체계 | NEWS+ 1998년 12월24일치
“7년전, 나는 아무런 비전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이지 우연에 불과했다”
 

리누스 토르발즈(28)는 한 컴퓨터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7년전 ‘우연히’, 그저 ‘재미삼아’ 컴퓨터 운영체계(OS)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때까지 써오던 유닉스(UNIX) 운영체계를 그의 취향에 맞게 이리저리 주무른 것이다. 순전히 개인 용도로 쓸 심산이었다.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한 최고라고 자신했던 리누스로서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성을 깨뜨릴 강력한 대안으로 급부상한 리눅스(Linux)의 출발은 그처럼 ‘우연’한 것이었다.그러나 때로는 우연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리눅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첫 개발자의 이름(Linus)과 유닉스를 조합한 이름인 리눅스가 올해 들어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텔과 넷스케이프가 벤처자본 기업들과 함께 레드햇 소프트웨어에 투자하기로 한 것. 레드햇은 94년부터 리눅스 운영체계와 그 응용 프로그램들을 패키지로 만들어 팔아 온 소규모 회사다. 인텔이 다른 리눅스 회사들에 투자할 계획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여기에 IBM 오라클 인포믹스 시그너스 컴퓨터어소시에이츠 코렐 등 주요 컴퓨터 회사들이 리눅스용 제품을 개발하겠다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계기는 인터넷에서 나왔다. 리눅스를 매우 위험한 경쟁 상대로 평가하고 적극적인 대책 수립을 강조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비밀 문서가 한 해커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만성절(萬聖節) 전야인 10월31일 등장해 ‘핼로윈 문서’로도 불리는 이 전자우편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개 소스(Source) 프로젝트’와 리눅스가 급속도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종래의 마이크로소프트 기술 규약을 더욱 개선, 보완해 리눅스 등 대안 운영체계들에 대한 비교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서 하나로 리눅스의 주가는 더욱 높아졌다.

불과 7년 만에 컴퓨터 운영체계의 ‘스타’로 떠오른 리눅스.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리눅스의 프로그램을 짤 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내가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했다. 스물한 살짜리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갖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짜기 어렵다고 해도, 기껏해야 운영체계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리누스의 회고다. 이 때까지도 리눅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만족의 폐쇄회로에 갇힌 조잡한 프로그램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인터넷의 유즈넷에 공개한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로 자처하는 해커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프로그램의 소스까지 낱낱이 공개된 그의 운영체계를 받아 이 사람이 이리 깁고, 저 사람이 저리 고쳤다. 인터넷을 통해 작업에 참여한 사람이 5명에서 25명으로, 100명으로, 수천 명으로 불었다. “나는 네티즌들의 온갖 다양한 기호와 기발한 아이디어에 놀랐고, 그것을 즐겼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미에서 시작한 일이었으므로,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고집할 마음도 없었다”

리눅스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500만~1000만명의 이용자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도 해마다 2배씩 느는 추세다. 세계의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기업들이 리눅스를 쓰고 있다. 독일에서는 유닉스 계열의 운영체계 중 제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세계를 통틀어서는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솔라리스에 이어 2위다.

리눅스의 가장 큰 장점은 ‘공짜’라는 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설령 패키지로 상용화된 것을 구입한다고 해도 다른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용 운영체계의 10분의 1 이하의 가격이다. 더욱이 이 경우에도 리눅스의 모든 소스코드를 공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구입기관이나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얼마든지 공유·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짜라고 해도 성능이 뒤떨어지면 인기를 끌 수 없는 법. 리눅스가 더욱 높은 성가를 누리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개인용 컴퓨터(PC)의 운영체계인 윈도95나 98은 물론, 중대형 컴퓨터에 쓰이는 윈도NT보다도 훨씬 더 안정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텔386급 이상의 저가형 컴퓨터에서도 잘 돌아간다. 실제로 프랑스에 유학했던 한 국내 벤처기업가는 “내가 공부하던 4년 동안 리눅스는 단 한번도 다운된 적이 없다. 아마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기록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리눅스가 급속히 지지층을 넓혀가는 데는 다분히 ‘감정적인’ 대목도 없지 않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소비자 운동’(CPT)의 제임스 러브 소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당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리눅스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유명한 소비자 운동가인 랠프 네이더가 조직한 CPT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독점을 맹렬히 비판해 왔다.

러브 소장은 “사람들이 리눅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터넷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한다. “리눅스에는 빌 게이츠도 없고, AT&T도 없다.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을 뿐이다. 마치 인터넷처럼”

빌 게이츠는 1981년 첫 선을 보인 IBM PC에 MS-DOS라는 운영체계를 공급하면서 ‘제국’ 건설의 첫 발을 내딛었다. 오늘날 전세계 PC의 97%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계 위에서 돌아간다.

한편 AT&T의 벨연구소는 1969년 중대형 컴퓨터용 운영체계인 유닉스를 개발했다. 공교롭게도 리눅스의 창시자인 리누스가 태어난 해다. 1991년 헬싱키대학 학생이던 그는 유닉스가 너무나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유닉스는 일단 설치하고 나면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않는다. 솔라리스든 HP든 시스템에 설치하고 나면 일반 PC 이용자에게는 온전히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리눅스는, 이를테면 ‘유닉스에 쓰는 즐거움을 더한’ 새 운영체계인 셈이다.

“나는 리눅스가 일반 PC의 운영체계로도 널리 활용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여간한 전문 프로그래머가 아니면 해독하기조차 힘들었던 리눅스에 여느 PC 운영체계처럼 그래픽 환경(GUI)이 더해졌고, 초보자도 쓸 수 있을 만큼 쉬워졌다. 무엇보다 리눅스용 응용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10만여개의 응용 프로그램을 가진 윈도에는 턱없이 못미치지만 그 증가 추세만은 대단하다.

리눅스에 의한 윈도 운영체계 전복(顚覆)을 예측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사는 그처럼 전복을 꿈꾸다 허무하게 사그라진 수많은 경쟁 운영체계들의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문법-인터넷의 힘을 빌린 공동개발-으로 끊임없이 개선·확장되고 있는 리눅스는 다를지도 모른다. 러브 소장의 기대는 더욱 큰 것 같다. “우리는 리눅스에서, 인터넷의 풀뿌리 이용자들에 의해 진행되는 기술 혁명의 폭발을 보기 시작했다” <김 상 현 기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