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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인터넷, ‘미디어 개념’ 바꾼다 - 독자의견 즉각 반영되는 쌍방향 관계로

NEWS+ 1998년 12월17일치

12월4일 한 신문에 ‘휴대폰 채팅족’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휴대폰 가입자가 전화통화 대신 부가서비스 중 하나인 문자메시지기능(폰투폰 메일 서비스)을 이용해 간단한 대화는 물론 미팅까지 한다는 내용. 휴대폰 채팅족의 증가추세와 사용법, 장단점, 세태 등을 고루 짚은 기사였다.

‘휴대폰…’ 기사는 곧바로 부가통신 서비스인 채널아이의 ‘뉴스 톱10’의 7개 섹션 중 세곳을 독점했다. ‘신나는 뉴스’ ‘유익한 뉴스’ ‘황당한 뉴스’ 세 분야에서 가장 많은 통신이용자들의 추천을 받은 것. ‘휴대폰…’ 기사가 독자의 처지와 생각에 따라 세가지 다른 반응을 낳았음을 보여준 증거였다.

‘뉴스 톱10’은 뉴스에 대한 통신 이용자들의 반응을 일곱가지 ‘느낌’으로 갈무리한다. 채널아이를 통해 서비스되는 각 신문과 방송의 뉴스를 읽고 통신 이용자들이 그 느낌에 따라 하단에 놓인 ‘신나는 뉴스’ ‘흐뭇한 뉴스’ ‘유익한 뉴스’ ‘짜증나는 뉴스’ ‘황당한 뉴스’ ‘슬픈 뉴스’ ‘겁나는 뉴스’ 등 7개 아이콘 중에서 하나를 골라 마우스로 선택하면 분야별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기사들이 ‘뉴스 톱10’에 오르는 것. 그 옆에 놓인 ‘오늘의 뉴스 지수’는 그날의 전체 추천 건수에 비례한 각 섹션별 분포를 그래프로 보여줌으로써 네티즌들이 그날의 뉴스에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한 눈에 보여준다.

‘뉴스 톱10’을 고안한 채널아이의 한정택과장(33·서비스기획팀)은 “신문 방송 등 다른 미디어의 수용자보다 한층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통신 이용자들의 특성을 좀 더 잘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종래의 미디어에서라면 수동적인 ‘독자’에 머물렀을 사람들을 능동적인 ‘게이트키퍼’로 끌어들인 것이다. 5년 남짓 방송사 기자로 일한 그의 경력도 아이디어에 도움이 됐다.

“하루 1000~4000명 정도가 게이트키퍼로 참여할 만큼 반응이 좋다”는 한과장은 “좀 더 사용자가 늘면 섹션별로 네티즌 데스크를 뽑아 한 주간의 뉴스에 대한 논평까지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스 톱10’은 미디어의 ‘지형’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변화의 첫번째 징표는 기자/독자, 혹은 리포터/(시)청자라는 이분법적 경계의 소멸이다. 종래의 미디어 지형이 기자(리포터)에서 독자(시청자) 쪽으로 화살표가 그려진 ‘단방향성’이었다면, 새로운 지형은 서로가 기자이자 독자인 ‘쌍방향성’이다. ‘기자→독자’가 아니라 ‘기자↔독자’의 관계라는 뜻이다.

이러한 ‘쌍방향성’을 가능케 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네트워크 환경, 그 중에서도 인터넷이다. PC통신이 종래의 신문이나 TV보다 쌍방향성을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에 비해 기술적 한계가 많았다. 예컨대 PC통신에 올라온 신문 잡지 등의 뉴스를 읽기 위해서는 몇 차례의 마우스클릭(혹은 엔터키)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이나 논평을 내기도 어렵게 돼 있다. 그러나 ‘채널아이’ ‘네츠고’ 등 후발 업체처럼 아예 인터넷의 개방형 통신규약(TCP/IP)을 쓰게 되면 어떤 뉴스나 정보에 대해 즉각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종래의 독자나 (시)청자들은 거대 미디어 기업들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거나 발언할 통로를 갖지 못했다. 미디어 기업에 의해 또다시 걸러지는 ‘독자편지’나 ‘TV 옴부즈만’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보다 한단계 더 나아간 곳에 PC통신의 게시판이나 토론방이 있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합의나 동의가 모이지 않는 한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주류 미디어에 삼투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그러한 힘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언론에 대한 언론, 언론을 비판하는 대안 언론, 이른바 ‘메타 저널리즘’이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문화 잡지인 ‘애틀랜틱 먼슬리’의 웬 스티븐슨(뉴미디어 편집장)은 “인터넷의 쌍방향성(Interactivity)이 언론인과 독자, 독자와 독자간의 관계를 새롭게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채널아이의 ‘뉴스 톱10’은 종래의 미디어를 새롭게 읽고 해체, 정리한 경우. 수많은 뉴스 가운데 미담이나 밝은 내용만을 뽑아 소개하는 ‘밝은 소식’(midam.sssoft.co.kr), ‘아름다운 세상’(www.bwpress.co.kr), ‘주간 좋은소식’(i.am/goodnews) 등도 비슷한 사례다. 그러나 이들은 종래의 미디어를 텍스트로 한다는 점에서 ‘대안’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보다는 기지와 독설에 가득찬 글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디지털 딴지일보’나, 이와 비슷한 형식의 여러 풍자 사이트가 더 유력한 ‘대안 미디어’로 여겨진다. 7월4일 이후 지금까지 360만명 이상의 누적 독자수를 기록한 딴지일보의 경우 한 시사월간지와 특약 관계를 맺을 만큼 남다른 영향력을 확보했다. 딴지일보의 편집장 겸 기자인 김어준씨(30)는 “한사람 한사람이 독립적인 미디어로서 발언할 수 있는 ‘디지털 아테네’ 시대를 인터넷이 열었다”고 강조한다. “TV나 신문에서는 독자와 매체가 분명히 구분되지만 인터넷에서는 그렇지 않다. 개인이 곧 매체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주의-주장을 마음껏 발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가지 단서가 따라붙는다. 인터넷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이 첫번째 단서다. 아무리 인터넷이 ‘마음껏’ 발언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며, 더욱이 ‘충분한’ 독자를 얻고자 한다면 만만찮은 ‘자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을 손쉽게 쓸 수 있는 네트워크 기반(인프라)과, 적어도 종래의 미디어 수용자에 버금갈 만큼의 이용자가 필요하다는 단서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김 상 현 기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