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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성준이의 '수술'

아침 6시40분쯤...대기실에 앉아 있습니다. 성준인 아직 치료받기 전이어서 밝은 표정입니다 ㅎㅎ.

오늘, 예정보다 열흘쯤 더 일찍 성준이의 이[
齒]를 수술했습니다. '이를 수술했다'라고 하니까 표현이 좀 이상한데, 썩은 이를, 아니 이들을 치료하는 수술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썩은 이가 하필이면 어금니여서 뽑을 수가 없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약간씩 썩은 이가 세 개쯤 더 있어서, 어금니 부분은 덮고, 다른 부위는 긁어낸 뒤 코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썩은 이를 발견한 것은 벌써 몇 달 전입니다. 병원에 갔지만 여느 치과에서는 성준이처럼 어린애를 치료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취를 시켜야 하는데 그런 전문가와 시설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런 치과를 찾아갔더니 예약이 워낙 밀려 있어서 3월 초에나 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게 지난 해 11월이었습니다. 그래서 12월 밴쿠버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에 갈 때도, 혹시 이가 아프다고 할까봐 그곳 치과에서 미리 진통제를 처방받아 대비했을 정도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으로, 이미 충치가 완연해진 다음에야 이도 열심히 닦이고 치실질도 열심히 해줬습니다. 저녁을 먹기도 전에 잠이 들면 간단히 물수건으로 이를 닦아주거나, 밥 먹는 도중에 잠들면 - 아이들은 자주 그러죠 - 이도 안닦인 채 그냥 두곤 했던 게 후회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지요. 이곳의 무지막지한 치료 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땅을 칠 노릇이었습니다. 성준이의 경우 1,500달러(약 160만원) 가까이 됐습니다. 블루크로스에서 제공하는 보험이 아니었다면 그 두배도 넘었을 거구요... ㅠㅠ

아직 뭘 모르고 TV를 보고 있습니다. 수술 시간을 이른 아침으로 잡는 것은 전날 자정 이후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하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금식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제발 3월 치과에 갈 때까지 치통만 오지 말아라, 빌었는데 어제 전화가 왔습니다. 예약 하나가 취소돼서 내일(목) 수술할 수 있는데 아침 6시45분까지 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대답은 당연히 가겠다였습니다. 

성준이한테는 며칠 전부터 치과 갈 거라는 경고를 해왔고, 치과에 군말없이 가면, 갔다 와서 네가 갖고 싶어하는 레고 차를 사주마고 사전 뇌물 작업을 벌여온 터였습니다. 본래 저는 휴가를 낸 뒤 집에 남아 동준이를 스쿨버스에 태워 학교에 보내고, 아내만 가기로 했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해서 다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동준이는 감기 기운을 핑계로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수술은 쉽게 끝났습니다.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간 지 채 5분도 안돼 엄마가 나왔습니다. 수면 가스를 마시고 금새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뒤에 혈관 주사로 마취를 한 뒤, 45분쯤 수술을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마취에서 깨어나면 대개 운다. 아파서가 아니라 놀라서 운다. 잘 달래줘라. 오전 중에는 물이나 얼음과자, 사과 주스 등 액체를 많이 주되, 오렌지 주스나 우유처럼 위에 부담을 주는 음료는 삼가라. 음식은 부드러운 것으로 주고 기름기 있는 음식은 피해라, 어린이 타이레놀이나 애드빌을 4, 5시간 간격으로 줘라... 간호사와 의사가 번갈아 나와 주의를 줬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 저희를 부릅니다. 성준이가 마취에서 깬 모양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서럽게 울었습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입 부분은 마취가 덜 풀려 입술이 아내로 내려가 침이 흘렀습니다. "My mouth not working!" 하며 또 울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큭, 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침 9시쯤 병원을 나서는 길에도 성준이는 내내 울었는데, 월마트에 가서 차를 살까, 그냥 집에 갔다가 내일 사줄까, 하니까 오늘 가잡니다. 월마트 가려면 울음을 그쳐야 하는데? 했더니 애써 울음을 참습니다. 장난감 코너를 두세 번 돌며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고심하더니, 노란 차와 파란 차가 들어 있는 장난감을 집었습니다. 레고는 아니지만 간단한 조립형입니다. 

엄마 아빠가 부지런히 이를 잘 닦아주지 않은 잘못도 크지만, 별로 건강하지 못한 이를 물려준 아빠의 부실한 유전자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소는 잃었을지언정, 이 교훈을 잘 새겨서, 앞으로는 열심히 이 닦이고, 치실질 해줄 참입니다 주로 엄마가...ㅋㅋ (제가 해주는 게 좀 거친지, 이 닦자! 하면 늘 '엄마가!'라고 하거든요).

성준이가 방금 한 마디 합니다. "I don't like dentist!" 이를 매일 닦으면 안가도 된다, 그럴 수 있느냐니까 "O.K."랍니다. 목소리에 별로 자신감은 없지만...ㅎㅎ

고생한 대가(?)로 얻은 자동차. 차 지붕 위의 작은 덮개를 떼어내고, 경찰용 경광등을 달 수 있게 돼 있다. 왜 경광등을 떼냈느냐고 물으니 "경찰차는 너무 시끄러워서"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