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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사람과 삶]한양대 서정수교수... 연구 욕심 많은 ‘한글 지킴이’

NEWS+ 1998년 7월16일치

서울 잠실 교통회관 부근의 한 오피스텔. 30평 남짓한 사무실 출입구에 내걸린 간판은 「국어정보학회」. 
책으로 사면을 포위한 사무실은 다시 책장을 경계로 둘로 나뉜다. 출입구 쪽은 컴퓨터 앞에서 뭔가 열심히 입력하는 다섯 여직원의 차지. 서정수(徐正洙·65 한양대 국문과)교수는 책장으로 가린 안쪽에, 그러니까 출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앉아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59419

서교수 역시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았지만 때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잠시 일손을 놓았다.

『할 일도 많고, 요즘 참 바빠요』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힘차다.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나이가 무색하다. 「NEWS+」를 내놓자 기사를 일별하더니 대뜸 「직업의식」을 발휘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책이나 논문의 양식이 통일돼 있지 않아요.

낫표(「」)는 일본식이고, 게다가 세로쓰기에서나 통용되는 것인데 이 잡지는 가로쓰기를 하면서도 낫표를 쓰고 있으니 틀린 거지요. 가운뎃점(·)도 한국과 일본에서만 쓰지 다른 나라에서는 세미콜론(;)을 써요』

7월말 ‘세계속담비교사전’ 출간 예정
 
그는 오랫동안 책과 논문의 「양식」(Style)을 통일하는 데 힘써왔다. 최근 심광숙 임유종씨와 공 동으로 펴낸 「책과 논문쓰기 길잡이」(동광출판사)는 그러한 노력의 한가지 소산이다.

『지금은 「세계 속담 비교 대사전」을 만드는 중이에요.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미국 영국 프 랑스 등 세계 100여 나라의 속담들을 모아 주제별로 분류하고 비교하는 일이죠』

여직원들이 컴퓨터에 열심히 입력하는 것도 세계 각국의 속담이다.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전문성을 지닌 직원 외에 제자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했다. 예정된 책 분량은 2000쪽 정도. 7 월말쯤 한양대 출판원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속담은 한 나라, 한 민족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습관 문화 철학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집약 한 표현입니다. 속담을 꼼꼼히 살피면 각 나라, 각 민족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알 수 있지요』 『속담은 절반의 진리만을 담고 있다』는 게 서교수의 얘기다.

상황에 따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고방식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는 의미다. 예컨대 「침묵은 금이요, 말은 은이다」라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라는 상반된 속담이 있다. 사랑에 대한 온갖 상반된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 대신 속담에는 인간적인 체취와 유머가 배어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서교수의 작업과 관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속담사전 편찬은 그의 수많은 작업 가운데 「일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옳다. 국어순화추진회 이사, 국어정보학회 회장, 한양대 출 판원 원장, 국제언어문화연구원 원장 같은 직함이 말해주듯 그의 활동은 말 그대로 정력적-정열 적이다.

남북 컴퓨터자판 통일에도 각별한 노력
 
그는 남-북한 컴퓨터자판 통일문제에도 각별한 힘을 쏟는다. 『공동 검토안을 만들어 남`-`북한 간에 합의를 봤고, 그것이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수하다는 결론을 얻어 지난 12월 자판배치 통일안을 만들기에 이르렀다』고 그는 말한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오는 8월 나진-선봉 지구에 서 만나 자판 통일에 대한 최종 합의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북한 자판을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은 인문적인 지식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그 작업에는 그가 회장으로 있는 국어정보학회가 큰몫을 했다. 서교수 스스로도 자신의 「남다른」 이력이 많 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한국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비정통파」인 셈이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국문학으로 방향을 튼 것은 연세대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부터.

『당시는 지금과 달라서 학제간 벽이 더 두터운 편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국어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지요. 뭐, 비공식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연과 학을 공부한 게 잘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국어학을 제대로 하려면 자연과학 전산학 등을 방 법론적으로 적극 활용해야 해요. 나한테는 훨씬 유리한 셈이지요. 결국 중요한 건 실력과 노력이 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는 89년부터 개인용컴퓨터(PC)를 쓰기 시작했다. 워드프로세서의 원조격인 삼보 「보석글」로 작업을 시작했고, 90년대 초부터 아래아 한글을 썼다. 얼마 전까지는 자료를 찾느라 인터넷도 종 종 썼는데, 써보니까 시간을 너무 빼앗기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제자들을 시켜 자료를 찾게 해 요』

그는 스스로를 「성질 급하고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못참겠어요. 몇주씩, 몇달씩 시간을 줘도 마감시간을 못지키는 사람을 보면 정말 이해가 안돼요. 일이 있으면 지체없이 바로바로 해치워야지…』 속담사전을 만들면서도 작업이 더디자 컴퓨터를 더 구입했고, 집에서 쓰던 것도 연구실로 들고 왔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음 작업에 대한 밑그림이 나와 있다. 『국어학 연구는 일단락됐다고 보 고, 앞으로는 언어와 문화의 관련성을 연구할 생각』이라고 그는 말한다(그가 94년 펴낸 「국어 문법」은 국어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96년 그에게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안겨주었 다). 따지고 보면 속담사전도 새로운 연구의 일환인 셈이다.

그는 요즘 8월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 때가 되면 30여년 대학 교수직에서 정년퇴임, 강의에 시 간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매료된 그를 닮아서일까? 슬하의 3남1녀 가운데 3명이 학문의 길을 걷고 있다(1명은 법조인). 『글쎄요, 애들한테 특별히 뭘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어요. 애들 보기에 아버지 공부하는 모 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이지요』 환한 웃음에서 문득 30대 청년의 젊음이 느껴진다.〈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