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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경의 신비’ 벗겨진다

‘황홀경의 신비’ 벗겨진다 - 「쾌락의 원천」 뇌 엔도르핀 연구 급진전 | 약물남용등에 특효약 나올듯 | NEWS+ 1998년 2월19일치

  쾌락이나 감정을 과학적으로, 혹은 생물학적으로 분석하고 다스리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 의 삶에 더없이 중요하지만 지나칠 때는 도리어 치명적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쾌락. 
그것은 마치 불처럼 인류가 끊임없이 통제 범위 안에 넣어두고자 하나 여전히 그러지 못하는 「자연의 힘」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도 신경과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등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달라지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쾌락의 생물학적 비밀을 완전히 밝히기 직전까지 와 있다고 주장한다.『쾌락을 분자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다면 약물남용 등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은 물론 정신병에 대한 획기적 처방이 나올 수 있을 것』 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옥스퍼드대학의 수전 그린필드(약물학)는 「인간의 두뇌」(베이식북스, 1997)라는 책에서 분수처럼 뻗어나온 뇌의 신경세포 형태를 묘사 하고 있다. 뇌간(腦幹)으로부터 뻗어나온 이 복잡한 신경계의 구실은 다른 뇌 부위로 각종 화학적 신호를 전달하는 일이다.

『뇌간 부근의 신경계는 신경안정제 등 기분을 바꾸기 위해 복용하는 대부분의 약들이 작용하는 부위 라는 점에서 「쾌락과 감정의 원천」(源泉)이라 할 만하다』고 그린필드 박사는 말한다.

‘대뇌 변연계’장애땐 알코올중독 등 초래
 
케네스 블룸 같은 신경과학자는 인간의 쾌락과 감정의 비밀을 이른바 「쾌락-보상 센터」로 불리는 대뇌 변연계(邊緣系·Limbic System)와 연결짓는다.『뇌속 깊숙이 자리잡은 변연계의 장애로 인해 「보상 결핍 증후군」이 초래되며 그 결과 알코올중독, 약물 남용, 흡연, 대식증(大食症), 도박 등 인간의 다양한 행동 장애가 나타난다』고 그는 말한다.

블룸은 그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세로토닌(Serotonin), 도파민(Dopamine), 엔도르핀(Endorphin) 같은 주요 화학물질의 전달 경로 를 비롯한 뇌의 여러 신경전달계와 수용체에 대해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한편 미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의 폴 매클린 박사는 인간의 뇌에 대해 「진화 과정의 삼위일체설」을 내놓았다. 파충류와 초기 포유류, 그 리고 현재의 포유류가 조상 단계에서 가졌던 생물학적 관계가 현존 인간의 뇌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주장이다.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의 피터 와이브로 교수(정신의학)는 그러한 모델을 이용해 「감정의 해부학적 기원」을 설명하 고자 한다. 그는 우울증 조병(躁病) 등 여러 심신의 고통에 대한 연구를 담은 자신의 저서 「분리된 감정」(베이식북스, 1997)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의 행태는 다른 동물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구애나 쾌락 추구, 공격성, 자신의 세력권에 대한 방어 본능 같은 행태들에서는 공통점이 많다. 따라서 인간 행태의 진화는 부분적으로 다른 종의 계층적 발달과 진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하다』

와이브로 교수도 인간 감정의 기원을 대뇌 변연계에서 찾는다. 그는 시상(視床·Thalamus) 편도(扁桃) 등을 포함하는 대뇌 변연계의 장애가 인간의 세가지 활동을 분열시킨다고 주장한다. 생각(기억력)을 할 수 없게 되며, 느낌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수면과 식습관을 교란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항울제(抗鬱劑) 프로작(Prozac)이 작용하는 부분도 세로토닌을 비롯한 뇌의 여러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연구자들도 있다. 미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의 캔디스 퍼트 박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시상하부(視床下部), 변연계, 편도 등은 여러 연구자들 사이에서 감정표현의 중추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전통적 공식화는 감정표현에서 오직 뇌만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이것은 내가 볼 때 매우 제한적인 발상』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퍼트 박사는 몇년 전 자물통과 열쇠의 관계처럼 엔도르핀을 정확히 받아들이는 수용체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쾌락의 비밀스런 껍질을 하나 벗겨낸 것이다. 『실험용 쥐든, 영부인이든, 또는 마약중독자든 두뇌 속에서 황홀경과 확장된 의식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은 놀라울 만큼 똑같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엔도르핀은 우리 몸속에 들어 있는 일종의 「천연 모르핀」이다. 그 수위가 높아질수록 고통에 대한 감각은 무뎌지고, 쾌락의 수위는 높아진다. 1970년대 초반이 「현대 신경과학의 황금기」로 규정되는 것도 엔도르핀이 그 시기에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다.

퍼트 박사는 관심 영역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천연 아편이 쾌락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주목 한 것은 「성적 오르가슴」이었다.

그녀는 신경생물학자인 낸시 오스트로스키와 함께 햄스터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그들은 햄스터의 교미 주기를 잘 관찰한 뒤 교미 직전 에 방사능 처리된 아편을 주사했다. 그리고는 교미의 여러 단계에서 햄스터들의 목을 쳐 뇌를 제거했다. 『교미행위의 시작부터 끝까지 햄스터의 혈중 엔도르핀 수치가 평상시보다 200% 가량 더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퍼트 박사는 말한다.

적어도 대뇌 변연계만이 동물의 쾌락과 감정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우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러 감정들은 몸(身)과 마음(心)을 연결해 온전한 심신(心身)이 되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퍼트 박사는 말한다.

그녀의 「심신 재결합론」은 어떤 면에서 매우 급진적인 추측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녀의 이론은 여러 연구자들 사이에서 묵시적으 로, 또는 어느 정도의 편차 안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누구나 인간의 「의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더할 나위없이 복잡하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수십개의 신경화학 전달물질에 의해 조절-변환되는 통합체계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베일은 더욱 빠르게 벗겨지고 있으며, 그 결과가 아 마도 퍼트 박사의 「심신 재결합론」 같은 통합이론일 것이라는데 대해서도 동의하고 있다. 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