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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토종가곡 만들기 10년’ 김신환PD

[김상현기자의 클래식 산책]NEWS+ 1997년 12월4일치

10년. 햇수로는 11년이다. 그동안 94명의 작곡가와 118명의 작사가(대개는 시인)가 참여했고, 204곡의 새 가곡들이 나왔다. 개중에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보편성을 확보한 것도 있고, 국내 유명 성악가들이 단골 레퍼토리로 삼을 만큼 널리 사 랑받는 곡도 적지 않다. 물론 「신작」의 꼬리표를 채 떼기도 전에 잊힌 비운의 곡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모로 보든, 10년을 한결같이 새 가곡 보급에 정진해온 KBS1FM(93.1MHz)의 뚝심과 줏대만은 높이 사줄 만하다. 그리고 그 10년 을 기념해 벌이는 자축연에도 축하의 마음을 실어 보낼 만하다.

김신환 KBS 프로듀서.

『KBS 신작가곡 시리즈는 흔히 「국민 정서의 결정(結晶)」, 혹은 「민족 언어의 정수」라고 하는 가곡이 여전히 홍난파와 채동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데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김신환 프로듀서는 말한다. 
93년부터 이 작업에 참여해온 그는 10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4곡 탄생…“강 건너 봄이 오듯”“내맘의 강물”등 수작 많아
 
11월27일(목) 오후 8시 여의도 KBS홀에서 펼쳐지는 축하연은 「10주년 기념 97 FM 신작가곡의 향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소프라노 양은희를 비롯해 바리톤 김진섭, 테너 최승원, 바리톤 장유상, 소프라노 윤인숙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KBS교향악단(지휘 김덕기)의 반주 위로 새 가곡의 선율을 실어보낸다.

「강 건너 봄이 오듯」「소나무」「축복의 노래」「압해도」「섬진강」「내맘의 강물」 등 KBS가 만든 곡들 가운데 「신작」의 꼬리표를 떼고 어엿한 한국 가곡의 반열에 오른 수작들이다.

「강 건너 봄이 오듯」은 소프라노 조수미가 자신의 음반에 담아 일약 인기곡으로 떠올랐으며 「내맘의 강물」은 테너 임웅균이 KBS열린음악회 등에서 애창해 그 인지도를 높인 가편(佳篇)이다.『사랑의 이름으로 반지 만들고/ 영원의 향기로 촛불 밝혔네』 로 시작되는 「축복의 노래」(문정희 시)는 90년 처음 소개된 뒤 수많은 결혼식을 빛낸 「토종 축 가」로 자리잡았다.

신작가곡은 대개 KBS가 위촉한 작곡가를 통해 태어난다. 처음에는 노래말(시)도 위촉했으나 뒤에 곡만 의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올해는 서정주시인의 시 7곡에 대해 곡을 위촉해 「석류꽃」 「밤」「곰」「춘향옥중가」「꽃」「국화옆에서」 등을 새 가곡으로 선보였다. 올해 처음 작곡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곡을 공모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정서와 맛을 좀더 생생히 살려내기 위한 시도다.

KBS 신작가곡은 노래말뿐 아니라 곡의 양식을 다양화하는 데도 적잖이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다. 국악 양식을 접목한 곡들(주로 이해식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황성호교수나 이건용교수의 곡들처럼 「선율을 가진」 정통 서양음악 어법의 작품들도 적지 않다.

『선율이 있다는 것은 우리 가곡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우광혁씨(음악평론가)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 가곡에는 「화성」만 있을 뿐 대위법에 바탕한 「선율」이 없었다. 선율은 곡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물 흐르듯 발전하는 느낌을 담아내는 음악적 문법이다. 그러나 홍난파나 채동선으로 대표되는 우리 가곡들에는 화성밖에 없었다. 그만큼 정적(靜的)이었다. 풍부한(때로는 과도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지만 더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KBS 신작가곡」 작업은 오늘도 계속된다. 매일 아침 8시55분과 오후 3시55분, 그리고 저녁 7시55분, 채 5분도 안되는 틈새를 비집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전한다.

그러나 『한국 가곡의 정체성을 지키고 21세기 새로운 유형의 음악을 만들어 간다』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KBS의 작업은 그리 순탄치 못하다. 무엇보다 가곡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너무 낮다.

『일선 프로듀서들조차 귀에 익숙하고 편한 「홍난파류」 가곡만 선호하는 바람에 현대적 기법의 가곡이나 현대시에 붙 인 가곡들은 홀대받기 일쑤』라고 김PD는 말한다. 작곡가들이 가곡을 쓰지 않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그만큼 시장이 좁은 탓이지만 비뚤어진 음악 교육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거나/ 짐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 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송길자 시, 임긍수 곡 「강 건너 봄이 오듯」 중에서) 정녕 「한국 가곡」이라는 강의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거나. 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