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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수리수리 열려라” ‘신체열쇠’ 시대 활짝

지문 흉채 음성 필체등 인식시스템 급진전 | NEWS+ 1997년 11월27일

한 남자가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긴 곳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자동응답기처럼 생긴 틈새로 수표를 밀어넣고 나서 완두콩만한 카메라 쪽에 얼굴을 대고 한번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인다. 「미스터 페이롤」(Mr. Payroll)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수표-현금교환기는 미리 저장된 파일을 검색해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맞는 사람이다. 1, 2분 뒤 그 남자는 현금을 들고 밖으로 나선다.

이제는 우리 몸이 열쇠다. 우리 몸이 지닌 여러 특성들 예컨대, 얼굴생김새 손 지문 눈 목소리 심지어 냄새까지도 열쇠가 될 수 있다. 「생물측정학」 쯤으로 번역되는 「바이오메트릭스」(Biometrics) 기술의 급속한 발전 덕택이다. 앞에서 예로 든 미스터 페이롤은 이용자의 신원을 「얼굴 인식기술」로 확인하는 기계다.

우리 몸을 신원 확인의 도구로 쓰는 일은 하이테크 영화 속의 얘기거나 기껏해야 비밀정보기관, 또는 핵발전소 등에서만 통용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신체 열쇠」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확산되고 있다. 미 조지아대학은 1972년부터 식당 출입에 손 스캐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식권이나 학생증, 카드 등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더라도 기계에 손만 대면 간단히 신원이 확인되므로 번거롭 게 승강이를 벌일 일이 없다』고 식당 서비스 책임자인 마이클 플로이드씨는 말한다.『아직까지 손을 잊고 온 학생은 없었다』

「신체 열쇠」라는 개념은 도둑이나 사기꾼들에 의한 피해를 막는데 더없이 효과적인 반면 사생활 및 인권침해의 위험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신체의 일부를 스캐닝하는 기계는 특정 개인의 고유정보를 잔뜩 저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자개척자재단(EFF)의 로리 페나 소장은 『사람들에 대한 고유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가 늘어날수록 사생활 침해의 위험도 높아지 고 있다』며 『미미해 보이는 정보로부터 특정인의 신분과 거주지 등을 밝혀내는 일이 점점 쉬워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란은 바이오메트릭스의 응용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계속 증폭될 전망이다.

사실 네트워크 환경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지문이나 손 인식기술 등을 도입하는 것이 그리 논란을 빚지 않았다.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 해도 널리 유통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스터 페이롤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국내 편의점들에 150여개나 설치돼 있을 뿐 아니라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회원에 대한 데이터를 하루 24시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바이오메트릭스 관련 뉴스레터를 편집하는 벤 밀러씨는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이 본래 개인적인 정보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당연히」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면서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바이오메트릭스는 제대로 이용하기만 하면 오히려 개인의 사생활을 확실히 보장받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금고 의 잠금장치나 개인적 데이터에 대한 접근통로를 지문이나 얼굴, 홍채 등 오직 그에게만 유일한 신체적 코드로 만들 경우 다른 어느 누구도 그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일찍부터 신원확인의 도구로 쓰인 것은 손과 손가락, 즉 장문(掌紋·손바닥 자국)과 지문이다. 그에 대한 기술도 매우 정밀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는 이미지를 너무 강하게 풍기는 까닭이다. 게다가 전체 인구의 2% 정도는 중노동 등의 이유로 지문이 아예 없어서 완벽한 신원 확인에는 다소 문제가 따른다.

조지아대학의 손 스캐닝 시스템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특히 여학생이 반지를 꼈을 때와 끼지 않았을 때, 스캐닝 시스템은 그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 쓰고 있는 3세대형 스캐닝 시스템은 3차원적으로 손을 검사해 반지와는 상관없이 정확하게 신원을 확인해낸다』고 플로이드씨는 말한다.

미 이민국도 손 스캐닝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기관이다. 이민국은 이민수속을 좀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93년부터 이 시스템을 써왔다. 그러나 아직도 8% 정도는 제대로 인식하기 못해 따로 이민국 직원이 대면을 해야 한다.

한편 IBM은 장문을 여행자의 신용카드와 연계, 국경 없이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중이다. 손이나 지문에 견주면 얼굴 인식기술은 일단 거부감이 적다. 이용하기도 편리해서 언제 신원 확인이 되는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스캐닝을 할 수 있다. 이 기술이 가장 요긴하게 쓰일 법한 곳은 라스베이거스 같은 곳의 대형 도박장이다.

미 인티그레이티드 콘트롤사는 도박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고객들의 얼굴을 인식하고, 이미 알려진 1만여명의 전문 도박사들의 그것과 비교해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그러나 얼굴 인식 시스템은 아직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 범죄를 저지르려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머리카락을 염색하거나 얼굴을 성형수술하는 방법으로 컴퓨터를 속일 수 있다. 쌍둥이인 경우라면 컴퓨터는 더욱 헷갈릴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사생활 침해”반론도
 
많은 전문가들이 가장 유망한 「신체 열쇠」로 꼽는 것은 우리 눈의 홍채다. 눈의 조리개 구실을 하는 홍채는 지문이나 장문보다 훨씬 더 확연히 구별될 뿐 아니라 손상되거나 닳아 없어질 염려도 적다. 홍채 인식기술을 개발중인 영국 브리티시텔레콤에 따르면 홍채는 사람마다 다른 수십가지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아직 안정된 기술이 나오지 않았고, 또 이를 응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우리 계획대로라면 은행에 돈을 찾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은 따로 신용카드를 내거나 PIN(은행카드의 비밀번호)를 댈 필요조차 없게 될 것』이라고 시티뱅크의 기술개발 책임자인 제임스 지너씨는 말한다. 고객은 그저 은행의 현금인출기 앞에 서서 카메라만 잠깐 쳐다보면 된다. 홍채인식 시스템이 그의 신원 및 계좌정보 를 순식간에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은 상용화에 앞서 윤리적인 논쟁의 관문을 통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정 개인의 이미지와 신체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그의 허락없이 자유롭게 읽히고, 저장되고, 분석되어도 되는 것인가. 고객들의 정보를 지닌 은행이 특정 기업과 결탁해 개인 정보들을 팔아 넘길 위험성은 없는가.

『테크놀로지의 진보 속도는 현실의 법규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고 전자개척자재단의 페나 소장은 걱정한다. 『테크놀로지가 진보할수록 개인의 사생활 침해 위험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대책 없이 기술 진보만을 좇 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 몸이 우리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더욱 안전하게 할지, 아니면 조지 오웰의 「1984」에 그려진 것처럼 빅 브러더의 감시에 속수무책 노출된 위험한 삶으로 이끌지 아직 미지수다. 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