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교포2세 주축‘재미 한국인 기업가協’결성 | “성공신화 선례, 진출할 동포에 제공할터” | NEWS+ 1997년 11월13일치
『한국인들이 앞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높습니다. 「케이스」는 그러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될 겁니다』
10월29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재미 한국인들의 기업가 연합이 탄생했다. 정식 이름은 「재미 한국인 기업가 협회」(Korean-American Society of Entrepeneurs·KASE). 간단히 「케이스」라고 부르는 비영리 단체다(http://www.kase.org). 여기서 기업가는 주로 「벤처 기업가」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한국에 뿌리를 둔 엔지니어, 벤처 자 본가, 기업 간부 등까지 포괄한다.
『이민 1세대로 불리는 우리 부모님들이 보여준 것처럼, 한국인들은 유난히 독립심과 모험심이 강하다. 이는 벤처 기업가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케이스 창립을 주도한 이계복 회장(39·재즈소프트 부사장)은 말한다.
이민 1세대는 세탁소 구멍가게 등 밑바닥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과 기업정신을 보여주면서 터를 닦았다. 이민 1.5세대, 혹은 2세대는 그와 전혀 다른 층위에서 출발한다. 이회장이 『가장 실리콘밸리적인 성격을 보여준다』고 자랑하는 케이스의 창립 멤버들이 좋은 사례다.
기발한 아이디어-기술 있으면 무한한 가능성
그와 함께 케이스를 출범시킨 브랜든 김(30)은 벤처 투자회사인 「알토스 벤처스」에서 인터넷과 미디어-컨텐트 분야의 투자를 결정하는 제너럴 파트너이며, 케이스의 법인화 작업을 맡은 우혜윤씨는 스탠포드대 법대를 나와 「벤처 로 그룹」(Venture Law Group)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재 원이다.
케이스의 세금문제를 담당한 브라이언 송은 세계적 재무 컨설팅기업인 「쿠퍼스&라이브런드」의 컨설턴트, 그리고 재정을 맡은 데이 비드 전은 투자금융기술 회사인 「도널드슨, 러프킨&젠레트」의 컨설턴트다.『우리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한국인 벤처기업의 좋은 선례가 드물다는 점』이라고 이회장은 말한다.
이민 1세대로는 「텔레비디오」의 필립 황, 「파워컴퓨팅」의 스티브 강, 「자일렌」의 OOO 등 손으로 꼽을 정도.『인도나 중국같은 경우 벤처기업가들의 모임이 매우 활발하며, 인구 500만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은 나스닥(NASDAQ·미 국 장외 주식시장)에 상장한 벤처기업만 85개가 넘을 만큼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다』 는 게 이회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그의 꿈은 케이스를 한국 벤처기업인들이 서로 돕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곳, 장차 벤처기업을 차리고자 하 는 한국인들에게 좋은 「선례」를 제공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케이스의 창립 멤버는 모두 10명. 이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20대다. 전자우편을 통해 참가의사를 알려온 40여명의 지원자들 또한 예외없이 대학이나 대학원을 갓 졸업한 패기만만한 젊은이들이다.「한국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철없는 젊은이들이 무슨 기업을…』 하고 회의적인 반응을 낳을 법도 하다. 그러나 이곳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곳,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는 이들 젊은 두뇌의 꿈과 희망, 피와 땀 위에서 태동했고 또 번성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물론 남다른 아이디어와 기술, 번뜩이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이러한 정신적 자산은 실리콘밸리로 무한공급되는 물질적 자산, 곧 벤처자본을 끌어들이는 필수재료가 된다.
차고에서 애플컴퓨터의 신화를 시작한 스티브 잡스나, 넷스케이프사로 일약 억만장자가 된 마 크 앤드리슨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케이스 설립을 주도한 이계복회장의 사례만 보더라도 실리콘밸리의 무한한 기회와 가능성이 어떻게 열려있는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컴퓨터공학으로 유명한 뉴욕의 렌슬러공대(RPI)를 졸업한 뒤 실리콘밸리의 원조격인 페어차일드반도체를 비롯해 3DO(미국), 애플 저팬(일본), 오세 그래픽스(프랑스) 등에서 12년 동안 일했다. 이 기간에 비즈니스 감각은 물론 불어 일본어 독일어 등 다국어를 익혔다.
95년 9월 그는 마침내 독립했다. 「원오」(One-O)라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차린 것이다. 디지털 신호인 1과 0을 뜻하는 원오의 핵심 상품은 인터넷의 방대한 정보를 선별하고 검색해 주는 인터넷 심부름꾼(Agent)인 「사이트맵」 (SiteMap) 프로그램과 「메일캐스트」(MailCast)였다.
한국 벤처기업-투자자와 네트워크 구축 추진
일반적으로 브라우저를 쓸 경우 어떤 사이트에 접속해 관련 정보나 페이지로 계속 클릭, 클릭 해 들어가다 보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원오의 인터넷 심부름꾼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 해당 사이트의 주소(URL)를 치면 그 사이트가 담고 있는 내용을 마치 도서목록처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원하는 분야의 정보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우편배달 기능은 해당정보를 찾기 위해 그 사이트를 찾아가는 수고까지 덜어 준다. 원오는 좋은 기술이 있었지만 자금이 충분치 않았다.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나서 자금원을 물색하던 중 재즈소프트사가 좋은 조건을 제시해 인수-합병에 동의하게 됐다』고 그는 말한다.
삼성전자, 한솔, 가산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투자한 재즈소프트사는 장래가 꽤 유망한 멀티미디어 기업. 원오의 특허 기술인 「사이트맵」과 「메일캐스트」는 재즈소프트로 고스란히 이전되어 현재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이계복씨는 이곳의 부사장 겸 임원으로 임명됐다(http://www.jazzsoft.com으로 접속하면 원오의 독특한 기술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사실 이계복씨와 같은 사례는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이 지사나 현지 법인 형태로 진출한 경우를 제외하면 미국 국적을 지닌 한국인이 벤처기업을 차린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케이스」에 회원으로 등록된 50여 재미 한국인들이 그러한 전망에 대한 기초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재미 한국인들이 실리콘밸리에 진출할 경우 국내 기업들이 지사를 내거나 현지 법인을 세우는 것보다 오히려 더 성공가능성이 높다. 실리콘밸리의 「문법」에 더 빨리,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했기 때문에 언어적인 문제나 문화적인 장벽은 없다』고 브랜든 리씨는 말한다.
컴퓨터 생산업체인 AST를 인수한 삼성전자나, 하드디스크 생산업체인 맥스터를 인수한 현대전자가 어려움을 겪은 것도 자본이나 기술문제라기보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이었음을 생각하면 쉽사리 이해될 법한 부분이다. 그래서 케이스는 한국의 주요 벤처 투자가나 예비 벤처기업가들과도 긴밀한 연계를 꾀할 방침이다.『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들의 벤처 기업과, 국내 벤처투자가나 벤처기업 등과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케이스의 빼놓을 수 없는 숙제』라고 이회장은 말한다.
케이스는 이제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이회장도 『처음부터 크게 하기보다는 일할 사람부터 찾은 다음에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갈 계획』이라 고 말한다. 그러나 그 꿈과 가능성만은 무한대로 열려 있다. <멘로 파크=김상현 기자>
인터넷‘레저 여행’꽉 잡은 사나이 | ‘아테보’설립 신현봉씨 “아이디어 떠오르면 빨리 시작해야”
인터넷의 명소로 꼽히는 「넷스케이프 가이드」 중 여행편 (http://netscape.yahoo.com/guide/travel.html)에는 「오늘의 그림」이라는 메뉴가 있다. 매일 새로운 여행지 풍경을 소개하는 서비스다. 하이퍼링크를 따라가면 좀 더 큰 사진을 볼 수 있으며, 이를 전자 우편엽서의 표지로도 이용할 수 있게 해놓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아테보」(Atevo·http://www.atevo.com)라는 독특한 이름의 인터넷 여행 서비스업체. 올해 스물여덟살의 재미 한국인 신현봉씨가 지난해 여름 설립한 벤처기업이다. 그는 스탠퍼드대 MBA를 마치자마자 쫓기듯 아테보를 세웠다(처음 이름은 「트래블포인트」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모든 것이 아이디어와 시간 싸움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가능한 한 빨리, 다른 사람보다 먼저 비즈니 스를 시작해야 한다』고 신씨는 설명한다. 그가 생각하는 아테보의 미래는 비즈니스 여행이 아닌 「레저 여행」의 완벽한 해결사,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여행 공동체」다.
『단순히 여행지를 안내하고 티켓을 파는데 그치지 않고 여행자들과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을 한곳에 모으는 구심점으로 키워갈 계획』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는 17개국을 여행했을 만큼 스스로도 여행광인 그의 믿음, 곧 「여행은 즐겁고 상호작용적이며 정신을 확장시키는, 그래서 서로 공유해야만 하는 경험」이라는 생각과 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 오리건주로 이민왔다. 명문 카네기 멜론대에서 산업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뒤 벨 애틀랜틱에 입사, 3년 남짓 전략기획 매니저로 일하다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했다. 벨 애틀랜틱의 후원으로 공부했고 MBA까지 따냈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모험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동생도 오리건주에서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을 차린 걸 보면 「벤처 정신」은 내림인 모양이다. 아테보는 인터넷의 「대화적」(Interactive) 성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여행 서비스업체들이 현실의 여행사를 평면적으로 옮겨 놓은데 견주면 돋보이기는 하되 실패의 위험 성도 함께 안아야 하는 모험이다.
『인터넷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곳의 문법에 맞는 메커니즘과 정보를 원하고, 다른 네티즌들과의 정보 교 류를 추구한다. 아테보는 그러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신씨는 말한다.
아테보는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인 대홍기획 등 여러 벤처 자본가들의 투자를 받아들였으며, 1년 남짓한 기간에 직원이 20여명으로 불어날 만큼 급속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넷콤, 넷스케이프 등 인터넷의 주요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 그 행보도 순조롭다.
그러나 성공을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벤처기업으로서 몇번의 도약, 혹은 좌절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벤처기업가에 대해 『모든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현실로 바꿔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직 그에게는 현실보다 꿈과 희망의 몫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