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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전자계산기 “컴퓨터가 밉다”

탄생 30돌, 다기능 컴퓨터에 밀려 인기추락 | NEWS+ 1997년 10월2일치

    올해는 휴대용 전자계산기가 처음 나온지 30년째 되는 해이다.

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세 엔지니어들에 의해 1967년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휴대용 전자계산기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사칙연산밖에 할 수 없었지만 당시 제품들에 비해서는 꽤 첨단 축에 들었다.

어쨌든 당시만 해도 전자계산기는 기계적으로 주판을 대신한다는 것 이상의 특별한 뜻을 지니기 어려웠다.

1989년 고비로 판매량 내리막길
 
오늘날의 전자계산기는 30년 전 등장한 제품에 견준다면 그야말로 「도약」으로 평가할 수준이다. 단순한 숫자뿐 아니라 도형 수식 등 복잡한 그래픽 요소까지 표현할 수 있으며 복잡한 과학-수학 연산까지도 너끈히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공학 및 자연계 대학들은 고등 수식을 푸는 시험에서 아예 전자계산기를 이용하도록 학생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뛰어난 진보에도 불구하고, 휴대용 전자계산기는 급격히 쇠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고 있다. 컴퓨터 때문이다. 휴대용 전 자계산기는 6160만대가 팔린 1989년을 고비로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ITI(정보기술산업계)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판매량은 5540만대 선에 그칠 전망이다.

컴퓨터는 엄청난 기술적 진보 못지않게 그 모양과 크기에서도 휴대용 전자계산기를 능가하고 있다. 더욱이 꽤 많은 컴퓨터들에는 휴대 용 전자계산기가 지닌 다양한 연산과 계산을 할 수 있도록 전용 프로그램이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다.

월드와이드웹(WWW)도 휴대용 전자계산기에는 그리 달가운 손님이 아니다. 꽤 많은 웹 사이트들이 인터넷을 통해 사인-코사인 각도 에 대한 계산으로부터 임대료나 세금계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수학적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자바 애플릿, 쇼크웨이브, 애니메이션 등을 동원한 이 「가상 전자계산기」들은 그 편리성이나 성능면에서도 첨단 전자 계산기들 못지 않다.

“값싸고 휴대 편해 계속 애용될 것”주장도
 
일찌감치 사라진 줄 알았던 주판이 뜻밖의 「선전」(善戰)을 펼치는 것도 전자계산기에 적잖은 위협이 되고 있다.

주판은 아직 산업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후진국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선진국의 학교 들에서도 그것이 지닌 학습효과 때문에 주판 사용을 권장하는 추세이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리처드 샤 박사는 그러나 『주판이 그런 것처럼 전자계산기도 결코 그 남다른 의미와 지속적인 발전을 포기하 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전망한다.『비용의 효율성으로 볼 때 전자계산기는 학교와 직장에서 여전히 가장 뛰어난 계산의 도구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샤 박사는 또 전자계산기가 『컴퓨터가 그려온 것과 흡사한 양태의 성장곡선을 보여준다』고 말한다.『다만 둘 사이의 차이는 전자계산기가 컴퓨터보다 훨씬 더 구입하기 쉬운(값싼) 수준에서, 그리고 휴대하기 간편한 형태에서 계속 진보해 왔다는 사실이다』그만큼 컴퓨터보다 지속적인 「비교우위」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자계산기와 컴퓨터 중에서 어떤 것이 사람들의 가계부 정리를 돕거나 미사일의 탄도를 계산하는 데 더 애용될까. 

물론 가장 간편한 대답은 「시간」이 말해주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기술의 진보와 경향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판으로부터 출발해 끊임없이 진화 발전해 온 계산도구의 「역사」 속에서 전자계산기의 의미나 가치가 불변하리라는 사 실만은 분명하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