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 기사

“21세기 지구 주인은 로봇”

내가 이 기사를 쓰게 된 계기는 영화 터미네이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우연히 읽게 된 영국의 로봇 과학자 케빈 워윅의 책 '기계들의 행진' (혹은 당시 내가 번역한 대로 '기계들의 진군')을 읽고 나서였다. 기사의 앞머리도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현재 우주 해양 화산탐사 등 65만여대 활동 | 
“50년내 인간보다 똑똑한 로봇 나올 듯” |  | NEWS+ 1997년 8월28일치
 

서기 2050년.

다행스럽게도 인류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핵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지구온난화로 남극 상공의 오존층 구멍이 더 커지기는 했지만 역시 생존에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인구 폭발도, 식량난도 인류 멸망의 재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더 이상 지구의 지배자나 만물의 영장도 아니다. 개 소 말과 다름없는 동물의 일족으로 전락했다. 그렇다. 적어도 21세기 초까지 지구를 지배한 것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지위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로봇 영향력 날로 확대… 진화 속도도 초고속
 
2050년의 지구는 기계가 지배한다. 「로봇」이라고 해도 좋다.

임무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와 모양과 크기를 가진 로봇은 인간을 추방하고 지구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했다. 지력, 교신 속도, 물리적 힘, 육체적 한계 등 어떤 점에서도 인간은 로봇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인간은 비좁고 불편한 수용소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 뇌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고민이나 추상적인 상상을 못하도록 제거되었으며, 노동력이 뒤떨어지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인공수정에 의한 출산의 의무가 주어졌다.

인간의 수명은 기껏해야 30대 안팎. 12세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노동력은 18세 전후에서 절정기를 맞은 뒤 26~28세를 기점으로 쇠퇴한 다.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효용가치를 다한 인간의 종착지는 소각로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터미네이터」(1984년) 도입부가 연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 영화에서 인간은 기계와의 전쟁에 패해 멸절 위 기에까지 몰린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영화 대본이나 공상소설이 아니다.

「기계의 진군」(March of the Machines)이라는 로봇 연구서에 나오는 얘기다. 지은이는 케빈 워윅. 곤충형 로봇 「엘마」 , 「7개의 난쟁이로봇」 등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 레딩대학의 저명한 인공두뇌학(Cybernetics) 교수이다. 인공지능(AI)과 제어, 로봇공학 등이 그의 전문 분야이다.

케빈 워윅 교수. 구글 검색에서 찾은 이미지다.

그는 자신의 시나리오가 결코 허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인간은 로봇보다 월등한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든지 켜고/끌(On/Off) 수 있는 통제력도 지녔다. 그러나 컴퓨터로 대표되는 기계의 영향력은 날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진화 속도도 미처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어떤 경우든 미래에 대한 예측은 실제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60년대 후반 많은 로봇공학자들은 (로봇 덕분에) 퇴직연령이 50대로 낮아지고, 노동시간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들어맞지 않았다. 로봇이 수많은 직업을 대체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봇 사용에 따른 새 직업이 창 출됐고, 사람들은 여전히 60년대 못지 않은 시간을 노동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50년 전의 예측을 훨씬 넘어선 수준으로 실현됐다. 교환수 없는 전화기, 마음대로 돈을 찾고 쓸 수 있는 작은 플 라스틱 카드, 외국의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셀룰러폰, 국경과 장소를 초월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 따위를 예측한 사람이 50 년 전에 과연 몇이나 있었겠는가.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할 것이며, 그 때는 지구의 적자(適者)가 바뀔 것』이라고 워윅 교수는 자신있 게 전망한다.

「진군」 혹은 「침략」까지는 아니더라도 로봇은 어느새 우리와 함께 있다. 공장과 가정은 물론 하늘과 바닷속에도, 심지어 지구 밖 행성 에도 로봇은 있다.

『전세계적으로 65만여대의 로봇이 활동중』이라고 미 항공우주국(NASA) 로봇개발 프로그램의 매니저인 데이브 레이버리는 말한다.

미 독립기념일인 7월4일 화성에 안착해 한달이 넘도록 탐사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6륜(輪) 탐사차 소저너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로봇일 것이다.

우주과학자들의 간절한 염원과 탐구열을 한몸에 담은 이 10kg짜리 로봇차는 초당 1cm씩 움직이면서 디지털 카메라와 컴퓨터, 라디오 송수신기, 화학탐지기 등을 작동시키고 있다.

소저너는 생각만큼 똑똑한 로봇은 아니다. 그러나 장애물을 만나면 그것을 넘어갈 것인지 우회할 것인지 정도 는 결정할 수 있다. 최소한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셈인데, 이는 라디오 신호를 지구와 주고받는데 드는 시간이 22분이나 걸리기 때문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NASA의 과학자들은 앞으로 탐사로봇의 「지능」을 높이는 일이 우주 계획을 성패를 가름하는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깊은 바다 해류탐사용 로봇개발 눈앞에

「루너코프」(Lunar Corp)라는 회사는 미 카네기멜론대 로봇공학연구소와 함께 개발 중인 달 탐사용 로봇의 원
형(原型)을 최근 공개했 다.

「방랑자」(Nomad)라는 이름을 가진 이 로봇은 지난 6월, 7월 두 달간 200km에 이르는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 인 탐사실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우주탐사를 앞둔 로봇은 또 있다. 2005년까지 계속될 NASA의 화성 탐사작업에 이용될 「화성 글로벌 서베이어」가 그것.

카메라 등 다양한 탐측 장비를 갖추고 화성착륙선과 교신하면서 자율적인 탐사작업을 벌이게 될 것이다.

로봇은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한계를 손쉽게 넘어선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로봇은 어떤 혹독한 기후나 대기, 압력에도 잘 견딘다. 지난 93년 화산학자 8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알루샨 화산에는 그로부터 1년 뒤 카네기멜론대에서 개발한 탐사로봇 「단테Ⅱ」가 투입되어 활화산 크레이터의 내부로부터 가스를 채취했다.

단테Ⅱ가 불구덩이 속을 탐험했다면 참치로봇 「찰리」는 차고 드넓은 바닷속을 탐험한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해양공학연구팀이 개 발 중인 찰리는 참치처럼 스스로 바닷속을 헤엄치며 탐사를 진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짧은 배터리 수명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큰 문제로 남아 있다. 『현재의 배터리 기술로는 대서양 탐사처럼 몇달씩 걸리는 임무를 결코 수행할 수가 없다』고 개발자인 데이 비드 배렛은 말한다.『더 나은 동력원(源)이나 추진시스템이 있지 않으면 안되는데, 원자력은 환경문제 때문에 쓸 수가 없어 물고기의 움직임에 가장 가깝고 효율적인 추진방법을 찾고 있다』

찰리는 1.2m쯤 되는 길이에 40개의 금속뼈와 분절된 등뼈, 커다란 꼬리 등 284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짜 참치처럼 몸을 뒤 채어 꼬리의 추진력을 얻으며, 전력은 6개의 작은 서보모터로부터 나온다.『앞으로 5년 안에 보스톤항을 헤엄치는 찰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배렛은 말한다.

한편 MIT는 보스턴대와 공동으로 로봇가재(Robolobster)도 개발하고 있다. 찰리가 대양 탐사도중 길을 잃으면 이를 찾아오는 것이 로 봇가재의 임무. 길이가 23cm 정도인 로봇가재는 16개의 AA형 배터리로 작동된다.

「오디세이아Ⅱ」는 찰리나 로봇가재와 달리 내년 1월 2차 탐사에 들어가는 「현재진행형」 로봇이다. 기상이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해류 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것이 그 임무. 오디세이아Ⅱ는 그린랜드 부근의 얼어붙을 듯 추운 래브라도해 밑 6000m까지 내려가게 된다.

대기압의 600배나 되는 수압이 짓누르는 심해(深海)다. 그처럼 튼튼한 체력(?) 덕택에 오딧세이Ⅱ가 닿을 수 있는 곳은, 수심 1만m 이 상의 지역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대양의 95%에 이른다.

MIT 해저무인탐사정연구실(AUVL)이 미 해양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오디세이아Ⅱ는, 그러나 화성탐사선 소저너만큼 똑똑하지 는 않다. 이 잠수로봇은 인공지능대신 이른바 「계층」(Layered) 논리에 의해 통제된다.

연구자가 중요도에 맞춰 입력한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다가 최종적으로 「다른 모든 기능이 잘못되면」 무게를 줄이고 수면으로 부상하게 되 는 식이다.

오디세이아Ⅱ나 단테Ⅱ에 견주면 양치기로봇은 한가롭다 못해 낭만적으로 여겨진다. 영국 실소연구센터와 옥스퍼드 대학은 최근 8~9월 중에 오리떼를 모는 「오리지기」 로봇을 실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양 대신 오리를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오리가 양처럼 반응하면서도 훨씬 더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 로봇은 아직 양떼를 쫓을 만큼 잽싸지 못하다.

『아직 우리는 시뮬레이션된 동물과 로봇만을 가졌을 뿐이지만 몇년 안에 실제 양치기 개와 비슷한 로봇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개발팀의 스티븐 카메론 박사는 말했다.

자가 운전자들의 염원―제 스스로 가는 차―이 실현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미국 「자동화 고속도로시스템 컨소시엄」(NAHSC)과 카네기멜론대 로봇공학연구소가 8월7일부터 샌디에이고주에서 시작한 로봇자동차 실험은 모든 운전과정이 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는 것 으로, 제대로 진행될 경우 사람은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읽거나 TV를 시청하는 것은 물론 셀룰러 모뎀을 통해 인터넷을 검색할 수도 있게 된다.

로봇자동차의 최대 장점은 「안전」이다.

『치명적인 교통사고의 3분의 1은 「나홀로」 운전자』라고 카네기멜론대의 찰스 소프 연구원은 말한다. 『그들은 대개 지나치게 빨리 커브를 돌거나 졸음 운전 때문에 화를 당한다』 로봇 자동차는 앞차 뒤차 옆차 등과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함은 물론 「인공위성 자동위치측정 시스템」(GPS)에 의해 특정 도로에 차들이 집중되 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도 로봇은 어김없이 존재한다. 바로 인터넷의 가상공간이다. 「서프봇」「체크봇」「서치봇」「소프트웨어봇」「쇼핑봇」 같은 「봇」(Bot)족(族)은 일종의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인터넷의 가상공간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정보나 자료를 검색하는 심부름꾼들이다.

로봇, 군사적으로 이용 땐 지구멸망 불보듯
 
가령 「쇼핑봇」은 미리 프로그래밍된 조건과 기능에 따라 월드와이드웹의 쇼핑 관련 자료만 찾아내는 비트(Bit) 심부름 꾼이다.

문제는 로봇이 언제나 인간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될 때 초래되는 결과는 가공할 만한 것이다. 실상 오늘날의 군사체계는 기계가 병사(사람)의 연장(延長)이기보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요즘의 첨단 무기들은 겨누고 발사하는 기능만을 조종사(인간)에게 맡길 뿐 나머지는 철저히 자동화되어 있다.

전쟁용 로봇은 대개 베일에 가려져 있다. 개발 중인지조차 모를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몇몇 대학이나 연구소의 프로젝트들로부터 그 단초는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 분야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MIT의 로드니 브룩스 교수는 90년 설립한 회사 「IS로보틱스」를 통 해 여러 종류의 군사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에어리얼」(Aerial)은 수중지뢰를 제거할 목적으로 만든 6족(足) 로봇. 여러 대가 합동으로 작전을 수행하며, 해군 상륙작전에 앞서 지뢰 를 탐지해 폭파시키는 것이 그 임무다.

지뢰를 파내는 「험디」(HumD), 폭파되지 않은 지뢰를 찾아내는 「페치」(Fetch) 등도 비슷한 유형의 로봇. 소나와 적외선 근접 감지기를 갖 추고 GPS를 이용해 적진을 정찰하는 로봇 「롬즈」(Roams)도 있다.

로봇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 안에 고양이 정도의 지능을 갖춘 로봇이, 10~50년 안에 인간만큼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지능을 갖춘 로봇 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로봇은, 그리고 인간과 로봇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워윅 교수의 확신에 찬 주장처럼 로봇이 지구의 새 주인으로 군림하게 될까? 김 상 현 기자

‘코리아 로봇’이 쑥쑥 큰다 
1999년쯤 어린이 머리 수준 가진 로봇 개발 | 휠체어용 로봇팔은 수준급

로봇 연구 및 개발 작업은 국내에서도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는 편이다. 원자력연구소가 비상사태 때 구난을 목적으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바퀴 달린 로봇을 개발했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과의 김종환 교수팀은 마이크로로봇축구팀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머리부터 만들까…다리부터 만들까” 
로봇개발 접근법 뚜렷하게 양분 | ‘지능보다 행동’이 다소 우세한 편

생각이 먼저냐 행동이 먼저냐.

사이코프(Cycorp)사의 더글러스 레너트(47)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인공지능연구실의 로드니 브룩스 교수(42)가 로봇(혹은 인공지능) 개발에서 보여주는 대조적인 접근법은, 마치 최초의 남극탐험을 놓고 격돌했던 아문젠과 스코트의 대결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