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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사이버미술관 접속해보면“애걔”

오진경교수팀, 전세계 265곳 분석 - 루브르 등 대부분 홈페이지 자료­정보 부실 (1997년 7월17일치)

    『프랑스까지 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루브르박물관의 방대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퍽 낯익은 얘기다. 온갖 언론 매체가 인터넷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써먹은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다.

    하나는 루브르박물관을 찾아가 미술품을 감상하는 「직접경험」과 인터넷을 통한 「간접경험」을 동일시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루브르박물관의 인터 넷 홈페이지가 실제 박물관만큼 풍부한 자료와 정보를 갖추고 있다고 착각한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6월 말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인터넷회의 「아이네트 97」에서 밝혀졌다. 이화여대 오진경 교수(미술사학)는 「인터넷을 통한 현대 미술 경험의 문제점과 가능성」이라 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자리에서 『인터넷 미술관은 실제 미술관에 대한 예비 정보는 될 수 있 을지언정 100% 대체물은 될 수 없다』면서 『인터넷으로 가상 루브르박물관을 체험하고 그것을 실 제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루브르박물관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일반의 생각과 달리 그 정보나 품질 면에서 열악함을 면치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교수는 미시간주립대 임길진교수(공공정책), 숭실대 신용태교수(컴퓨터학)와 함께 올해 초부터 인터넷에 올라 있는 265개의 미술관을 샅샅이 분석했다. 인터넷의 대표적인 검색도구인 「야후!」와 예술 관련 뉴스를 전하는 「아트뉴스」가 참고자료였다.

    오교수는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까 지 갈 필요가 없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과연 인터넷으로 얼마나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을까」 의 구심을 가졌다』고 연구 동기를 밝혔다.

    학술진흥재단에서 후원하는 이 연구는 현재 절반쯤 진행된 상태이다. 아이네트97에는 그 중 분석 결과만을 발표했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쯤 인터넷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뛰어난 가상 미술관의 원형(原型)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신용태교수는 말한다.

    265개 가상 미술관 중 가장 보편적인 운영 방식은 아무래도 고정된 이미지와 텍스트만을 제공하 는 것이다. 루브르박물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241개가 여기에 해당한 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정지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4곳, 예: 헌터리언미술관, http://www.gla.ac.uk/Museum/ --> http://www.gla.ac.uk/hunterian/ 로 변경), 이미 프로그래밍된 순서에 따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8곳, 예: 뉴욕 다이어미술센터, http://www.diacenter.org/), 감상자의 취향에 따라 거리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곳(7곳, 예: 시드니현대미술관, http://www.mca.com.au/), 감상자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한 「대화형」 사이트(5곳, 예: 스프링필드미술관, http://spfld-museum-of-art.org/ --> http://www.springfieldmuseums.org/ 로 변경) 등도 눈에 띄었지만 전체에서 보자면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겨우 12곳만이 「대화형」(Interactivity)과 「멀티미디어 기능」으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특성을 이용했다는 얘기다. 그것도 제한적으로.

“한국 호암미술관 등 21곳은 뛰어난 수준” 평가
    내용은 어떤가. 아이네트97에서 발표를 맡았던 임길진 교수는 『대부분 정보의 품질과 분량 양쪽 에서 미흡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카탈로그 수준에 그친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168개의 가상 미술관이 그러했는데, 여기에는 신문과 방송에 자주 인용됐던 루브르박물관 (http://mistral.culture.fr/louvre/ --> http://www.louvre.fr/en로 바뀌었다)도 끼여 있었다.

    임교수는 『루브르박물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예술품과 그에 대한 자료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미흡했다』면서, 『여기에는 언어와 문화 문제를 들어 미국 주도의 인터넷에 반기를 들고 있는 프랑스의 분위기가 많이 반영된 것 같 다』고 분석했다.

    나머지 가상 미술관들의 형편도 그리 나은 편이 못된다. 앞의 것들보다는 좀 더 낫지만 여전히 질과 양에서 미흡한 곳이 34곳(예, 일본의 하라현대미술관, http://www.haramuseum.or.jp/)이며, 정보량은 많지만 별로 쓸모가 없는 곳이 32곳(예, 메트로폴리탄미술관, http://www.metmuseum.org/), 퍽 유용한 정보를 담았지만 양이 적은 곳이 10곳(예, 국립미국미술관, http://www.nmaa.si.edu/ --> http://americanart.si.edu/ 로 변경) 등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정보량과 품질 양쪽에서 「수」 평가를 받은 21곳 중에 한국의 호암미술관이 포함됐 다는 점이다. 호암미술관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두 곳인데, 그 중 지난해 인터넷엑스포에 참가하기 위해 개설한 곳(http://samsung.expo.or.kr/pavilion/HoAm/)은 가상현실기술(VRML)을 활용, 감상 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한 사이트 5곳 중 하나로 뽑혔다. 다른 하나 (http://www.hoammuseum.org/)는 내용의 충실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265개 가상 미술관을 순례하는 일은 결코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이번 논문은 숭실대 컴퓨터학부 의 대학원생 3명과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생 4명이 몇 달 동안 컴퓨터에 매달린 끝에 얻은 결실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주로 담당한 신교수는 『감상자의 처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제 작자의 편의로 만들어진 홈페이지가 많았다. 좀더 인간적인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가상 미술관을 분석하는 작업은 「학제간 연구」의 한 사례로도 기억될 만하다. 『인터넷 전문가(신 용태)와 미술 전문가(오진경), 그리고 사회 개발 및 공공정책 전문가(임길진)가 상호 보완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연구』라고 임교수는 자평했다.

    『인터넷을 통한 가상 미술 체험은 실제 감상을 꿈꾸게 해줄 뿐이다. 그러한 한계만 제대로 인식 하고 있다면 인터넷은 매우 유용한 예술경험의 정보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들이 내린 잠정 결 론이다.〈콸라룸푸르=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