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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못생긴 컴퓨터 싫어 성형수술 좀 해라”

‘플라스틱에 회색’늘 그 모양 | 美교수,파격 디자인 제안 | 「NEWS+」1997년 7월 3일자(No.90)

David Gelernter (Image source: http://www.nytimes.com/2011/11/05/us/david-gelernter-discusses-patent-claim-against-apple.html)

    컴퓨터는 왜 늘 그 모양일까. 오로지 플라스틱 재질에 반듯반듯한 상자모양이다.

    컴퓨터의 성능은 18개월마다 제곱으로 빨라진다는데, 그 외모는 독야청청이다. 불가사의할 지경으로 늘 그 모양이 다.

    첫번째 의문. 왜 컴퓨터의 「 옷」은 늘 플라스틱인가. 낭만적인 마호가니목이나 좀더 기계문명적인 느낌을 주는 금속 따위가 안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물론 플라스틱에는 그 나름의 미덕이 있다.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으며 금속 느낌의 광택을 낼 수도 있고, 알록달록한 무늬를 입힐 수도 있다. 대강 따져보더라도 플라스틱의 장점이 열가지는 될 것이다.

    그럼에도 컴퓨터를 덮은 플라스틱은 「 장점의 소외지대」에 있는 듯하다. 빛깔은 윤기없 는 회색으로 우중충하며, 끝마무리를 덜한 것처럼 접합부분의 이가 잘 안맞기도 한다.

    『컴퓨터의 외양을 보면 디자이너들이 고주망태의 상태에서 아무런 창의성이나 의욕없이 대충대충 생각해낸게 아닐까 하고 의심을 살 정도』라고 데이비드 겔런터 교수(예일대, 컴퓨터과학)는 말한다 (Big Think에 있는 겔런터 교수의 온라인 강의).

    그가 볼 때 컴퓨터의 디자인은 따분하고 무미건조할 뿐 아니라 실제 쓰기에도 불편하게 되어 있다.

모니터와 키보드사이 빈 공간 제대로 활용 안돼
『시력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면 모니터는 30cm 이상 떨어져야 하는 반면, 키보드는 손가락 바로 아래에 오도록 디자인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요즘 컴퓨터들은 적어도 그러한 조건은 충족시 키고 있다. 그러나 모니터와 키보드 사이의 빈 공간은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

    커피잔이나 사용 설명서, 전화기, 서류함 따위가 아무런 맥락없이 놓이지만 그에 대한 체계적인 디자인은 전혀 없 는 듯하다.

    예컨대 윈도95가 널리 보급되면서 마우스를 쓸 일이 점점 많아지지만 어떤 컴퓨터도 마우스패드를 달고 있지 않다(대개 사은품으로 받거나 컴퓨터전시회에서 얻어 따로 쓰지만 서류 와 자료더미에 묻히다 보면 마우스패드를 제대로 놓을 공간조차 찾기 어렵다).

    새로운 디자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애플이나 IBM은 꽤 오랫동안 여러 디자인 실험을 해 왔다. 영화의 컴퓨터그래픽으로 유명해진 실리콘그래픽스사는 파란색에 동글동글한 전기밥통 모 양의 옥테인(Octane), O2 같은 제품을 선보이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디자인의 새로운 돌파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 아방가르드적인」 디자인잡지에서조차 플 라스틱과 회색을 버리지 못한다.

    겔런터 교수는 『컴퓨터 디자인도 다른 디자인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한다. 얼마든지 파격과 대 안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오른쪽 그림들은 겔런터 교수가 직접 그린 「 대안」들이다. 『내 디자인에 반대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디자인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얼마든지 대안 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그는 말한다.

    첫번째 그림은 「 표준형」 디자인이다. 플라스틱 대신 따뜻한 느낌이 나는 오렌지목이나 마호가니 를 썼다. 스크린 바로 아래에 널찍한 선반을 만들어 마우스패드나 컵 받침대로 쓸 수 있도록 했 으며, 그 아래에는 디스켓이나 CD를 담을 수 있는 서랍을 추가했다.

    그 양옆으로도 공간을 만들 어 재떨이나 다른 서류를 둘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른 네 디자인에 견주어 컴퓨터의 전통적인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색깔이나 재질을 달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 사람들에게 매력을 줄 만하다.

    특히 컴퓨터를 처음 쓰는 이들에게는 회색 플라스틱 덩어리보다 훨씬 더 친숙하게 여 겨질 것이다.

    두번째 그림은 「 책상형」 디자인이다. 말 그대로 컴퓨터의 모양을 전통적인 책상의 형태에 어울리 도록 설계한 것이다. 컴퓨터의 케이스는 거북껍질 무늬의 반투명한 호박색 플라스틱으로, 1930년 대의 만년필을 연상시킨다.

    스크린 양 옆의 선반은 전화기나 책을 두기에 적당하며, 마우스패드를 놓을 수도 있다. 공간을 좀더 절약하기 위해 키보드를 밀어넣을 수 있는 틈을 스크린 아래에 만 들었다.

“디자인 바꾸면 기능­편리성 높이는데 기여”
다음은 「 격자형」(格子形) 디자인이다. 모니터와 하드디스크, 디스크 드라이버, 스피커 등 컴퓨터의 모든 구성요소가 마치 그래프용지처럼 생긴 격자형의 금속 비계(飛階) 안에 들어간다.

    스크린 아 래의 강의대에는 사용설명서나 노트 따위를 둘 수 있다. 책이나 서류 신문 디스켓 CD 필기구 등 을 꽂을 수 있는 자리가 비계 구석구석에 마련되어 있다.

    네번째 디자인인 「 극장형」은 그 자체가 책상이다. 모니터가 놓인 계단형 선반들에는 책이나 서류 등을 놓을 수 있다. 마치 원형극장처럼 생긴 이 디자인은 책이나 서류더미와 행복하게 공존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 작업대형」 디자인은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평면형 모니터를 염두에 둔 것이다. 건축설계사들의 작업대를 연상시키는 이 디자인에서, 스크린은 한 가운데 놓인다. 45도 정도로 기운 모양이어서 모니터뿐 아니라 양옆에 놓이는 자료나 책을 읽기도 편하다.

    「 장미꽃봉오리형」도 평면형 모니터를 겨냥한 디자인이다. 모니터와 키보드, 양 옆의 나무 선반을 마치 정방형 나무상자처럼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다.

    노트북을 본뜬 듯하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덩 치도 훨씬 더 커서 서류가방에 넣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거나, 심지어 자 동차 트렁크에도 넣을 수 있으니 이동성은 썩 좋은 편이다.

    새로운 컴퓨터디자인은 단지 「 보기에 더 좋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겔런터 교수는 『더 나은 컴퓨터디자인은 컴퓨터의 기능이나 편리성을 높이는데도 기여한다』면서 『고집스럽게 바뀌지 않는 컴퓨터의 디자인은 현대사회가 지닌 피동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피동성은 현대 사회의 한 상징인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가장 잘 팔리는 소프트웨어조차 배우기 힘들고 쓰기 불편하며, 그것이 지닌 기능중 95%는 아예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컴퓨터도 눈과 손가락을 피로하게 하며, 「 데스크톱」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책상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사 정이 이러한데도 왜 우리는 무기력하게 참고만 있는가?』〈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