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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보첼리: ‘신이 내린 목소리’한국팬을 부른다

‘맹인가수’보첼리 앨범‘로망스’상륙 | 유럽의‘신들린 인기’이어질지 관심 | 1997년 「NEWS+」7월 3일자(No.90) 

  고음으로 솟구치면서도 목소리의 「애잔한 부드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소리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하이C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안드레아 보첼리(39). 한 눈먼 성악가가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팝과 클래식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앨범 「로망스」(Romanza, 폴리그램)는 국경과 인종, 문화의 경계마저 허물고 있다. 올해 상반기 유럽의 실적만 놓고 본다면 비틀스의 신화마저 허물어버릴 기세다.

    그의 모국 이탈리아에서는 300만장이 나갔으며, 독일에서는 발매 2주만에 230만장이 팔려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스페인에서는 「건국 이래」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프랑스 영국 벨기에 등에서도 그 에 못지 않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히 「보첼리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그의 목소리는 팝과 클래식의 경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경계는 위태롭지 않다. 팝과 클래식의 경계에서 그는 오히려 편안하다. 그 경계는 팝과 클래식이 대립하는 지점이 아니라 서로 자연스 럽게 어울리면서, 또한 지양되는 곳이다. 「크로스 오버 뮤직」의 모범답안이라고나 할까.

독일선 발매 2주만에 230만장 팔려
그의 목소리가 이룬 독특한 경지는 우리 귀에 쉽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가볍지는 않다. 예 컨대 그가 「카루소」를 부를 때, 파바로티의 힘찬 미성에 익숙한 사람들은 약간 맥이 빠진다.

    그의 느릿한 목소리는 부드럽다 못해 유약하게 들린다. 악센트도 적고, 그만큼 솟구치는 맛이나 극적인 느낌도 적다. 그러나 거기에는 뭔가 애잔함이 스며 있다. 파바로티의 노래에서는 맛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풍미다.

    보첼리의 목소리의 비밀은 그의 독특한 이력으로 자연스럽게 풀린다. 그는 93년 이탈리아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했으며, 파바로티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팝과 클래식 양쪽에서 그 기량을 인정 받은 것이다. 파바로티는 『내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그를 칭송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94년 모데나에서 열린 「파바로티와 친구들 2」에 출연해 열창했으며, 95년 산레모 가요제에 서 「Cont Te Partiro」(너와 함께 떠나리)로 다시 우승의 영예를 안는 진기록도 세웠다.

    「Con Te Partiro」는, 12세 때 축구시합에서 당한 머리부상으로 눈이 멀었으나 타고난 미성으로 장애를 극복한 그의 이력만큼이나 극적인 사연을 가진 곡이다.

    96년 11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던 어느날. 독일의 복싱 영웅 헨리 마스케가 은퇴 경기를 가졌다. 늘 따뜻한 미소와 성실한 자세로 사람들에 게 용기와 신념을 일깨웠던 사람.

    독일 국민에게 그는 평범한 권투선수가 아니라 존경과 사랑의 한 상징이었다. 그를 위해 보첼리 와 영국이 자랑하는 여성 보컬 새러 브라이트만이 특별 초청되었다.

    「Con Te Partiro」.

    두 가수가 부른 노래는 마스케와 전 독일 국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마스케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캔버스 위에 쓰러졌고, 지난날의 영광은 다만 그와 국민의 기억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는 가까스로 일어나 외쳤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청중들도 모두 일어났다. 그리고 이 노래, 「Con Te Partiro」를 부르며 이제는 잊힐 한 영웅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너와 함께 떠나리/ 아무도 모르는 나라로/ 너와 함께 풍경을 보고 들으며/ 이제부터 거기에서 함께 살리라/ 너와 함께 떠나리/ 바다로 배를 타고서/ 아니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너와 함께 나 는 거기서 살리라…」.

    독일 전역으로 생방송된 이 한편의 드라마는 곧장 「보첼리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발매 2주 만에 230만장이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다.

    「로망스」는 제목처럼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노래들을 담고 있다. 「Per Amore」(사랑을 위하여) 「Vivo Per Lei」(그녀를 위해 살리라) 「Romanza」(로망스) 등에서 서정성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노 랫말 또한 선율만큼이나 시적이고 달콤하다. 「카루소」나 「Miserere」(미제레레)는 클래식에 대한 보첼리의 감수성과 재능을 드러내는 징표처럼 들린다.

    보첼리의 「로망스」가 최근 국내에도 상륙했다. 폴리그램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홍보와 마 케팅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보첼리 신드롬이 국내에서도 이어질지 궁금하다.〈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