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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귄터 반트 “내 지휘봉에 마침표란 없다” (NEWS+ 1997년 6월5일치)

* 귄터 반트는 2002년 2월 타계했다.
 

‘85세 현역’생동감 넘치는 지휘, 베를린필과 연주한 브루크너 5번 교향곡 명음반 나와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이 빛날수록 그 뒤에 남는 그늘 또한 크다. 거장(巨匠) 지휘자의 시대가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르주 첼리비다케와 라파엘 쿠벨릭이 긴 그늘을 남기며 「거장 시대」의 황혼을 더욱 짙게 했었다.

    귄터 반트는 그 황혼녘에 아직도 찬란한 빛을 던지며 거장의 맥을 잇는 인물이다. 대중적 인지도를 제쳐둔다면, 반트는 아마도 게오르그 솔티와 동렬에 놓일 만한 유일한 거장일 것 이다.

    아니, 대중적 인기에서도 반트는 근래 2~3년 사이 열광에 가까운 존경과 환호를 받기 시작했다. 올해 85세. 이미 오래 전에 은퇴했을 법한 나이지만 그의 음악적 생동감과 에너 지는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하다.

    최근 반트의 브루크너 음반이 BMG의 RCA 레이블로 나왔다. 지난해 1월12일부터 14일까 지, 베를린필하모니 홀에서 라이브로 녹음한 제5번 교향곡이다.

    베를린필과의 첫 녹음. 솟구 치는 에너지와 끝모를 깊이, 유장한 흐름 등이 70여 성상에 걸친 지휘 인생의 한 절정을 보 여준다. 「브루크너의 최고 권위」라는 세간의 평가는 결코 허언(虛言)이나 과장도 아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로 잰 듯 섬세한 화음 연출

    「세기의 이벤트」. 95년 반트가 처음으로 베를린필하모니 홀에 섰을 때 비평가와 언론은 이렇게 썼다. 그 시절 까지도 반트는 몇몇 클래식 마니아와 비평가들만이 열광하는 「컬트」에 가까웠다. 이는 무엇 보다 내성적인 데다 음악외적인 일로 대중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반트의 성격 때문이었 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성취나 깊이는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있었다.

    베를린필을 지휘해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과 9번을 들려준 이 연주회는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반응 을 불러일으켰다. 무려 80여년 만에 거장의 면모가 비로소 제 빛을 본 것이다.

    이제는 그의 새로운 연주 하나, 새로운 녹음 하나하나가 클래식 음악사를 한층 살찌우는 빅 이벤트로 인식되고 있다. 이보다 앞서 나온 브루크너 교향곡 제6번(북독일방송관현악단 연 주)도 비평가와 음악애호가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반트가 뒤늦게 인정받기 시작한데는 요즘의 세태도 작용했다. 진지한 접근이나 정면 승부보 다 화려한 덧칠과 달콤한 선곡으로 눈길을 끌려는 세태. 반트는 그처럼 경조부박한 세태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의 연주가 들려주는 충만한 에너지와 깊이, 그리고 압도적인 중량감은 음악에 대한 그의 진지한 자세, 곧 장인정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연주회 몇달 전부터 악보의 세부까지 꼼꼼히 연구한다. 그리고 연주 파트별로, 혹은 오케스트라 전체를 상대로 적어도 5주간의 조직적인 리허설이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유 명한 오케스트라조차 반트의 지휘봉 아래에서는 전혀 새로운 사운드와 음색이 나온다. 그의 완벽주의, 음악에 대한 구도적 자세를 생각하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음악비평가 볼 프강 자이페르트는 말한다.

    반트의 지휘는 화려하지 않다. 『지휘란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한의 사운드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한 시카고심포니의 명지휘자 프리츠 라이너를 연상시키는 매우 절제된 지휘다. 그러나 그의 지휘봉은 자로 잰 듯 정밀하며, 음의 세밀한 흐름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그의 눈빛이나 미세한 손짓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철저히 통제된 지성주의와 감성적인 자유의 완벽한 균형. 그것이 바로 반트 지휘의 요체다. 반트가 토스카니니나 클렘 페러와 종종 비교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트는 1912년 독일 쾰른 근처의 엘베르펠트에서 태어나 쾰른에서 피아노와 작곡, 지휘, 철 학을 공부했다(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때 잠깐 잘츠부르크에서 지낸 것 말고는 쾰른을 떠난 적이 없다. 그가 뒤늦게 유명해진 또다른 이유다.

    반트의 레퍼토리는 베토벤과 브람스 슈베르트 브루크너에 집중돼 있다. 스트라빈스키나 차 이코프스키, 베베른도 있지만 아무래도 무게중심은 독일 고전파와 낭만파에 놓여 있다.

    그 에게 레퍼토리를 더 넓히라고 요구해야 할까? 우리가 뭐라고 말하든,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그 걸음을 늦추거나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