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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꿈의 신세계’ 컴퓨토피아 2047년 (NEWS+ 1997년 3월20일치)

이들의 15년전 예견을 지금 다시 읽어 본다. 여전히 유효하다. '석학'이라는 말은 이래서 아무한테나 써서는 안된다. 이들이야말로 그 '석학'이라는 표현에 걸맞아 보인다.

해외 디지털 석학들 ‘50년뒤 세상’예견 - “시공간 자유 이동·인조 인간 등장” 전망도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농구를 관람한다고 상상해보자.

    관람석은 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가 아니라 바로 가드나 센터의 자리이다. 어느 각도와 위치에서든 경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흐르는 땀방울과 거친 숨소리, 격렬한 몸싸움 등이 마치 경기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서울대학병원의 의사가 제주도에서 진행되는 수술을 집도하는 것은 가능할까?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일이 아주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까?

    일일이 새로 사거나 업그레이드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개량하고 수리하는 소프트웨어가 나온다면? 키보드나 마우스 없이 그저 말 몇마디로 손쉽게 부릴 수 있는 컴퓨터는?

    「컴퓨팅의 다음 50년」.

    3월1일부터 5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대규모 학술대회 「ACM97」의 주제어다. 주최측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 관련 학술기관인 「미 컴퓨터협회」(ACM·the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창립 50주년을 맞아 2047년의 세계를 그려보자는 취지다. 이 분야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미래의 다양한 밑그림을 내놓았다.

고든 벨(Gordon Bell·마이크로소프트 수석연구원) -『앞날을 예측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미니컴퓨터의 대부」로 존경받는 고든 벨 박사(62)는 『앞날을 예측하는 일은 어리석다』면서, 60년대 초반 음성인식 기술이 곧 일반화할 것이라고 예측한 한 전자회사의 경영자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음성인식 기술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그러한 그도 미래를 내다보는 일의 매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 「원격대면」(遠隔對面·Telepresence)이라는 개념에 매력을 느낀다.

    직접 몸을 움직이지 않고, 네트워크의 가상공간(사이버스페이스)을 통해 행사에 참여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다.

    그는 『2047년의 대다수 모임은 현실세계가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열릴 것』이라고 예견한다. 『모든 것이 가상공간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10년 내에, 사람들은 적어도 하루 생활의 4분의 1 정도를 가상공간에서 보내게 된다』

    다음은 그가 내놓은 미래상 몇가지.

    △50년 내에 컴퓨터는 사람의 뇌에 버금가는 처리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도 크기는 호출기나 시계, 지갑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컴퓨터 시스템이 인간 대신 탈것을 운전하게 된다. 교통사고가 사라질 것이다.

빈튼 서프(Vinton Cerf·MCI 수석부사장) - 『인터넷은 모든 곳에 존재할 것이다』

    『화장실에서부터 냉장고까지, 옷에서 독서용 안경까지, 인터넷은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고 빈튼 서프(53)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가장 극적인 변화는 가정에서 일어난다.

    『다음날 아침 몇시에 일어나고 싶은지 당신은 「집」에다 대고 말만하면 된다. 당신이 운동하는 동안 부엌은 스스로 알아서 아침을 준비할 것이고, 욕조는 당신을 위해 적당한 온도로 물을 채워놓을 것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체중계는 비만 여부를 가려내어 비만일 경우 냉장 고문을 자동으로 잠가버린다. 신문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독서용 안경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손가락 마우스」로 진짜 신문을 넘기는 것처럼 마음대로 조작할 수도 있다.

    서프는 흔히 「인터넷의 대부」로 통한다. 그는 인터넷의 기본 통신규약인 TCP/ IP를 공동개발했으며, 76년부터 82년까지 미 국방부의 고등연구프로젝트기구(ARPA)에서 일했다.

    그가 보는 미래에는 그늘도 있다. 정보부국과 정보빈국이 빚는 그늘, 정보 간접자본(인프라)의 유무에 따른 차별은 50년 뒤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 때의 제3세계는 정보빈국이 될 것이다.

머레이 겔만(Murray Gell-Mann·산타페연구소 공동의장) - 『정보의 질(質)이 중요하다』

    6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머레이 겔만 박사는 『디지털 정보의 대홍수로부터 참된 지식을 「증류」해낼 수 있는 방법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정보시대」의 여명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정보는 대부분 그릇된 것이거나 제대로 정리, 조직되지 않은 것이다. 주제와 전혀 동떨어진 것들도 한몫을 차지한다.

    『오락과 선전들로 가득 찬 가짜 정보 대신 참된 지식과 이해로 구성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기업)에 적절한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고 겔만 박사는 강조한다. 10년 뒤든 50년 뒤든, 정보의 품질을 높이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의 몫이라는 얘기다.

네이선 미어볼드(Nathan Myhrvold·마이크로소프트 최고 기술책임자) -『사람보다 더 똑똑한 소프트웨어가 나온다』

    오늘날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숙련된 기술자들에 의해 한줄 한줄 「직조」된다. 미어볼드 박사는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날이 올 것』 이라면서 『우리 두뇌가 매년 더 똑똑해지지 않는 것처럼 소프트웨어의 발달도 더 이상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한때 스티븐 호킹의 동료였던 미어볼드 박사의 예측은 다소 충격적이다. 『2047년쯤이면 우리는 우리 두뇌를 스캐닝해서 그 정보를 디지털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면 사람과 소프트웨어 사이의 구별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윈도47」은 곧 우리 자신이다』 

라즈 레디(Raj Reddy·카네기멜론대 전산과학대 학장) - 『시간여행과 불멸이 실현된다』

    『미래의 컴퓨터는 「공간 이동」이나 「시간여행」, 심지어 불멸을 가능케 할 것이다』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술 등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라즈 레디 박사의 예측이다.

    『아톰(Atom)을 대체한 비트(Bit) 혁명, 디지털 혁명 덕택에 우리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되었다』초당 1조(兆)회 이상의 연산능력을 가진 PC, 매초 수십억비트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네트워크, 실물만큼이나 선명한 화상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카메라 등이 그의 예측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예컨대 어떤 각도와 장소에서든 운동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하려면 적어도 1만개 이상의 카메라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찍힌 그림들을 빛의 속도로 모으고 분배하며, 그에 따른 소리까지 만들려면 지금보다 몇백배 이상 더 빠른 네트워크가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한 조건이라면 따로 몸을 움직여 여행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비트로 바뀌어 처리된다.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SF 소설가) - 『기술 대재난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컴퓨터의 어떤 신기술도 인간의 본성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스털링의 전망은 어둡다. 『남을 속이고 해코지하려는 우리의 욕망을, 기계를 통해 은폐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내놓는 또 다른 문제는 「읽고 쓰는」 일에 관한 것이다. 멀티미디어와 점점 똑똑해지는 컴퓨터는 읽고 쓰는 문예적 전통을 폐기처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인지능력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브렌다 로렐(Brenda Laurel·배우·컴퓨터 및 극장예술 연구자) -『컴퓨터와 문화의 화해를 꾀해야 할 것이다』

    로렐(46)은 컴퓨터 인터페이스와 가상현실, 대화형 소설 등에 관심이 많다. 그녀는 특히 정보기술이 문화에 끼칠 영향을 걱정한다. 그녀가 보기에 컴퓨 터는 양날의 칼이다. 적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컴퓨터도 이미 그 안에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갖게 되었다. 컴퓨터가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다』

    로렐은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미래 사회의 「정신」과 그 함의에 대해 끊임없이 인류 스스로 묻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컴퓨터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활력을 북돋우는 바람직한 특성이자 훌륭한 상징, 유익한 공헌자인가? △컴퓨터는 문화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접속망인가? △컴퓨터의 에토스, 곧 속성이나 윤리적 본성, 원칙은 무엇인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따르지 않는다면 컴퓨터와 인터넷은 소비주의와 선전, 진부한 대화와 저급한 오락으로 가득 찬 장사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녀는 컴퓨터의 내용물(Contents) 못지 않게 컴퓨터의 「관계」에도 시선울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브 멧캘프(Bob Metcalfe·컴퓨터 칼럼니스트) - 『우리는 움직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더넷(EtherNet)을 만든 네트워크 전문가 멧캘프는 『통근과 비즈니스 여행 거리를 최소화하는 일이 국가적 우선사업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랩톱 컴퓨터나 호텔의 인터넷 접속망, 무선전화 등에 대한 열광은 정보기술의 발달 방향과 어긋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모든 일을 집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좀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정보사회의 바른 방향이다』

    이들 「디지털 전도사」들의 예측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이들의 전망이 제대로 된 코끼리 그림인지, 아니면 다리나 코 귀 따위를 그린데 지나지 않는지는 시간이 판단해줄 수 있을 따름이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