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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가슴 적시는 세밑 어때요 (NEWS+ 1996년 12월19일치)

DG 폴리그램 등 기획상품 봇물  ... 신영옥의 ‘아베마리아’ 경건함 절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DG(도이 체 그라모폰)에 보물창고와 같다. 지휘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다 89년 타계한 카라얀은 파고 또 파내도 마르지 않는 레퍼토리의 샘물이자 흥행성이 확실한 DG의 보증수표다.
 
    세계 최대의 음반 레이블 중 하나 인 DG는 올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또 하나의 「아다지오 카라얀」을 내놓 았다. 이번에는 그 앞에 「크리스마 스」 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는다. 「크리스마스 아다지오 카라얀」이다. 얼굴을 찌푸리며 「또?」하고 반문하기 전에 수록곡의 면면을 한번 살펴볼 일이다.

    주세페 토렐리의 크리스마스 협주곡, 프란체스코 만프레디의 크리스 마스 협주곡, 피에트로 토카텔리의 크리스마스 협주곡,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크리스마스 협주곡…. 여기에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시칠리 아나」, 프란츠 그루버의 「고요한 밤」 등 소품 몇 편이 양념처럼 끼어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크리스마스 협주곡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를 일찌 감치 녹음해 놓은 카라얀의 혜안이 더욱 놀랍다. 여기에서 「혜안」을 상술(商術)이나 「상업적 감각」이라는 말로 바꿔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더욱이 카라얀과 베를린 필은 최고 수준의 합주력을 보장한다.

바버라 헨드릭스 영화주제가 아이들과 들을만

    연말연시는 음반사에도 결코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크리스마스는 그 중에서도 제1의 표적이다. DG 데카 필립스 등 여러개의 공룡 레이블을 거느린 폴리그램을 비롯해 EMI 소니 BMG 워너 뮤직 삼성뮤직 등 대부분의 음반사가 크리스마스를 겨냥해「기획상품」 을 내놓은 의도도 거기에 있다.
 
    이들 음반사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연주자는 아무래도 성악가들인 듯 하다. EMI가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바리톤 토마스 햄슨,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를 기용해 「당신을 위한 크리스마스 노래」를 만들었으며, 바바라 헨드릭스에게는 월트디즈니의 가정용 영화 주제가들을 부르게 했다.

    자신의 두 아이들을 위해 노래했다는 헨드릭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디즈니의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하다.

    워너뮤직은 한 음반만을 크리스마스용으로 적극 밀고 있다. 호세 카레라스와 플라시도 도밍고 콤비에 냇 킹 콜의 딸 내털리 콜이 가세해 95년 12월에 벌인 빈 실황공연 음반이다. 「크리스마스 찬양」이라는 제목의 이 음반에서 세 사람은 널리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럴 말고도 루이 암스트롱의 ㄴ「What a Wonderful World」 같은 보너스를 선사한다.

    맑고 섬세한 목소리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소프라노 신영옥도 삼성뮤직을 통해 「아베 마리아」를 녹음했다. 슈베르트와 구노의 아베 마리아 두 곡을 비롯해 바흐 헨델 모차르트 포레 등의 성가곡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어떤 음반이나 실황공연에서보다 더 맑고 경건하며 차분하다. 맨 앞과 끝에 배치한 영가(靈歌)의 제목처럼 그녀는 「놀라우신 주의 은총」(Amazing Grace)을 목소리로 체현하려는 듯하다.

    폴리그램은 카라얀 말고도 카레라스-도밍고-파바로티의 「3대 테너」, 브라인 터펠, 제시 노먼, 캐슬린 배틀, 셰릴 스투더 같은 숱한 「목소리의 별」들을 거느리고 있다.

    존 엘리어트 가디너, 제임스 레바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같은 거장급 지휘자도 폴리그램의 값비싼 「데이터베이스」이다. 「클래식 크리스마스 앨범」은 그 데이터베이스에서 알짜만을 가려 뽑아놓은 듯한 음반이다. 이 음반을 듣노라면 너무나 화려한 연주진용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처럼 화려한 「식단」보다 소박하되 좀더 순수하고 담백한 양식을 찾는이라면 DG 레이블로 나온 드레스덴 성십자가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캐럴집 「O Magnum Mysterium」이 제격이다.

    그러나 순수함과 담백함, 그리고 경건함에서 「아노니머스 4」를 넘어설만한 연주단체는 없다. 4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아노니머스4는 자신들의 이름처럼(Anonymous는 「익명의」 「이름을 알 수 없는」의 뜻), 작곡자를 알 수 없는 중세의 무반주 다성 성가곡 (Motet)을 부른다.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의 머리보다 몇m 더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신비롭고 경건하다. 「천상의 화음」이라는 수식어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최근 「백합과 양」 「동방의 별」 등이 새로 나왔다(하르모니아 문디). <김 상 현 /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