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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전쟁 - 기업을 흥하게 만드는 성공적인 특허 경영 전략


며칠전 에이콘 출판사에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특허잰쟁 - 기업을 흥하게 만드는 성공적인 특허 경영 전략' (정우성, 윤락근 지음)이라는 책이다. 

박스에서 나온 책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타이밍이 기막히다'라는 것이었다. 특허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특허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사람조차도 '대체 특허가 뭐길래?' 하고 한 번쯤 머리 속에 물음표를 떠올려볼 만한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지난 몇 달간 언론의 앞머리를 장식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두 소식은 특허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 같다.
 

  • 애플과 삼성 간의 특허 싸움. 특히 애플의 아이패드를 넘볼 만한 거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던 삼성의 신종 갤럭시 탭이 애플의 '특허 장벽'에 막혀 독일에서 팔 수 없게 됐다는 소식. 게다가 두 거대 기업의 특허 전쟁은 독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세계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삼성이 (혹은 삼성이 이길 경우에는 애플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보도.
  • 구글이 무려 125억달러 (약 13조원)를 들여, 휴대폰 전쟁에서 밀려 휘청이던 모토롤라를 인수한 이유가 17,000여 건에 이르는 모토롤라 소유의 특허 때문이라는 보도와 분석. 

그 시의적절하다는 첫 인상은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을 첫 장으로 내세운 책의 차례에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됐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반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사항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고 설명되어 있었다. '
애플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 싸움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과연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가?' 같은 소제목들이 그 내용을 분명하게 요약해 주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시한 48개의 사례, '그들이 말하지 않는 특허와 변리사에 대한 10가지'와 '대한민국 산업재산권 공보 사례' 같은 부록도 특허에 관심을 가진 개인과 기업들에 퍽 쓸모 있을 듯했다. 

특히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의 저자들이 시종 유지하는, 혹은 유지하려고 애쓰는 중립성과 객관성이었다. 요즘 유행어로 하면 '쿨하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이들은 삼성 측이 영화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의 한 장면에 나오는 태블릿을 증거로 내세우며 삼성 태블릿이 아이패드를 베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애플이 삼성의 모방과 도용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언론의 보도 (혹은 삼성의 언론 플레이)는, 일반의 기대나 바람과는 달리, 실제 소송에서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의 인터넷 언론이 애플의 증거 조작(설)을 크게 보도하면서 '애플=죽일 놈'으로 몰아갈 때, 이들이나 유명 변리사에게 문의 전화를 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흔히 전문서나 기술서로 분류되는 책의 가장 큰 문제는 거기에 붙은 '전문'이나 '기술'에 있지 않다. 그 '전문' 분야와 '기술'의 내용을 풀어내는 글에 있다. 문장에 있다. '전문'이나 '기술'의 냄새를 가급적 풍기지 않으면서 얼마나 쉽게 풀어 썼는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언뜻 해당 전문/기술 분야 사람들에게나 소용될 듯한 주제를 어떻게 하면 일반 사람들에게 '아, 나와도 관계가 있구나'라고 느끼게 꾸밀 것인가에 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애플과 삼성의 싸움을 맨 앞에 내세우면서 여느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이 '잘 꿴 첫 단추'였다면, 보기 좋고 먹기 좋게 잘 차려놓은 차례는 그 두 번째 단추라고 할 만하다. '왜 특허인가?' '특허란 무엇인가?' '특허전쟁 속으로' 같은 대제목들은 독자들이 굳이 전문가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
특허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달콤한 특허' '특허는 로또가 아니다' '특허는 권리이며 눈치이며 가치다' '언어'에 묶여 있는 특허' 같은 소제목들은 또 어떤가? 누구라도 해당 페이지를 찾아가 무슨 내용인지 알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책을 꼼꼼하고 상세하게 읽지는 않았다. 특허의 개요와 성격, 본질을 보여주는 전반부는 그런대로 관심을 기울이며 읽었지만, 후반부를 차지하는 '~하는 방법' 류의 실제 기법이나 방식, 절차, 규정 등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심하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비단 특허 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전문 분야나 기술을 다룬 책치고 이 정도로 단정하고 친절하고 쉽게 쓴 책은 별로 많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내가 이민 온 이후 10년 동안 전문서, 기술서의 전반적인 표현력이나 문장이 잘 쓰인 소설이나 평론 수준으로 크게 발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틀렸다. 그렇지 않다면, 내 예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몇 가지 아쉬움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특허 인 비즈니스' 같은 표현. '특허 in Business'일텐데, 내겐 참 거슬렸다. '실제 비즈니스에서 특허 활용하기', 혹은 '비즈니스 생존 전략으로서의 특허' 같은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후자는 일본식 표현이니 그것도 썩 나아보이지 않는다만).

또 하나는 표 자료에서 감지된 아쉬움이다. 여러 나라의 특허 규정을 비교하는 표에서, 나라 이름들이 가나다 순이 아니라 알파벳 순이었다. 아마 영문 자료를 번역하다 보니 호주나 알바니아 같은 나라가 맨 앞에 나오고, 미국 (U.S.)이나 영국(U.K.) 등이 저 아래로 처졌을 것이다. 그걸 다시 가나다 순으로 재배열하거나, 한국과 무역 관계가 더 활발한 나라들을 앞으로 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대목은 정말 사소한 '티'에 불과하다. 책의 전체적인 유용성이나 미덕에는 별다른 흠집을 주지 않는다. 사례마다 붙박이로 등장하는 이름들도 슬몃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홍길동, 장길산, 임꺽정, 성춘향... ^^

이 책이 전문서이고 기술서인 반면 나는 이 분야의 문외한이어서 그 내용 자체에 별점을 줄 자신은 없다. 다만 쉽게 풀어쓴 글과 구성, 독자에 대한 배려만 놓고 본다면 별 다섯에 다섯을 줄 만하다.

밝힘: 얼마전 내가 번역한 '디지털 휴머니즘'도 이 출판사에서 나왔고, 현재 번역 중인 책 '프라이버시의 이해'도 에이콘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그러한 특별한 친밀성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의견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는않는다. 하지만 독자께 그런 관계를 밝히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혜량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