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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좋은 뉴스가 있을까?

  • 지은이: 케이트 앳킨슨
    형식: 아마존 킨들
    화일 크기: 481 KB
    종이책 분량: 400쪽
    출판사: 리틀, 브라운 앤 컴퍼니
    출간일: 2008년 9월24일
    언어: 영어

  • 이번 소설도 감탄하고 또 감탄하면서, 자꾸 페이지 줄어드는 걸 안타까워 하면서 읽었다. 에구 벌써 90%나 지나갔네 더 없나? 이 다음에 나온 잭슨 브로디 시리즈가 또 없나? 어 하나 더 있다! 

    케이트 앳킨슨의 소설은 알콩달콩하다. 달콤쌉싸름하다. 굳이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주요 등장인물 들의 속마음, 그들이 주고 받는 대화, 사람의 우둔하기도 하고 똑똑하기도 하고 야비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성정을, 실로 기막히게 잡아내 주고 있기 때문에, 그 표현과 묘사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번에도 앳킨슨 아줌마는 그리스 신화의 아라크네마냥, 더없이 노련하고 기민하고 익숙한 솜씨로, 일견 관련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늘어놓아 관심을 한껏 끌게 한 다음, 이들이 본래부터 필연으로 엮여 있었다는 듯 씨줄과 날줄로 절묘하게 잇고, 붙이고, 더한다. 그리고 몇몇 구멍들은 맨 뒤의 장들에서, 마치 잊고 있었던 사소한 사항 몇 가지를 알려준다는 듯 은근슬쩍 붙여 마무리한다.

    먼저 조애나 메이슨,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엄마와 소풍을 나간 시골길에서, 그야말로 이유도 없고 일면식도 없는 싸이코에게 엄마와 언니, 갓낳은 남동생, 그리고 개까지 잃는다. 도망가라는 엄마 말에 앞뒤 안재고 길가 풀밭으로 숨은 덕에 혼자만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다.

    우리의 주인공, 전직 군인, 전직 경찰, 전직 사립탐정 - 이쯤 되면 무술 유단자에 천하무적 슈퍼맨이 그려지는데, 실상은 주로 맞고 깨지고 당하는 데 더 능하다 쯧쯧! - 인 잭슨 브로디는 전작 '케이스 히스토리즈' (Case Histories)에서 만나 잠시 사귀었던 줄리아의 두 살난 아이가 자기 핏줄이라고 믿고 그 증거 (머리카락, DNA 조사로 가능하지 않겠는가)를 확보하러 갔다가 런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그만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바람에 대형 기차 사고의 희생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에든버러의 경찰서장 루이즈 먼로 - 잭슨과 서로 속으로만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맺어지지 못한 상대 -는 끔찍한 가정 폭력/살인 사건 뒤 공포에 떠는 피해자 앨리슨 니들러 가족을 감시, 보호하는 한편, 장모와 처제 등을 총으로 살해하고도 아직 잡히지 않은 데이비드 니들러를 추적하는 중이다. 

    그리고 리자이나 체이스. 열여섯 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어려보이는 '레지' (Reggie)는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자 보석 같은 존재다. 독자를 키득키득 웃게 하는 주인공. 하지만 과거는 더없이 어둡고 불행하다. 홀엄마는 새로 만난 남자와 여행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하나뿐인 오빠는 남보다도 못한 불량배이자 범죄자다. 돈이 없어 학교도 중퇴했다. 하지만 도서관과, 병 때문에 은퇴한 옛 선생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하면서, 이제는 의사가 된 조애나 헌터 (조애나 메이슨)의 보모 노릇으로 생계를 잇는다. 하지만 레지는 조애나와 아기, 세이디(Sadie)라는 이름의 개에 대하 가족 같은 - 혹은 그 이상의 -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레지의 생기 발랄함, 재치, 대담성, 순발력, 뛰어난 상상력, 앞날에 대한 희망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소설은 이 네 에피소드를 엮는다. 케이스 히스토리즈보다 더 '우연'의 변수가 많이 끼어들지만, 에이 이런 일이 어디 있어? 라는 회의감이 들지 않도록 그 정황을 곡진하게도 설명해 준다. 종종 '우연의 소설가' 폴 오스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더 흥미롭기도 했다. 

    이 소설을 '범죄 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아깝다. 범죄 소설이 플롯과 반전, 누가 그 짓을 했을까? (Whodunit)에 핵심을 뒀다는 점에서만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아마 그래서 영국의 뭇 언론도 앳킨슨의 소설들 앞에 'literary'라는 수식어를 썼을 것이다. 초인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문제를 해결한다든가, 도저히 일반 사람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비상한 두뇌로 푼다든가, 하는, 재미는 있지만 독자로 하여금 그래 이건 소설이다, 라고 거리를 두게 하는 '허황한 우연'이나 백일몽적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범죄 소설의 틀을 유지하되,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말과 생각, 행동이 여느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개연성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과 교훈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도 'literary'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읽고 나서 보니 케이스 히스토리즈와 이 책 사이에 있는 One Good Turn을 빼먹었다. 이번에 읽은 소설 다음편은 Started Early, Took My Dog이다. 책 제목들이 다소 코믹하면서도 일반적인 제목과는 거리가 있다. 기억하기 더 좋거나 그 반대거나, 아마 그럴 것 같다. 어쨌든 이 두 권은 종이책으로 읽어볼 심산이다. 도서관에 신청해 뒀다.

    영국에서의 호평과 높은 인기를 잘 반영한 듯, BBC에서 앳킨슨의 '잭슨 브로디 시리즈'를 TV 드라마로 만들었다 (유튜브 트레일러는 아래). 드라마 평은 호평과 악평이 다소 뒤섞인 양상인데, 아무려나 보고 싶고, 하지만 일단 소설을 다 보고 난 다음에 찾아볼 참이다. '언제나 좋은 뉴스가 있을까?'에 대한 내 별점은 만점이다. 다섯에 다섯. 앳킨슨 아줌마가 브로디 시리즈를 계속 내는 한, 그것은 내게 '언제나 좋은 뉴스'일 터이다. 



    지난 번 케이스 히스토리즈를 읽을 때도 많았지만 별로 인용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좀 많이 옮겨보려 한다.


    먼저, 죽어도 길 안 묻는 남자들의 똥고집, 멍청함에 대한 잭슨 브로디 전처의 '리론':

    "Twenty-five million sperm needed to fertilize an egg," his ex-wife used to say, "because only one will stop to ask directions."

    술 안먹고 담배 안피우는 - 그런데 과거에 술 마시고 담배 피워 본 경험이 있는 - 그런 사람의 심사를 잡아낸 이 대목은 어떤가:

    He wished he still smoked. He wouldn't mind a drink. If you didn't smoke and you didn't drink, then standing by a waterfall for ten minutes with nothing to do was something that could really get to you because all you were left with were your thoughts.

    요리의 이유 - 여자 대 남자:

    "Women cook food because people need to eat," Dr. Hunter said. "Men cook to show off."

    나이 드는 것의 한 표징:

    When you had children, you measured your years in theirs. Not "I'm forty-nine," but "I have a twelve-year-old child."

    집에 대하여, 혹은 길에 대하여:

    He was a man on the road, a man trying to get home. It was about destination, not the journey. Everyone was trying to get home. Everyone, everywhere, all the time.

    커피점 붐은 서울만의 얘기가 아니다:

    Coffee was the one thing Tessa wasn't good at. "I live in Covent Garden, for heaven's sake," she laughed. "I can't throw a stone without hitting someone trying to sell me a cup of coffee."

    '랜덤'의 무서움, 나이 들수록 더해가는...:

    but somewhere along the lonesome highway he'd passed the tipping point - more years behind him than in front of him - and had suddenly begun to fear the random horror of the world.

    나이 드는 것은 또 다른 표징 ^^:

    New information was hard to retain, because of the amount of useless old information littering his brain. It was strange that the one thing he seemed to remember from school was poetry, probably the subject he had paid least attention to at the time.

    아직 죽지 않았음의, 살아 있음의 증거:

    When you had a future, a couple of nurses could gang up on you and remove your catheter without any anesthetic, or even any warning, and then force you out of bed, and make you hobble in your flimsy, open-backed hospital gown to the bathroom, where they encourage you to "try and pee" on your own. Jackson had never previously appreciated that such a basic bodily function could be both so painful and so gratifying at the same time. I piss, therefore I am.

    관련 링크: 스카츠맨의 리뷰| 스카츠맨의 케이트 앳킨슨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