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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내게는 풀 수 없는 미스터리 - 한국의 커피 광풍

 저는 위 제목을 달면서 미칠 '광'자 광(狂)을 두꺼운 볼드체로 쓰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말 잠깐 들렀을 때도 일반적인 커피 값이 4, 5천원대인 것을 보고 허걱~! 했었는데, 며칠전 커피 전문가인 한 선배로부터 한 잔에 1만5천~1만8천원 씩 하는 커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민 온 지 좀 되고 보니 이제는 거꾸로 한국에서 얼마다, 하면 이를 달러로 환산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15~18달러군요.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서 괜찮은 '앙트레' 시키면 이 정도 합니다. 
 
도대체, 어떤 커피가 저런 값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저는 그런 커피를 파는 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최고급 원두를 운운에다, 원두를 또 어떤 특별한 공법과 비법으로 보관했는지 운운에다, 물을 몇 도에서 몇 분간 가열해 운운에다... 그래도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칠 '광'자에다 방점을 찍고 싶은 겁니다.
 
어제 한 중국인 동료한테 한국의 '미친 커피 문화' - 미친 뭐뭐...이게 요즘 한국의 유행 표현 중 하나죠? - 를 얘기했더니, 의외로 놀라지 않더군요. 홍콩도 비슷해...가 대답이었습니다. 평균 커피값이 5불 안팎이라니까, 과연 그렇죠? 이건 아시아에만 있는 현상인가요? 아니면 유독 '명품'을 찾는 나라와 국민에게 고유한 현상? 뭐든 명품이라야 직성이 풀리니까 - 명품 핸드백, 명품 구두, 명품 재킷, 명품 블라우스, 그리고 물론 명품 커피... 그 명품들을 걸친 몸과 머리도 명품이면 오죽 좋겠습니까!
 

저는 솔직히 커피를 마실 때 커피 맛 그 자체와, 커피가 주는 아우라라고 할까 이미지, 분위기 중 어느 쪽에 더 쏠리는가 자문하곤 하는데, 전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주 맛없는 저질 커피와, 집에서 아침마다 내려먹는 신선한 커피 사이의 차이는 물론 감지하겠지만, 마치 오디오 마니아들이 1,500만원짜리와 2,000만원짜리를 놓고 트위터의 몇 데시벨대 소리에 약간 문제가 있네 없네 갑논을박 하는 데 대해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심사를, 커피를 놓고 파고드는 이른바 '커피 장인'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1만원 이상 하는 커피값의 변명으로 내놓는 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타벅스 커피도 비싸다고 - 사실 더 큰 이유는 '너무 세다'는 거지만 - 안마시고, 캐나다의 대중 커피인 팀 호튼스에도 가뭄에 콩 나듯 찾는 입장에서는 저런 현상이 실로 난해하기 짝이 없는 미스터리이자 '미친 세상'입니다. 하기사, 돈 내고 마셔주는 이들이 있으니까 성업하는 것이고, 마치 비온 뒤 버섯 뽁뽁 나오듯 새 커피 전문점이 생겨나는 거겠죠. 이젠 커피 뒤에 '전문' 운운하는 것도 실없게 들리지만 말입니다.
 
한 편에서는 청년 실업이 급증한다, 1백만명(!!!)을 넘어선 석박사 학위자들이 갈 곳이 없다, 88만원 세대가 어떻다, 하는 한 세계와, 명품 백이 어떻네 명품 바지가 어떻게 하는 설왕설래와 고급(고가) 커피와 와인 바가 성업하는 또다른 한 세계...이걸 다양성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시선을 북미로 넓혀 봐도 역시 현상은 비슷하니까...

(6월5일 업데이트) 트위터에 이 글을 연결했더니 한 지인께서 매경 이코노미에 난 기사 '[커피공화국 대한민국] 대형 커피 브랜드 2년 안에 교통정리?'를 알려주셨다. 그 글 읽고 또 많이 놀랐다. 하루에 무려 250만원의 매출을 올려도 수익은 고사하고 임대료조차 내기 빠듯하다고? 그리고 거기에 난 사진 하나가 또 나를 놀래켰다. 서로 마주보는 세 귀퉁이가 다 커피점...혹시 컴퓨터 그래픽으로 사진을 조작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