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알프레드 크랍 (Alfred Kropp)의 기막힌 모험

원제는 
The Extraordinary Adventures of Alfred Kropp. 번역하면 위 제목과 비스름하게 되겠다. 지은이는 릭 얜시 (Rick Yancey, 그의 홈페이지는 여기). 내가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몬스터학 연구가'(Monstrumologist)의 지은이다. 알프레드 크랍은 몬스터학 연구가보다 먼저 나온 책이지만 나는 역순으로 읽게 됐다. 몬스터학 연구가를 소니 e북 서점에서 공짜로 내려받고 이게 뭐야? 했다가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2권, 3권 (3권 독후감)을 다 읽은 다음에, 이것도 인기라니까 한 번 들춰보자, 한게 알프레드 크랍 시리즈다.

알프레드 크랍 시리즈는 다행중 불행이게도 - 아니면 그 반대? - 첫 권을 본 것으로 끝일 것 같다. 그 뒤로 계속 이어질 공산이 제로에 가깝다. 아무리 청소년들의 흥미를 북돋우기 위한 소설이라지만 사건의 전개 자체가 지나치게 허황하고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이지만 현실이라고 우기기 위한 그럴듯한 소설적 장치도 없다. 몬스터학 연구가는 마치 그런 괴물들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문이나 문헌에서 기사를 인용한다든지, 심지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관련 대사를 따온다든지 해서, 어, 정말 그럴지도? 하는 호기심과 두려움과 긴장감을 적절히 잘 조성한 다음에, 그 위에서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을 충분한 개연성을 느낄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크랍 시리즈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부터, 혹시 얘 이름이 Kropp이 아니라 Krap 아냐? 하고 다시 표지 제목을 힐끗 훔쳐보기도 했을 정도다. 어떤 면에서는 Kropp이라는 이름 자체도 꽤 잘 지은 것 같다. 수확한다, 거둔다는 뜻의 crop을 사람 이름으로 쓰기 위해 c를 K로 바꾸고 뒤에 p 하나 더 얹은 것 같다는 말이다. 왜냐 하면 내가 본 첫 권뿐 아니라 그 이후의 시리즈들도 다 이곳저곳에서 전해 내려오거나, 다른 작가들이 이런저런 형식과 내용으로 변형한 신화, 전설 따위를 적절히 걷어다가, 수확해다가, 여기에 덜떨어진 뚱보 - 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영웅 못지 않은 용기와 담대함과 솔직성을 지닌, 그래서 그 외모나 성격이 도무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 알프레드 크랍을 넣어, 그가 어떤 식으로 좌충우돌하고, 그의 실수들이 어떤 연쇄 효과를 낳으며, 그 실수가 어떻게 재난을 낳기는커녕 도리어 전화위복의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지를 유치한 농담과 유머로 요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1권은 아서왕의 전설이 소재 겸 주제다. 원탁의 기사들...의 후예가 - 크랍은 그 후예일까 아닐까? 맞춰보시라. - 크랍의 말도 안되는 실수로 잔혹한 악당 모가트에게 빼앗긴 전설의 명검 엑스칼리버를 다시 찾기 위해 벌이는 모험담이다. 학교에서 왕따에,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큼 덜 떨어진 크랍이 어떻게 그 모험담에 끼어들고, 끼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주역이 되어 칼을 되찾는지는, 책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독자에 따라서는 낄낄 웃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두고두고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소설이란 허구이고, 허구는 거짓말이고 뻥이라는 뜻이므로, 작가가 어떻게 풀든 그것은 역시 작가의 마음이며, 독자가 마음에 안들면 책을 덮어버리면 - 내 경우는 킨들에서 '삭제'해 버리면 - 그만이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논리로, 작가가 어떤 의도와 메시지를 작품에 심으려 했든, 그 책에 대한 의견과 감상은 독자 마음이다.

크랍 시리즈는 내게 '크랩'이었다. 얀시의 탄탄한 문장과, 군데군데 나오는 그럴듯한 격언을 빼면, 도무지 사줄 구석이 없었다. 크랍이라는 주인공도 도무지 애정을 갖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일관성이 없어서였다. 책의 3분의 1쯤이, 그가 얼마나 덜 떨어진 '루저'에 굼뜬 인물인가를 묘사하는 데 바쳐졌는데, 돌연 누구도 풀 수 없을 것 같은 수수께끼를 너무나 쉽게 풀어 엑스칼리버를 찾아내지를 않나, 뒤에 가서는, 엑스칼리버를 한 번 잡고, 그 칼의 마력에 힘입어 칼 싸움 벌인 것말고는 '경험 무'인 그가 마치 올림픽 검도나 펜싱 국가대표 선수라도 되는 양 모가트와 용호상박의 칼 싸움을 벌이지를 않나... 

줄거리에서 드러나는, 뻥뻥 뚫린 허점과 오류는 굳이 들고 싶지 않다. 마치 할리우드의 급조 블록버스터 같다. 시나리오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아서 '쪽 대본'으로 대충 떼우고 만... 아무리 부앙부앙한 허점이, 방귀 농담과 실없는 우스개로 만회될 수 있는 - 그런가? - 청소년용이라지만 이건 좀... 그런데, 청소년용이라면서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이 죽이고 죽나? 게다가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묘사는 어쩌면 그렇게 상세하단 말인가? 헝거 게임의 완결편 모킹제이(헝거 게임 3부작 독후감)보다는 덜 죽지만, 이것도 좀...

별? 한 개나 두 개. 다섯 개 중에서. 비추(非推)다.